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마존(www.amazon.co.uk)과의 인터뷰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메트로랜드』를 비롯해서, 9권의 소설을 쓴 줄리언 반스는 현재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뛰어난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최근작 『사랑, 그리고』에서 반스는 그의 이전 소설인 『내 말 좀 들어봐』에 등장하는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스튜어트, 올리버, 그리고 질리언은 이전 소설 이후 거의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작가 줄리언 반스는 이 세 인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지속적인 흥미와 『사랑, 그리고』의 어두운 비전에 대하여 제리 브로튼에게 말한다.
아마존: 『사랑, 그리고』는 선생님의 이전 소설 『내 말 좀 들어봐』의 속편과 다름없습니다. 사실상의 속편을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반스: 오랫동안 계획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책을 끝낼 때면 나는 대개 《됐어, 이제 끝났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말 좀 들어봐』는 좀 달랐어요. 결론에 다다랐는데도, 인물들의 삶에서 일어날 일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았죠. 종결이 되고 나서 나는 사람들이 발생한 일에 대하여 아주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한 내가 사용한 형식, 즉 인물들이 독자에게 말하도록 하는 형식이 아주 매혹적이며, 내가 활용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마존: 『내 말 좀 들어봐』를 끝내고 『사랑, 그리고』를 시작하는 사이에 인물들에 대한 선생님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반스: 어떤 면에서 작가는 작중 인물에 대한 의견이 없습니다. 인물을 창조하려면 작가는 완전히 인물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작가가 곧 인물이지요. 나는 한편에 물러서서 판단을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나는 독자로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내 소설엔 그러한 관점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 『내 말 좀 들어봐』에서 스튜어트를 그릇 판단했으니, 이 소설에서는 그의 정신적 면모를 좀 더 잘 그려 줘야겠어〉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난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스튜어트가 그가 겪은 일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아니면 이를 극복하는 생존자가 되거나, 아니면 십중팔구 가장 위험한 경우랄 수 있는 상처 입은 생존자 중 어느 쪽이든 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존: 『내 말 좀 들어봐』의 제사는 러시아 속담, 〈사람들은 증인처럼 거짓말한다〉입니다. 이 제사는 『사랑, 그리고』에도 유효합니까?
반스: 그렇습니다. 그 구절이 두 작품을 다 아우르기 때문에 『사랑, 그리고』에 새로운 제사가 없는 겁니다. 나는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에서 그 구절을 보았습니다. 말에 치어 죽은 주정뱅이를 목격한 사람 다섯을 부르면 그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아마존: 서로 다른 인물들이 독자에게 직접 말하고, 때로는 다른 인물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예단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왜 이런 기법을 사용했으며, 그리고 이런 기법이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게임에 참여하도록 하나요?
반스: 이 소설에는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3인칭 화자가 없습니다. 이런 형식에서는 만약 누군가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니, 비가 내리고 있지 않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것이 실제의 삶과 더 가깝기 때문에 나는 이런 형식이 마음에 듭니다. 친구들이 경험하는 어떤 정서적 갈등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각자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서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고, 모두 나름대로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접근법은 인물들과 그 밖의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독자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는 셈입니다. 물론 내가 여전히 무대 뒤에서 어느 정도 연출을 합니다만, 이런 식의 글쓰기는 독자와 인물 간의 상호작용의 범위가 훨씬 자유롭다는 겁니다.
아마존: 이 형식은 아주 극적입니다. 극작품에서와 같은 삼각관계의 절제와 긴장을 구상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소설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반스: 그래요, 나는 형식에 관심이 있는 작가입니다. 많은 영국 작가들이 형식을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나는 『내 말 좀 들어봐』에서 이 형식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뿐이라고 생각했고, 『사랑, 그리고』에서 이 형식을 더 밀고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컨대 이번 소설에는 독자에게 주는 대답들, 독자가 던진 질문을 독자가 해결해야 하는 질문들로 구성된 장(章)이 있습니다. 이건 좀 새로운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존: 소설은 〈최상의 허구〉라는 올리버의 주장과 〈논픽션〉을 옹호하는 스튜어트 간의 차이가 두 인물에 대한 독자의 견해 수립? 얼마나 중요한가요?
