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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용기

불굴의 용기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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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816쪽 | 1278g | 153*224*40mm
ISBN13 9788958072478
ISBN10 895807247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제퍼슨은 항공여행에서 무려 한 세대 정도를 앞선 인물이었고, 육상여행에서는 마력 이외에 증기력을 이용해 수레를 움직인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1802년의 예언이 이를 증명한다.
“수레를 움직일 때 증기처럼 강력한 동력원을 도입하는 것은 인간의 지위에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비록 동력원이 다르긴 하지만 제퍼슨은 무려 100년 앞서 자동차를 생각한 셈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기차도 구경하지 못하고 죽었다. 수상여행에 대해서만큼은 제퍼슨도 효율을 증대하는 방법을 고안하지 못했다. 19세기 초, 육중하거나 양이 많은 물품은 모조리 배로 운송됐기 때문에 1801년 당시의 미국인은 항상 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운하를 만든 다음, 갑문을 이용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급류를 우회하는 방법에 대한 계획이 가득 차 있었다. 제퍼슨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강을 넓히고 운하를 파고 도로를 닦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라고 썼다.
문명이 탄생한 이래 그때까지 운송 및 교통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미국인은 셰익스피어를 읽고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을 배출한 사회에 살고 있었지만, 기술은 사실상 고대 그리스에 비해 그리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더 우수한 무기, 뛰어난 지리학적 지식, 그리고 다른 몇 가지 면에서 고대인을 능가했으나 육상에서든 수상에서든 화물 및 사람을 운반하는 면에서든 고대보다 더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헨리 애덤스는 당시의 정신적 풍조를 이렇게 묘사했다.
“가령 립 밴 윙클이 1800년대 들어 오랜 잠에서 깨어날지라도 한때 조지 왕의 초상화가 걸린 자리에 워싱턴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에게 낯선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년 뒤, 그러니까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했을 때 미국인이 막대한 양의 물품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당 거리는 육상(철도의 경우 시속 25마일)에서든 수상(상류행 증기선의 경우 시속 10마일)에서든 1801년에 비해 크게 늘어나 있었다. 운송에서 그토록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이 일어난 것은 그야말로 예기치 못했던 혁명이었다. 제퍼슨 시대에 미시시피강에서 워싱턴 D.C.까지 정보를 전달하려면 무려 6주일이 걸렸으나 링컨의 시대에는 같은 거리임에도 전신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전달됐다.
결국 시간과 거리, 산과 강의 의미는 토머스 제퍼슨의 시대와 에이브러햄 링컨의 시대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퍼슨이 북아메리카를 생각할 때 그의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강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그는 뉴올리언스를 미국의 영토로 흡수할 계획이었고, 이를 통해 서부가 미국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 다음에 그는 대륙의 3분의 2나 되는 서부를 통과하는 완전수로를 찾을 계획이었다. --- pp. 73~75

1801년 들어 제퍼슨은 프랑스(나폴레옹)와 에스파냐(나폴레옹의 형)간의 비밀협약으로 루이지애나가 에스파냐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재할양이었다. 제퍼슨은 크게 놀랐다. 에스파냐가 그곳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미국도 그곳에 대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라면 얘기가 달랐다. 제퍼슨은 종종 대책 없는 프랑스 애호가로 불렸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프랑스가 뉴올리언스를 소유하게 되는 날은 그 나라를 최악의 상태에 영원히 속박시키는 형이 선고되는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영국 함대나 그 나라와 화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측에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동시에 나폴레옹에게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일찍이 동맹국이었던 두 나라의 전쟁 가능성을 뿌리 뽑자고 제안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퍼슨은 프랑스를 바다에서 완파하겠다고 장담했으며, 루이지애나에 프랑스군을 상륙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를 전쟁의 구실로 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말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원정부대는 이미 산토도밍고에서 참패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그 식민지를 재정복할 수 없음은 물론 뉴올리언스로 병력을 보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여차하면 영국과 미국이 연합해 프랑스의 해군과 상선을 격침시킬 것이 뻔했다.
고심하던 나폴레옹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천성을 발휘해 그 땅을 비싼 가격에 팔아치울 궁리를 했다. 그 와중에 그때까지 뉴올리언스를 통제하던 에스파냐인은 미국인의 기탁권을 철회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미국인은 여전히 뗏목이나 평저선을 이용해 선박에서 항구까지 짐을 직접 나르거나 요금을 지불했다. 어쨌든 루이지애나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람은 나폴레옹뿐이었다. 제퍼슨은 파리 주재 미국 공사인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ston)에게 지시해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항구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를 얻을 수 있도록 했고, 만약 그 일에 실패하면 기탁권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보장이라도 받으라고 지시했다.
