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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그리고 가을

그 겨울 그리고 가을

: 나의 1951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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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53쪽 | 523g | 135*196*30mm
ISBN13 9788972754312
ISBN10 897275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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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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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까마득해서 정확한 날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당장 집을 떠나 피란을 가라는 공고가 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고랑포에서 격전 중이라는 좀 때늦은 신문기사를 본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광목천의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떠나자니 속이 시려왔다. 서둘러 점심을 대충 먹고 난 뒤였다. 고명이랍시고 밤콩을 넣은 백설기가 내 배낭 속엔 가뜩 들어 있었다. --- 「1. 북풍한설 찬바람에」 중에서

많이 기억하는 쪽이 약자이며 강자는 결코 기억하지 않는다는 깨우침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많이 상처받았다는 것이고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삶의 강제가 안겨준 아픔의 흉터가 아니라면 기억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존이란 본원적 치욕의 그때그때 상흔이 바로 기억이 아닌가? 기억은 상처 입은 자존심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내적 독백이다. 용서되지 않는 것이 주체이건 타자이건 우리를 번롱하는 우연과 필연의 거역할 길 없이 막강한 힘이건. 그러니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 「4. 4월의 올드 랭 사인」 중에서

바로 그때였다. 역사 쪽에서 미친개가 잰걸음으로 광장을 질러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으나 이렇다 하게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분명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다가온 그는 다짜고짜 나의 뒷덜미를 잡고 마구 흔들더니 내동댕이치듯 밀쳤다.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미친개에게 물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가 무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났다. 순간 돌멩이를 찾았다. 돌멩이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운 나에게 다가온 그는 다시 뒷덜미를 잡으려 했고 나는 몸을 숙이면서 피했다. --- 「6. 부칠 곳 없는 편지」 중에서

옛날 목욕을 하고 팔매질을 했던 강가는 이제 유원지로 변했고 막사가 있던 언덕은 완전히 수풀로 변해 있었다. 강물과 터널이 아니라면 인지가 어려웠을 것이다. 머지않아 새 철길이 완공되면 동화와 간현역이 합쳐서 서원주西原州역이 될 것이라 한다. 한센병 환자를 숨기고 밥장수를 하던 농가의 흔적도 대중할 길이 바이없었다. 황량하던 옛 마을은 낚시터와 놀이터를 갖춘 무성한 녹색공간이 되어 있었고 웬 멍청하게 생긴 백발노인이 하나 철 아닌 이삭줍기라도 하는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하고 있었다.
---「12. 세월이 간 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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