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렇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비유하자면 평화시위는 화폐와 같고, 폭력시위는 황금과 같다. 한때 화폐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금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했다. 만일 한국 사회가 화폐가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100만이 모였을 때 정부는 겁을 먹고 항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청 앞의 100만이 황금이 아니라 종잇조각에 불과할 수 있음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마땅히 환전이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진보적인 가치관이 모두를 위한 것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의 화법으로 말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결된 우리’를 통해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했던 지난 민주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착한 개인과 정당한 시민이라는 문법 안에서 촛불이 머물러 있었다면, 광장에 촛불이 가득 찼을 때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누가 국민인가? 주권자로서 국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이 너무나 자명하다고 생각해 깊이 따져보지 않았지만, 촛불 사건은 거기에 법의 큰 구멍이 존재함을 가르쳐주었다. 법이 적용되는 대상이고 도달하려는 목표이자 ‘법-이상’의 출처이기도 한 저 국민과 실체로서의 주권자 사이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대의 민주주의의 이론적 한계만이 아니라 촛불시위의 주체─스스로 ‘대한민국의 주권자’로 선언했던 사람들─가 지닌 복잡한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여성들이 ‘광장’의 주도세력이 되는데 인터넷 동호회 공간에서의 전자적 관계 맺기와 소비자로서의 숙련된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선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치와 경제, 특히 소비경제가 맺고 있는 관계, 혹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동시키는 소비 경제의 규모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네트워크, 공동체의 형태들 그리고 ‘삶능력biopower’을 생산하는 ‘정동적 노동affective labor’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무엇보다 촛불항쟁에는 아나키즘적인 원초적 신념은 있어도, 하나의 순환이라 할 만한 사회운동에 필수적인 새로운 이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을 말하지만, 이는 새로운 이념이라기보다 차라리 이념의 빈곤에 따른 고육지책에 가까워 보인다. 대항이데올로기가 없다면 지배이데올로기라도 갖다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촛불을 통해 얻은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과 잠재력은 분명히 새로운 사회 운동의 순환을 예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과학 진실 게임으로 쉽게 환원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 문화가 연결돼 있다. 과학과 과학자는 편견과 이해관계 없이 가장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한다고 믿는, 과학에 대한 경의감은 후발 근대 국가이자 과학기술 덕분에 압축 성장을 일궈왔다는 자부심을 지닌 우리 사회의 오래된 태도다.”
“이제, 우리 ‘미네르바-좀비들’은 당당히 커밍아웃해서는 ‘Be the Reds!’라는 괴담을 선제적으로 퍼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괴담은 「좀비 선언」이 되겠지요. 용산 참사 이후 많은 좀비들이 여전히 촛불을 켜고 추운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잃을 것이라고는 각성되지 않은 머리, 즉 정치적 무뇌 상태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얻을 것은 온 세상이겠지요.”
“중산층이 이기적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중산층으로서의 충분한 경제적 정치적 권리와 기반을 아직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이 비출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자신의 계층과 가까울수록 촛불은 좀 더 빛나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촛불은 어둡다. 이것은 왜 비정규직의 저항 현장에 촛불이 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촛불 자체에서 종교계의 참여는 단지 촛불의 종교성을 최종적으로 확증해주는 장치였을 뿐이다. 촛불의 종교성이 촛불에 대한 종교계의 참여를 필연적으로 가능케 한 것이다. 종교계의 참여 이전에도 이미 촛불은 충분히 종교적이었다. 이것은 종교인들이 촛불집회에 정치적으로 참여한 데 비해, 일반인들이 종교인들보다 촛불을 더 종교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촛불은 이명박 정부와 부르주아를 향해 쾌락의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중간계급의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불을 붙인 존재는 바로 이들 중간계급의 아들딸들이었다. 10대들은 ‘행동’을 통해 감각의 구조를 바꾸었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현시킨 것이지,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화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인기와 한국 사회에 내재한 평등주의에 대한 열망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이처럼 촛불은 바깥을 비추는 각성의 계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내면을 드러내는 낯선 꿈의 풍경이었다. 이런 까닭에 촛불은 도시의 환등상이었고, 촛불을 든 ‘시민들’은 군중이 자아내는 몽환적 현기증에 너도 나도 매혹당한 존재들이었다.”
“촛불은 스스로 현재의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념과 노선의 정립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단지 그 가능성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아울러 ‘거리의 정치’를 대의하는 ‘운동권 정치’는 없었다. 촛불은 운동권 정치 문화를 가볍게 넘었지만, 스스로 발전해 인민권력 구성의 계기를 포착하지는 않았다. …6월 10일 장벽을 넘은 민주주의와 7월 11일 전국대표자회의에 갇힌 민주주의가 시사하는 건 한 가지, 대체하고 자치할 새로운 네트워크가 출현하지 않는 한 모든 민주주의는 현존 질서를 옹호한다는 실체적 진실이다”
"나는 순수성의 모랄이 여러 차원에서 수많은 촛불 참여자와 관망자의 시위에 대한 인식, 혹은 자기인식을 가로지르며 작동했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의제 확대에 부정적이었고, 또 많은 이들은 확대된 의제들을 정치이념과 대의체제를 매개로 정치화하려 들지 않았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촛불 이후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탄식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인 ‘의식화’의 회피, 기존의 ‘매개 층위’에 대한 거부에는 혹시 부정(不淨) 금기와 오염의 공포, 순수성의 모랄이 배어 있지 않았을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