제퍼슨은 리빙스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제임스 먼로를 전권공사로 삼아 파리로 보내며 뉴올리언스를 200만 달러에 구입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공화당 지도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던 제퍼슨은 뉴올리언스를 구입하기 위해 최대 1,000만 달러까지 의회에 승인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 합헌적인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통상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이 미국에 뉴올리언스뿐 아니라 루이지애나 전체를 팔아치울 의향이 있음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pp. 103~105

1801년 들어 제퍼슨은 프랑스(나폴레옹)와 에스파냐(나폴레옹의 형)간의 비밀협약으로 루이지애나가 에스파냐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재할양이었다. 제퍼슨은 크게 놀랐다. 에스파냐가 그곳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미국도 그곳에 대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라면 얘기가 달랐다. 제퍼슨은 종종 대책 없는 프랑스 애호가로 불렸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프랑스가 뉴올리언스를 소유하게 되는 날은 그 나라를 최악의 상태에 영원히 속박시키는 형이 선고되는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영국 함대나 그 나라와 화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측에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동시에 나폴레옹에게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일찍이 동맹국이었던 두 나라의 전쟁 가능성을 뿌리 뽑자고 제안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퍼슨은 프랑스를 바다에서 완파하겠다고 장담했으며, 루이지애나에 프랑스군을 상륙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를 전쟁의 구실로 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말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원정부대는 이미 산토도밍고에서 참패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그 식민지를 재정복할 수 없음은 물론 뉴올리언스로 병력을 보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여차하면 영국과 미국이 연합해 프랑스의 해군과 상선을 격침시킬 것이 뻔했다.
고심하던 나폴레옹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천성을 발휘해 그 땅을 비싼 가격에 팔아치울 궁리를 했다. 그 와중에 그때까지 뉴올리언스를 통제하던 에스파냐인은 미국인의 기탁권을 철회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미국인은 여전히 뗏목이나 평저선을 이용해 선박에서 항구까지 짐을 직접 나르거나 요금을 지불했다. 어쨌든 루이지애나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폴레옹뿐이었다. 제퍼슨은 파리 주재 미국 공사인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ston)에게 지시해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항구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를 얻을 수 있도록 했고, 만약 그 일에 실패하면 기탁권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보장이라도 받으라고 지시했다.
제퍼슨은 리빙스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제임스 먼로를 전권공사로 삼아 파리로 보내며 뉴올리언스를 200만 달러에 구입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공화당 지도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던 제퍼슨은 뉴올리언스를 구입하기 위해 최대 1,000만 달러까지 의회에 승인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 합헌적인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통상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이 미국에 뉴올리언스뿐 아니라 루이지애나 전체를 팔아치울 의향이 있음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pp. 483~484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선언과 독립전쟁을 통해 자유를 쟁취한 지 20여 년이 지난 뒤인 1803년, 미국은 오늘날의 영토 가운데 대서양 쪽의 3분의 1만을 차지한 신흥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취임 3년째를 맞이한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매입한다. 오늘날 미국 영토의 한가운데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이 광대한 땅을 획득함으로써, 제퍼슨은 눈 깜짝할 사이에 국토를 두 배로 늘려 버린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당시 미국이나 프랑스는 물론이고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 루이지애나(지금의 루이지애나주와는 다름)라는 영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워낙 방대한 영토에, 미국인들에겐 대부분 전인미답의 미개척지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곳에 대한 조사 및 보고가 절실한 실정이었다. 이에 제퍼슨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개인비서 메리웨더 루이스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원정대를 조직하고, 의회를 설득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선다.
