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진 모티프 자체는 특별히 이상하지도 기묘하지도 않다. 노을이 비낀 하늘과 멀리 펼처진 북유럽의 만을 배경으로, 화면에는 평범한 다리 한 개가 비스듬히 그려져 있다. 다리 위 저쪽에는 두 남자가 나란히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앞쪽에 해골을 연상시키는 불길한 얼굴을 한 남자 하나가 멍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두 손으로 귀를 누루고 있다. 이 남자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놀랐는지 화면에 그것을 설명해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그 남자의, 다시 말해 뭉크 자신의 불안에 휘말리고 만다.
많은 환상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뭉크도 자기의 환상 세계를 키우기 위해 친숙한 현실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환상이란 반드시 언제나 현실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뜻밖의 심연처럼 뻥 뚫린 불길한 다른 세계가 얼굴을 내밀 때 거기에서 두려운 환상 세계가 형성된다. 적어도 뭉크를 그랬다.
이 <절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뭉크 자신의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나중에 뭉크는 이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석양 무렵이었는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죽으 듯이 기진맥진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파란 피오르드와 마을 위로 불과 피의 혀가 너울거리며 돌아다녔다. 친구들은 먼저 가 버리고 나만 뒤에 남아 있었다. 그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포에 떨면서, 나는 자연의 큰 절규를 들었다..."
--- pp.308~309
그렇다면 그의〈아틀리에〉속에 사회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많은 우의상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림을 바라보며 왼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의미를 가진 우의상들이다. 우선 캔버스 바로 옆의 성 세바스찬의 나체 석고상 앞에서 아무렇게나 다리를 펴고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는 사회의 비참함을 나타낸다. 그 바로 뒤에 보이는 해골을 실은 신문은 당시의 저널리즘이 나폴레옹 3세의 어용신문이 되어 완전히 생명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그 뒤에서 옷감을 팔고 있는 유대상인은 말할 것도 없이 상업 활동을 의미하며, 그를 상대하고 있는 중산모를 쓴 남자는 부르주아지, 즉 시민계급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무덤 파는 인부, 창녀, 어릿광대, 농민, 실업자 등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장 왼쪽 끝에 있는 유대교의 박사와 그 뒤쪽의 가톨릭 신부는 물론 종교를 의미하며 앞쪽의 개를 데리고 있는 사냥꾼은 여가를 의미한다. 그 앞의 바닥에 내던져진 솜브레로(챙이 넓은 스페인 모자), 기타, 단검은 낭만파 예술의 쇠퇴를 나타낸다고 한다. 요컨대 이 화면 왼쪽의 사람들을 통해, 쿠르베의 눈으로 본 당시 사회의 생생한 상황이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 pp.173~174
그렇다면〈화가의 아틀리에〉의 벽에 걸린 지도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 지도 앞에 선 모델의 별난 모습은, 화가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우의상을 그리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판단하건대, 그것은 ‘명성’을 상징하는 우의상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머리에 쓰고 있는 올리브 나무 잎으로 엮은 관은 예로부터 명성이나 영광을 상징하며 트럼펫은 그 명성이 널리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을, 책은 그것이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 뒤쪽의 지도는 그 명성이 네덜란드 17주에 울려 퍼진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이 방의 주인공이 바로 캔버스를 향해 정성 들여 모델의 모습을 옮기고 있는 화가라면, 우의적인 모습에 의해 표현되는 명성은 바로 그 화가의 명성이 될 것이다.
--- pp.111~112
오비디우스의 시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하다. 클로리스는 대지의 님프이며 서풍은 봄바람이다. 겨울 동안 대지는 단 한 가지 색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새싹이 돋고 고운 봄꽃이 피어난다.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히자마자 아름다운 꽃의 여신으로 바뀐다는 것은 바로 자연 속의 봄이 오는 광경을 의인화한 것이다. 보티첼리는 이 변신의 과정을 아주 교묘하게 그려냈다. 이미 보았듯이 대지의 님프와 꽃의 여신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단 하나, 이 두 사람을 맺어 주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님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봄꽃이다. 이 꽃들은 님프의 입에서 넘쳐흘러 그대로 플로라에게 떨어져서 어느새 꽃의 여신이 입은 옷의 무늬가 되어 버린다. 흰색 한 가지로 덮여 있던 대지가 눈부시게 다채로운 꽃들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