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처럼 단단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클레멘테가 한 발 물러서서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머리 위로 쳐든다. 두꺼운 오른쪽 다리로 마운드를 딛고 투수판을 밀어내고, 동시에 왼쪽 무릎을 들어 올리면서 홈 플레이트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던진다. 우오오오.
정말 터무니없는 공이다. 마치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듯한 커브. 한 순간 공이 바로 거기에 있는가 싶더니 없어진다. 맨홀 속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헛스윙. 구심이 삼진을 선언한다. 씩 하고 만족스럽게 웃는 클레멘테에게 그린이 힘차게 공을 던져 준다.
--- p.27
라이어니 씨가 날카롭게 아들을 쳐다본다.
“알렉스, 이해하겠니? 스포츠는 재미있어. 오후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이지. 하지만 학교공부가 더 중요하단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해했다.
아, 물론 알렉스는 양키즈 선수가 될 것이다.
단지 아빠에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할 뿐이었다.
--- p.48
샘 라이저는 몸을 뒤로 기대고 그 순간을 감상한다. 그는 지금 완전히 경기에 열중했다. 혼란스러운 생활이나 다른 모든 것들이 벗겨진 피부처럼 떨어져 나간다. 머리카락이나 숙제, 의사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야구만이 제일 긴박한 일이다.
--- p.58
카터 해리스가 돌진하며, 잔디 위를 재빠르게 달린다. 카터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걸 안다. 곁눈질로 그린이 홈으로 달려드는 걸 본다. 거긴 관심 없다. 이제 카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공을 향해 돌진한다. 그건 카터가 아는 온 세상이자 튀어 오르는 새하얀 지구이다.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과 고함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공이 알맞게 바운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절호의 기회, 이판사판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카터는 몸을 낮추고 짧게 깡충 뛰어 맨 손으로 공을 잡은 뒤, 한두 걸음 내딛어 오른발을 밀어내고, 있는 힘껏 던진다. 공을 던지자마자 카터는 바닥에 뒹군다.
--- pp.82~83
자신을 잃은 클레멘테가 씩씩거리며 흙을 걷어찬다. 내 잘못이 아니야. 클레멘테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루서가 그놈의 공을 잡았다면 득점하지 못했을 거야. 클레멘테가 루서 드로스에게 비수를 날리듯 우익수 쪽을 노려본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우익수는 팀에서도 나이가 어린 열한 살이자, 범죄와도 같은 실수를 저지른 5학년생이다.
그렇다는 건 루서 드로스도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얘기다. 아무리 노력해도 루서도 가끔 잘못을 저지른다. 게다가 그가 하고 싶은 건 우익수에서 나가 바위 밑에 숨는 것이다. 그래도 루서는 이런 생각을 한다. 너나 잘해, 클레멘테. 그래, 나 실수했다. 뭐 어쩌라고.
--- p.97
“두고 봐.”
샘이 확실하다는 듯 말한다.
“녀석이야 모든 힘을 쏟아 붓겠지만, 6회까지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 제일 먼저 빠른공이 높게 들어올 때를 알아차려야 돼. 그 다음엔 낮은 변화구가 땅에 튀게 될 거야. 그럼 녀석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할 거고, 그때가 바로…….”
의미심장하게 말을 끊는다.
“그때가 바로 뭔데?”
마이크가 속이 타서 말한다.
샘이 빙그레 웃는다.
“너희 팀이 녀석을 잡을 때지.”
--- pp.109~110
공이 발사되고, 미친 듯이 날아온다. 날아온 공에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린다. 공은 유격수 머리 위로 로켓처럼 날아가, 빈 공간으로 떨어진다. 샘은 타석에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자신을 본다. 본능적으로 2루타라고 여기지만, 3루타이기를 바란다. 맥박은 고동치고, 힘찬 발걸음에 심장은 기뻐 날뛴다. 평생을 살면서 공을 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다.
샘이 원하는 건 한 번 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난 빼앗긴 거야.
바보 같은 골육종.
--- pp.143~144
“경기를 즐겨!”
전에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즐기는 건 콜린의 전공이었다. 에이먼은 좀 심각한 편이였다. 방금 전 그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해한다. 정말로, 확실히 이해한다. 즐기는 거야, 알았지? 바로 그거다. 인생이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니까,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 p.179
샘은 자신이 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손으로 무릎을 꼭 쥐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오자니오는 아주 강하고 거친 선수다. 단 한 방으로 이 경기를 끝낼 수 있다. 경기장 아래에 있는 것보다 무력하게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샘을 지치게 하고, 훨씬 더 힘들게 한다. 적어도 경기장 아래에 있었다면 뭔가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내가 경기를 할 수만 있다면. 만약 내가 저기 아래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샘은 중간에서 생각을 멈춘다. 그는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 그 대신 경기에 몰두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뿐이니까.
--- pp.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