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둘러싼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과다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교사는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말이지요. --- p.30
이 같은 학교현장의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부담이 이미 과도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직이 적성에 맞는 교사, 즉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며 열정적인 교사일수록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는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 p.32
특히 여교사들에게는 직장 내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및 가족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육아를 하고 있는 여교사의 경우, 엄마이면서 동시에 교사라는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자녀가 등교거부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교사가 자기 자식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다니’ 같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로 인해 갈등을 빚는 경우지요. 혹은 자신의 아이가 비행에 가담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과도하게 책망하는 여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 p.40
더욱이 양호교사는 업무내용 면에서 보자면 학생들의 고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는 위치에 잇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입장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등교거부 학생이 양호실로 등교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담임교사나 학부모에게는 나름의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양호교사와 담임교사의 견해가 다른 경우가 발생하게 되면 그 역시 양호교사의 또 다른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 p.48
출근거부증상이란 사람과의 교류 경험이나 대인관계기술이 불가결한 교직업무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적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65
일반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40~50대 교사의 ‘마음의 병’은 이런 승진에 따른 우울상태 내지는 심신증으로 다수 나타나지요. 그중에서도 교감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되는 교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 바로 ‘샌드위치증후군’입니다. --- p.80~81
교사의 마음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는 일은 그 교사 본인만의 좌절이라는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 셈입니다. 한 명의 교사가 ‘마음의 병’에 걸리면 바로 학교현장에 혼란이 생기고, 학생들의 학습에 지장을 주게 되겠지요. 뿐만 아니라 학생의 건전한 인격을 육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공교육 그 자체의 존립기반이 위기에 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102
성실하게 노력하다 끝내 탈진증후군에 걸린 교사와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교사를 한데 묶어 똑같이 ‘마음의 병에 걸린 교사’로 간주해버리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마찬가지로, 교사의 정신질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정신의학계의 현실 역시 책임감이 부족하고 적성이 부족한 교사가 업무로부터 쉽게 도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 p.118~119
지도력부족으로 평가받은 교원 중에는 물론 본인의 노력이나 의욕부족으로 인해 학생지도를 제대로 해낼 수 없었던 교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본인의 성격과 자질이 교사의 직무에 적합하지 않아서, 본인 나름의 노력을 해봐도 적절하게 지도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 p.135
교사 개인의 마음 건강과 공교육 전체의 장래를 고려한다면, 가혹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성과 자질이 부족한 교사는 교사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p.141
학교현장에서 양호실은 아동과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를 포함한 마음건강관리의 1차 기관이 되며 양호교사는 그 전문가여야 합니다. --- p.152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젓가락 쥐는 법까지 가르쳐 달라는 소리를 듣는 직업이 현재의 교사들입니다. 과거에는 가정과 지역에서 일상적인 예의범절들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집단교육을 통해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학교에서 그 모든 것을 다 가르쳐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 p.170
정말 좋은 교육을 따라하는 것이라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때로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나 정보에 무작정 달려드는 경우가 많지요. 다수자에 포함되고 싶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학교 측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 p.187
그런데 최근에는, 공교육에서도 자연스러운 ‘차이’를 육성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의 달리기 경주에서 1등상을 주지 않는다든가, 학예발표회에서는 전원이 주역이라고 하는 경우를 들 수 있지요. 이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실행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내 아이가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학부모의 요구에 따른 경우이지요. --- p.205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쉬어버리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요’라고 말해주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저 친절하기만 한 의사는 교사의 오 년 후 또는 십 년 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공교육 자체의 장래에 대해 관심이 있을 리 없지요.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의학교육은 여전히 부족하고, 근로자의 정신건강에 대해 배우려는 분위기가 확립되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p.218
교사뿐만이 아니라 학부모, 지역주민, 사회의 일반인들,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각자의 영역에서 ‘윤리의 반부패 상태’라는 오늘날의 세태를 점진적으로나마 바꾸어 나가는 일에 책임을 통감하고 이를 실천할 적극적인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학교에만, 또는 교사에게만 모든 책무를 강요한다면 공교육은 쇠락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