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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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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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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3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51쪽 | 46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2130
ISBN10 89849821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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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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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특별법 관련 현상수배자. 붙여진 지 오래 되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척 보기에도 그것은 오래된 나무 상자처럼 남루하고 초라했다. 하긴 현상수배 전단이 뮤지컬 공연 포스터처럼 화려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수배자로 낙인 찍힌 이들의 면면을 무심히 살폈다. 군 출신 전직 장관의 얼굴도 보였고 지방경찰청장의 얼굴 아래에도 몇 백만 원의 수배 금액이 적혀 있었다. 뭘 보냐. 지들끼리 짜고 도는 수작을. 이미 얼큰하게 술이 된, 키 큰 친구 하나가 차연의 어깨를 쳤다. 여기, 이 사람은 누군데 얼굴이 안 나와 있지? 모두 여덟 명의 현상수배자 이름과 죄명이 소개된 가운데, 사진 들어갈 자리가 하얗게 비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전형근. 안기원 대공수사국 차장. 불법 감금 및 독직 가혹행위. 그렇게 쓰여있다. 가면귀신 몰라? 어린노무 자식 같으니.
가면귀신. 그때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다. 잘 자던 아기도 그 이름만 들으면 가짓빛으로 경기를 일으킨다는. 취조실에서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길어도 사흘 안에 그들이 원하는 답안대로 자백을 하게 만드는 고약한 고문 기술의 소유자. 피고문자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는 흰 마스크와 코와 입을 가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가혹 행위를 당했던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그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문 피해자에게 흰 마스크는, 정체불명의 익명성이 주는 구체적인 공포의 상징이기도 했다.
--- pp. 188∼189
"김시민 그 친구, 사이보그더군요."
"사이보그?"
"과학수사국 사람들이 자세히 설명을 하던데, 레플리컨트? 그게 정확한 명칭이랍니다. 생물학적 소재로 만들어진 유전자 합성인간. 어렵죠?"
"그 사람이 그럼."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완전히 속았지 뭡니까. 이건 플라스틱 꽃을 보고 예쁘다 향기롭다 감탄했던 꼴이니."
"아이구 머리야."
"고정하세요. 더 들으셔야 할 말이 많습니다."
끄르륵, 탄산가스 트림을 뱉어낸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이미 국민 1만 명 당 한 명이 레플리컨트라는군요. 그 얘기 듣고 저도 되게 놀랐습니다. 물론 광물 채취 단지나 핵 처리 시설 같이 허가된 지역 외에 거주할 수 없게 되어 있죠. 문제는 그 관리가 불법체류자 다루는 만큼이나 힘들다는 겁니다."
"왜요?"
"사람과 구별이 힘들기 때문이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만 해도 김시민이, 뭐냐,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꿈엔들 가져봤습니까."
"그렇군요."
"보이트캄프 머신이라는 기계로 동공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게 통상적인 색출법이랍니다. 그러니 찻길 막고 음주 단속하듯 레플리컨트를 골라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거죠. 여권 같은 거야 돈 3만 원이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는 문제고, 쌍소리 좀 하자면 이거 졸라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나처럼 로봇 다리 하나 해 넣은 놈은 척 보기에도 다리 병신인지 알 수 있고, 몸 전체가 인조 유기물로 만들어진 그것들은 섹스파트너조차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니." (중략)

"레플리컨트들은 일생에 단 한 번, 죽는 순간에만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정밀하게 조합된 생체 회로가 끝내 작동을 멈추고, 신경 전류는 그 수치가 습속히 올라가고, 독립된 조직들은 오류 데이터를 받아들이며 기계적인 손상을 일으키고, 과열이 되고. 뇌 조직의 활동이 멈출 때까지 연소 시간은 10분 안팎?"
"끔찍한 일이군요."
"끔찍하죠. 세상 구경을 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접하며, 생을 느끼며, 그렇게 삶을 마감했으니."
"7년?"
"최대 7년으로 생명이 제한되어 있다더군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그 이상 견디는 유기 생물체는 아직 만들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설계 당시부터, 아예 수명을 7년으로 제한하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는 거죠. 통조림 바닥에 유통기한을 찍어 넣듯."
"그럼 김시민이, 일곱 살이었다는 말인가요?"
"애매한 문제네요. 만들어질 적부터 이미 20대 초반의 신체와 지식 수준 등이 프로그램 되었을 거 아닙니까. 그 상태로, 말하자면 20대 초반으로 7년을 살아갔으니. 이걸 일곱 살이라고 해야 하나 20대 초반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20대 후반이라고 해야 맞는 건가."