원정대의 일차적인 목표는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완전수로(an All Water Route)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원정대는 당시 모피 무역의 전진기지 노릇을 하던 세인트루이스에서 출발해 대륙 중부를 관통하는 미주리강을 거슬러 북서쪽으로 올라간 다음, 로키산맥을 넘어 컬럼비아강을 따라 내려가 태평양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다. 만약 미주리강 상류와 컬럼비아강 상류 사이를 연결해주는 가깝고도 편리한 육로가 있을 경우, 미국은 동서를 관통하는 사실상의 완전수로를 얻게 되어, 내륙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토대로 한 모피 무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막중한 책임을 맡은 루이스는 원정 준비에 분주한 와중에도, 한때 군 동료였으며 절친한 친구인 윌리엄 클라크에게 공동 지휘관직을 제안한다. 직관적이고 다혈질인 자신의 능력에 차분하면서 인내심 많은 친구의 능력이 합쳐지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제안에 클라크가 흔쾌히 응낙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굳건한 우정의 예로 손꼽히며, 심지어 두 사람을 한 몸인 양 일컫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원정 준비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애초에 10여 명 규모로 잡았던 인원은 금세 수십 명 규모로 늘어났고, 클라크의 지위 결정을 둘러싼 민망한 문제도 있었다. 애초에 루이스는 클라크를 자신과 똑같은 대위 계급의 공동 지휘관으로 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적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결국 루이스보다 아래인 중위 계급의 부지휘관으로 임명장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 사실을 대원 중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크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캡틴’(군 계급으로는 ‘대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대장’이란 뜻이다)이라고 호칭하도록 한다. 두 사람의 이런 신뢰와 우정이야말로 원정이 거둔 성공의 기폭제가 되었다.
수 개월간의 지체 끝에 마침내 1803년 5월 14일, 세인트루이스를 출발해 원정을 시작했을 때의 인원은 뱃사람을 포함해 모두 54명, 그리고 5개월간의 여정 끝에 만단 족 마을에 도착해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4월에 원정을 재개했을 때, 대원들의 숫자는 모두 33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각지의 군부대에서 최고의 병사들을 선발하고, 숙련된 사냥꾼을 시기적절하게 특채했으며, 중도에 말썽을 일으킨 대원은 퇴출한 정예 중의 정예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프랑스인 교역상과 함께 살고 있던 인디언 여성 사카가위아가 통역자로 동행했으며, 심지어 그녀가 낳은 2개월 된 아기까지도 원정대에 동반했다는 사실이다. 원정대의 또 다른 특이한 대원으로는 흑인 요크가 있었는데, 그는 클라크의 노예였다.

원정대는 이후 미주리강 상류의 강한 물살이며, 무시무시한 회색곰과의 싸움, 카누가 전복될 뻔한 위기, 그리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강의 분기점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 뻔한 사건 등, 갖가지 역경을 극복하며 서쪽으로 향한다.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의 등뼈에 해당하는 대륙분수계의 능선에 올랐을 때, 루이스는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앞에서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만다. 일찍이 원정을 떠나기 전만 해도 제퍼슨과 루이스는 대륙분수계를 넘기만 하면 바로 컬럼비아강이 나올 것이라고, 그 강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태평양이 금방 나타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능선에 오른 루이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거대한 산맥이었던 것이다. 바로 로키산맥이었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원정에 후세 사람들이 감히 ‘위대한’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본래의 계획이나 예상과는 완전히 어긋난 상황을 맞이하여, 대장인 루이스와 클라크는 숙고 끝에 ‘계속 전진하기로’ 결정한다. 앞으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태평양까지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들은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로키산맥의 일부분인 비터루트산맥을 넘었고, 그토록 고대하던 컬럼비아강에 도달해서 배를 타고 하류로 향한다. 그리고 1805년 11월 20일, 무려 2년 반만의 여정 끝에 4천 마일을 주파하여 드디어 태평양에 도달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 횡단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원정대의 여정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태평양 연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그 험준한 산맥을 넘어 문명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대원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요크와 사카가위아도 당당히 한 표를 행사했는데, 흑인 노예와 인디언 여자까지 투표에 참가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65년 흑인 투표권법이 제정됨으로써 흑인도 투표할 권리를 갖게 되었고, 1890년 와이오밍주가 처음으로 주 헌법으로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으며, 1920년이 되어서야 연방 전체가 비로소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점을 감안할 때 비록 성숙한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보다 자그마치 100여 년 전, 혹은 150여 년 전 여성과 흑인의 투표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 숙영지를 건설하지만, 식량과 보급품의 부족으로 인한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심지어 이들은 인디언들에게 개를 사서 잡아먹는가 하면(*“대원들은 줄곧 그 지역 인디언들로부터 개를 사서 식용으로 썼지만, 클라크는 원정대에서 유일하게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14일, 클라크는 오리 몇 마리를 잡아 무려 3주일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기운을 차렸다.” -본문 464쪽 중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장작이나 카누를 도둑질하기까지 한다. 원정용으로 마련한 보급품 가운데 이미 95퍼센트를 써버린 상황에서, 이들은 하루속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북서 해안의 춥고 습한 겨울을 보낸다.
