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습작을 충분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간을 넘어선 뒤에 비로소 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작가로 인정받으려는 성급함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가로서 칭송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증거물을 세상에 영원히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히 습작한 후 작가라고 불러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때 비로소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모욕에 불과하다.
---「김동인, 〈소설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중에서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도 그것을 표현할 만한 기교가 없다면 그 생각은 하나의 생각으로서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 예술품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용 없이 기교로서만 읽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런 화장 미인 같은 작품은 우리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설령, 도움을 준다고 한들 미미함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따라서 기교는 내용의 종속물로 삼아야 한다.
---「최학송, 〈내용과 기교〉」중에서
테마는 현실에 배양시켜야만 비로소 생명을 갖는다. 현실적인 생활을 시킨다고 해도 좋다. 다시 말해 테마와 현실이 털끝만큼이라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며, 무리가 있어서도 안 된다. 즉, 서로 어울려야 한다. 이것이 소설을 잘 쓰는 원칙 제1장 1조다.
---「채만식, 〈소설을 잘 씁시다〉」중에서
신인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문인의 생애가 묻어 있어야 하며, 글 한 구, 글 한 편에 각기 생명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성작가를 능가할 만한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신인 된 패기와 실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와 땀이 섞인 노력과 파도와 같은 정열, 바다와 같은 끈기가 필요하다. 나아가 문학의 생리를 벗어난 일체의 행동은 자신의 문학을 그릇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영랑, 〈신인에게 주는 글〉」중에서
몇 천 년을 흘러온 문학의 역사를 볼 때, 세계적인 명작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작품을 위해서는 기성의 문학이 표현하지 못한 새로운 사상과 감정이 필요하다. 이에 새로운 사상과 감정 찾기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감정이야말로 새로운 문학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계용묵,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중에서
어떤 지식이건 그 윤곽이나 일부분만 어렴풋이 알아서는 도저히 붓을 댈 수 없다. 사소한 부분까지 알아두지 않으면 단 한 줄의 묘사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태 혹은 풍속과 함께 당대 사회의 세계사적 이념까지 자세히 알지 않고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도 자세히 묘사할 수 없다. 또 안다고 해서 전부를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을 그대로 고스란히 기록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남천, 〈창작여묵〉」중에서
정말 좋은 수필은 시시하고 지루한 일상의 사소사(아주 작은 일)를 사상의 높이까지 고양하고, 거목의 잎사귀 하나하나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을 간직하듯, 일상사가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과 순량한 모럴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서의 가치를 품고 있어야 한다. 즉, 수필은 좋은 생각만으로 써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명철한 관찰안(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좋은 사상 역시 필요하다.
---「임화, 〈수필론〉」중에서
시인은 오늘 불러야 할 시의 소재가 뒹굴고 있는 청계천 다리 밑이며, 성 언저리의 빈민굴, 부랑아 수용소의 주변을 답사하고, 쓰레기통을 헤쳐, 거기서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야 한다. 그것이 오늘 한국 시인들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쓰레기통보다 더 추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요는 이 추한 소재를 시인이 아름답게 처리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노천명, 〈시의 소재에 대하여〉」중에서
작품의 아기가 설 때처럼 유쾌한 일은 없다. 그 거룩한 맛, 기쁜 맛이란 하늘을 줘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큰 땅덩어리를 줘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낳을 때의 고통이란! 그야말로 뼈가 깎이는 일이요, 살이 내리는 일이다. 그러니 펜을 들고 원고지를 대하기가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한 자를 쓰고 한 줄을 긁적거려 놓으면 벌써 상상할 때의 유쾌함과 희열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뜻대로 그려지지 않는 무딘 붓끝으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번민과 고뇌가 뒷덜미를 움켜잡는다. 피를 뿜는 듯한 느낌이란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현진건, 〈쓸 때의 유쾌함과 낳을 때의 고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