반스: 그런 논쟁은 분명 독자를 끌어들이는 논쟁입니다. 스튜어트는 자기를 논픽션 인간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인생에 대한 사실들을 학습했으니 내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도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올리버는 인생의 사실들은 홍역에 걸린 것 같으니, 인생은 일탈의 허구를 통해서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은 그 두 입장의 중간으로, 픽션은 궁극적 허구가 아니고, 궁극적 진실이라는 거죠. 픽션의 아름답고 숭고한 거짓말은 입증 가능한 어느 사실의 집합보다도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스튜어트 역시 사실을 믿고 사실을 모아 가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는 점점 믿을 수 없고, 그의 동기 또한 자신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인 게 드러납니다.
아마존: 『내 말 좀 들어봐』와『사랑, 그리고』는 둘 다 올리버의 아내 질리언에 가해지는 분명한 가정 폭력과 학대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들을 주축으로 회전하는데, 질리언은 자신이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정도에 대해 매우 모호한 주장을 합니다. 〈유발〉과 〈동의〉에 대하여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려고 했나요?
반스: 나는 결코 이러한 논쟁이 유발되리라 생각하고 책을 쓰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러길 바란다면 신문 같은 곳에 기고를 하겠죠. 작가가 하는 일은 인물과 스토리의 역학을 뒤따르는 것이고, 그것도 그런 역학의 논리가 인도하는 곳까지 줄곧 뒤따르는 겁니다. 『내 말 좀 들어봐』에서『사랑, 그리고』로의 진전은 이야기와 심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운명이 갈수록 고조된다는 것입니다. 스튜어트는 항상 질리언을 사랑했노라고 고백하고, 한편 질리언은 올리버와의 경험이 인생의 전부인지 어떤지 의심하고, 한편 올리버는 지극히 위험한 심리 상태에 빠집니다. 이 모든 것을 참작할 때, 이 소설의 역학은 『내 말 좀 들어봐』의 끝에서 보는 꾸며진 폭력 장면보다 더욱 언짢고 난폭한 결말에 다다르게 되겠지요. 하지만, 물론, 소설의 끝에서 일어난 결말에 대해 어느 쪽 이야기를 믿고 싶은지는 독자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아마존: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일 게 틀림없을 텐데요.
반스: 소설가의 의무는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보고되지 않고, 경시하거나 조소한 강간이 많았습니다. 나는 어느 식으로든 강간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아주 온건한 형태의 폭력도 내게 충격을 줍니다. 그러나 완전히 동기간 같은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성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낳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실상 〈교제 상대에게 당하는 성폭행〉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성폭행은 지극히 알쏭달쏭한 문제입니다. 법률적으로는 〈동의〉의 정의에 대하여 에누리가 없어야 되겠지만, 성교를 할 때, 많은 경우 애매한 분위기의 부추김을 받는 게 실상입니다. 배심원은 그런 문제에 대해 명쾌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소설가라면 마땅히 인정해야 하는 중요한 실상입니다. 이 경우에 배심원은 이제 독자입니다. 독자들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니, 안 내릴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오늘은 이렇게 생각하고, 내일은 저렇게 생각한다.〉 두 소설 모두 질리언 쪽에 신뢰할 수 있는 증거의 보전이 있습니다. 처음에 독자는 그녀가 곧게 나가는 화살이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확실한 것은 모두 어느 단계에서는 훼손되고 마는데, 질리언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존: 이제 이들 세 인물에 대해 끝을 냈다고 생각하나요?
반스: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나는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끝냈다고 생각하고 나서 8년 뒤에 이야기가 다시 계속되었거든요.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그 인물들은 지금의 인생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 그들에게 적어도 10년은 더 주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