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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48g | 140*210*30mm
ISBN13 9788931010237
ISBN10 893101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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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닌은 자동차 문을 열고 낯선 자의 어깨에 친절하게 손을 얹었다. 그러나 순간 그는 그 남자가 죽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수리에 총알이 관통해 있었다. 그제야 클레닌은 오른편 차 문이 열려 있는 것도 깨달았다. 차 안을 보니 피가 많이 흘러 있지도 않았고, 시체가 걸친 짙은 회색 코트도 말짱해 보였다. 외투 호주머니에서는 노란 지갑의 한쪽 끝이 빠져나와 비쳤다. 그것을 뽑아본 클레닌은, 사망자가 베른 시경 경위 울리히 슈미트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p.10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자네는 기를 쓰고 내 뒤를 추적했지. 이것이 계산서라네. 그 당시 토파네 시 교외의 그 곰팡내 나는 주막에서 터키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채 우리가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베르라하? 자네의 명제인즉 인간의 불완전함, 즉 우리가 타인의 행동 방식을 자신 있게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아가 만사에 개입하여 작용하는 우연을 고려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범죄가 폭로되고 마는 근거라는 거였지. 인간은 장기 말처럼 조작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네는 주장했네. 그와는 달리 나는 반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런 명제를 내세웠지. 바로 인간관계의 뒤얽힌 상태야말로 인식조차 되지 못할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다는 것, 이 같은 이유에서 엄청나게 많은 범죄가 처벌되지 않음은 물론,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감추어져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네.--- p.74~75

그는, 잔뜩 곪은 종기처럼 어떤 수용소에든 득실대던 수용소 의사들 가운데 하나였지요. 학문적 열의를 갖고 대량 학살에 헌신했던 파리 떼들, 몇백 명 포로에게 공기며 페놀, 석탄산, 하늘과 땅 사이에서 벌어진 그 악마적 쾌락을 위해 수중에 닿는 것이면 그 밖의 무엇이든 주사를 놓았던 무리들, 심지어는 필요에 따라 마취도 하지 않고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해대던 놈들, 그것도 뚱뚱보 원수가 동물의 생체 해부를 금지했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라고 큰소리를 쳐가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넬레 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겠군요. --- p.174~175

“수사관이란 모름지기 현실을 문제시할 의무를 지지.” 노수사관은 대답했다. “바로 그런 거야. 이 점에서는 우리는 전적으로 철학자들처럼 일에 착수해야 하지. 철학자들이란 모름지기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연후에야 그들은 자신들 일의 진상을 파악하고, 예술에 관해 더없이 훌륭한 사고(思考)에 도달하려고 애쓰며, 죽음 후의 삶에 관해 숙고한단 말일세. 다만 우리는 그들보다 덜 쓸모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지.”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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