드디어 봄이 오자 원정대는 태평양을 떠나 다시 귀로에 오르지만, 여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힘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식량과 보급품의 부족이었다. 원정대로선 선뜻 시인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사실 이들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인디언들의 호의적인 도움이었다. 물론 때로는 적대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고, 곤란에 빠진 원정대의 처지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기도 했지만, 실제로 인디언들이 헐값에 식량과 말을 제공해주지 않았더라면 루이스와 클라크의 원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1년 전, 비터루트산맥을 넘으면서 단단히 고생했던 원정대였지만, 이번에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이 너무 앞선 까닭인지 그만 대단한 실책을 범하고 만다. 늦봄이 될 때까지는 눈이 쌓여서 통행할 수 없다는 인디언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예정보다 며칠이나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가 결국 얼마 못 가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루이스와 클라크의 원정에서 유일하게 ‘전진’ 아닌 ‘후퇴’를 감행한 때였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루이스는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인디언 길잡이들을 여럿 고용해서, 1년 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수월하게 산맥을 넘는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루이스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만다. 원정의 성과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한 욕심이 지나쳤던 나머지, 미처 탐사하지 못한 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원정대를 여러 조로 나누어 운영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가령 루이스와 9명의 대원들은 루이지애나의 북쪽 경계 확인을 위해 마리아스강을 따라 올라가고, 클라크와 10명의 대원들은 옐로스톤강을 타고 내려가고, 그 외에도 두세 개 조가 저마다의 임무를 맡아 흩어지기로 한 것이다. 이들에게 적대적인지 호의적인지 알 수도 없는 인디언들이 횡행하는 지역 한가운데서 병력을 나눈 루이스의 결정이야말로, 자칫하면 원정 전체를 물거품으로 만들 뻔한 위험천만한 오판이었다.
결국 루이스는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판단에 대해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루이지애나의 북쪽 경계가 북위 49도 아래에 있다는 낙심천만한 결과를 확인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즈음, 우연히 그 일대를 호령하는 블랙푸트족의 인디언 전사들과 마주쳐 시비가 붙었고, 결국 그중 몇 명을 살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루이스 일행은 다행히도 무사히 본대와 합류하여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지만, 블랙푸트족과 미국인 사이에 생겨난 숙원은 이후 오랫동안 이어지며, 인디언과 백인 양측 모두에게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금의환향한 루이스와 클라크, 그리고 대원들은 대단한 찬사와 함께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들의 업적이 일반에 제대로 알려지기까지는 이후 8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러야만 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 원정의 가장 큰 수혜자인 루이스였다. 그가 원정 내내 소중히 간직하며 기록한 일지야말로 이들의 업적을 모두의 앞에 증명해줄 산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찌된 일인지 일지의 출간을 위한 작업에 소극적이었고, 그리하여 일지가 결국 출간되었을 무렵에는 이들의 발견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시 발견된 다음이었거나, 또는 이들이 붙여준 강이나 산의 이름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지어진 다음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루이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의 후광에 도취된 그는 제퍼슨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 지사라는 중요한 관직에 임명되지만, 천생 군인 체질이었던 그에겐 행정가로서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게다가 융통성 없는 고지식함 때문에 친구보다는 적을 더 많이 만들어냈으며, 나아가 금전관리에 대한 무관심과 서투름이 원인이 되어 무의식중에 남발한 어음이 신용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집안내력이라 할 수 있는 우울증까지 가세하여 그는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생전에도 루이스의 가장 좋은 친구이며 믿음직스러운 동료였던 클라크는 원정일지의 출간이라는 또 한 가지 남은 임무를 고스란히 떠맡는다. 세상을 떠난 친구만큼의 필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클라크는 타고난 성실성과 인내를 바탕으로 전문 문필가들의 도움을 받아 1814년에 일지의 초판을 출간한다. 루이스의 사후 5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루이스와 클라크의 업적도 세간에서 잊혀지고, 그 일지가 작성되었을 때만 해도 미지의 땅이었던 미국 서부에는 이미 개척자와 사냥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가 된 다음이었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원정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후 원정일지의 무삭제 완전판과 서한집 등의 자료가 새로운 편집을 통해 재출간되면서부터였다. 이전에는 단순히 북서지방에 대한 정찰 정도로만 여겨졌던 이들의 원정이야말로 오늘날에 와서는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자료의 보고임이 드러났던 것이다. 특히 원정대와 만났던 인디언 부족들이며, 자연 경관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진 지금에 와서는 비록 단편적이라 하더라도 이들의 일지야말로 과거를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비운의 영웅 루이스로선 무려 100여 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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