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송아지의 앞다리를 잡고 어미의 머리 쪽으로 끌고 갔다. 암소는 옆구리를 아래로 향한 채 힘없이 드러누워 자갈이 깔린 울퉁불퉁한 바닥에 축 늘어진 머리를 올려놓고 있었다. 눈은 거의 감겨 있고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있을 뿐,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제 얼굴에 송아지의 몸이 닿는 것을 느끼자 변화가 일어났다. 눈을 크게 뜨고 코끝을 움직여 킁킁 냄새를 맡으며 새끼를 살피기 시작했다. 암소의 관심은 냄새를 맡을 때마다 강해졌고, 목구멍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코끝으로 송아지의 몸뚱이를 구석구석 탐색하면서 윗몸을 일으키려고 기를 썼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송아지를 꼼꼼히 핥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이상적인 자극 마사지라고 할 만한 것이어서, 어미의 까칠까칠한 혀가 끈적거리는 송아지의 몸뚱이 위를 기어가자 송아지는 등을 활처럼 구부렸다. 1분도 지나기 전에 송아지는 고개를 흔들면서 일어나려고 애썼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것은 회심의 미소였다. 나는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은 몇 번을 보아도 결코 퇴색하지 않는 장면처럼 여겨졌다.
---「1」중에서
“그럼 죽는단 말이오?”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요. 지금도 상당히 고통스럽겠지만, 조금 있으면 통증이 훨씬 심해질 겁니다. 보비를 잠재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어쨌든 보비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니까요.”
이럴 때면 언제나 사무적으로 말하려고 애썼지만, 그 진부한 말이 내 귀에도 너무나 공허하게 들렸다. 노인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그러더니 개 옆에 천천히 힘들게 무릎을 꿇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색 주둥이와 귀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꼬리가 천천히 마룻바닥을 때렸다. 털썩, 털썩, 털썩.
노인은 오랫동안 거기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일어나서 음울한 방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 있는 빛바랜 사진, 낡아빠진 더러운 커튼, 스프링이 망가진 안락의자.
---「10」중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런 뒤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학창시절로 돌아가 즐거웠던 시절과 친구들, 그리고 희망과 포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입에서 말이 술술 나오는 데 스스로 놀랐다. 나는 평소에 수다쟁이가 아니었다. 나는 상대가 따분해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초록빛 바지를 입은 두 다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조용히 앉아서 골짜기를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어야 할 때는 어김없이 웃어주었다.
그날 남은 임무를 모두 잊어버리고 여기 양지바른 언덕 비탈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나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차분히 앉아서 내 나이 또래의 여자와 대화를 나눈 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어떤 것인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20」중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낮지만 위협적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미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개들의 자연스러운 동작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천장 어딘가에 매달린 끈이 녀석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천천히 펴지고 몸이 경직되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 있었다. 그동안 녀석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나를 계속 노려보았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불타는 눈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전에도 딱 한 번 그런 눈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바스커빌 가의 개』(영국의 작가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라는 책 표지에 그려진 삽화였다. 그 그림을 보았을 때는 화가가 터무니없이 공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두 눈은 그것과 똑같은 노란빛으로 내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30」중에서
“사모님은 여기 앉히도록 하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측정을 시작하려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사모님! 누군가가 나에게 그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거친 돌담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노트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필을 쥐고 있는 헬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반짝이는 검은 머리를 이마에서 쓸어 올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었다. 나는 마주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데일스의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클로버와 따뜻한 풀에서 나는 데일스의 냄새를, 어떤 포도주보다도 사람을 도취시키는 그 향기를 갑자기 의식했다.
내가 그동안 대러비에서 보낸 2년은 지금 이 한순간으로 수렴되어온 것 같았다. 내 인생 최초의 큰 걸음은 바로 여기서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헬렌과 스켈데일 하우스 앞에 걸려 있는 명판의 기억,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기억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36」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