--- pp. 148∼153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1950년대의 정신병동처럼 낡고 음산한 아파트 9층 906호에 살고 있는 주인공 ‘차연’.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슈퍼마켓, 의류공장 등에서 일했으나 현재는 장기 실업상태에 있으며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어느 날, 이웃한 908호에 홀로 사는 한 치매 노인을 매주 화요일마다 돌보러 오는 파출부 ‘원형’이 그에게 접근을 하고 차연은 연상인 그녀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던 중 원형이 돌보는 908호 노인이 어이없이 끔찍한 몰골로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연 누가, 왜, 혼자 사는 노인을 죽였을까. 노인이 살해당하기 직전 차연에게 안녕을 고하고 사라진 ‘원형’은 이 살인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908호의 노인을 살해한 것은 904호에 사는 김시민으로 밝혀졌다. 평소 차연에게 혁명,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 주동자를 없애야 한다는 등의 거센 말을 하곤 했던 김시민이 노인을 죽인 것이다. 이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김시민은 인간이 아니라 레플리컨트였던 것. 생물학적 소재로 만들어진 유전자 합성인간인 레플리컨트는 수명이 고작 7년 밖에 안 되는 사이보그의 일종이다. 작품 속에서는 네덜란드에는 국민 1만 명 중 한 명이 레플리컨트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이들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과 같이 발바닥이나 등뒤에 바코드가 찍혀 있다. 그리고 레플리컨트 중에는 자신이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이런 사실과 차연이 오랫동안 슈퍼마켓에서 바코드를 찍는 일을 했다는 사실은 묘한 연관이 있다). 908호 노인을 죽인 김시민은 얼마 후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7년)을 다 한다.
그는 왜 908호 노인을 죽인 것일까.
레플리컨트 김시민의 배후에는 ‘원형’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권력을 업고 폭력과 악행을 자행하는 인물들을 살해하는 것. 다시 차연의 앞에 나타난 원형의 말에 의하면 908호 노인은 늙은 고문기술자 전형근이다. 원형 무리의 목적은 온갖 악행을 일삼는 전형근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시민이 죽인 908호 노인은 전형근이 아니라 전형근의 복제인간이었다. 진짜 전형근은 서울 외곽에서 ‘영광전당포’를 운영하며 서민들을 착취하며 살고 있었다.
이쯤에서 원형은 차연에게 ‘영광전당포’ 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진짜 전형근의 살인을 요구하고 차연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망설임 끝에 차연은 전형근을 죽일 수밖에 없는 대의명분에 굴복하고 영광전당포로 그를 찾아가 가슴에 품고 있던 등산용 손도끼로 그의 머리를 박살낸다.
부패 권력과 그를 응징하기 위한 보복이라는 이상과 같은 줄거리 외에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진짜와 가짜, 실제 인간과 생물학적 유전자 합성인간에 대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김시민은 명백한 레플리컨트로 언급되고 있지만, 나머지 인물들(차연, 원형 등) 역시 여러 부분에서 그 존재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혹이 실마리처럼 던져진다. 특히 차연은 근거를 알 수 없는 기억과 기시감에 시달린다. 언제인지, 어떤 상황에서인지 모를 기억들이 그의 일상 속에 악몽처럼 스며들고 괴로워하는 차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여지껏, 보이지 않는 누군가 은밀히 숨어 내 행위와 의지를 원격 조정해 왔던 것은 아닐까.”

관련자료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정치와 엽기, 역사와 추리를 결합한 문제소설
한차현이 파악하는 이 세계의 구도는 권력에 의해 편성되고 재편된다. 세계는 은밀히 실현되는 무서운 권력(들)의 장이다. 개인의 무의식에까지 침투한 권력은 보이지 않는 견고한 ‘체계’로 화해 있으며, 권력/체계는 자기증식을 거듭하며 더욱 미세해지는 동시에 거대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의 일부가 되어 버린 개인은 힘없이 마모되거나, 권태롭고 무의미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없거나, 있어도 극히 작을 뿐이다. 한차현은 이 예정된 마모를 지연시키고 지독한 권태를 견디기 위해 소설을 쓴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도처에 숨어 있는 권력과 그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에 개입하기와 동의어이다. 타자와 세계에 대한 단선적인 개입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개입하는 모든 외부의 힘에 역으로 개입하는 일은 한차현에게는 ‘저항’과 ‘혁명’을 의미한다. 채기와 근성을 지닌 한차현 소설이 갖는 제일의 미덕은 세계와의 불리한 싸움을 역전시키려는 이 투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908호 노인을 죽인 게 누구일까? 한 편의 추리소설인가 보다 하고 읽어가다 어느 순간 이거 예사롭지 않은 소설이네, 하고 눈을 비볐다. 생물학적 소재로 만들어진 유전자 합성인가-레플리컨트라니! 그때부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정체가 사뭇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추리이고, 판타지이고, 폭력과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사회비판 문학이면서, 이 소설은 또한 지독한 존재론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선과 악, 내면과 외부, 나와 남의 경계가 서로의 가치에 의존해 생멸한다는 진리의 한복판을, 작가 한차현은 신세대의 발랄한 엽기 취향으로 상쾌하게 가로지른다.
-구효서(소설가)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고문기술관이자 전당포 주인인 주응달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차연의 모습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공포는 어쩌면 나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사실은 레플리컨트이거나 클론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서 온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모체는 따로 있고, 지금 여기서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다툼을 하고 있는 나는 신체 어딘가에 제조번호가 찍힌 공산품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멀고 가까운 나의 모든 기억은 생면부지인 타인의 그것일는지도 모른다는, 나의 의지와 사고는 모두 누군가에 의해 훈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물거품으로 이루어진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마치 이불을 흠뻑 적시는 악몽을 꾸고 난 느낌이다.
-하성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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