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의 대화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한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졌다. 결국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혹 여러분 중에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학창시절 나는 학생 오케스트라단에서 활동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 박사도 한때 첼로를 연주했다고 하여 무척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서로에게 “그렇다면 왜 음악을 택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 실력으로는 콘서트마스터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솔리스트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라고 드러커 박사는 자신이 음악을 포기한 이유를 밝혔다. 콘서트마스터란 연주자들을 대표하여 악단을 인솔하는, 이른바 ‘악단의 경영자’를 뜻하는 것이고 솔리스트는 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라고 보면 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두 가지 모두 같은 음악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둘 사이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조직을 하나로 묶는 사람과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분명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소니의 CEO는 콘서트마스터이지 결코 솔리스트라고 볼 수 없다. 가끔 솔로로 연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 pp.256-257
또 하나의 좋은 예는 바로 〈와호장룡(Green Destiny)〉으로, 이 작품은 SPE(Sony Entertainment Pictures) 아시아가 제작한 전편 중국어 대사의 무협영화이다(무협영화는 대부분 중국의 고전적인 스타일로 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CG 기술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며, 올해 아카데미상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모두 열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미국에서는 자막 처리된 영화가 상영되는 일이 매우 드물 뿐 아니라 더구나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SPE는 지금까지 할리우드적인 것에만 집중되어왔던 영화의 소재를 전세계로 확대하고 감독과 스태프, 배우에 있어서도 전통적 개성과 장점을 살린 작품을 제작한 후 그것을 할리우드 배급 시스템을 활용하여 마케팅하는 방식을 통해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할리우드 내에서도 새로운 도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SPE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는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재능과 개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전통과 북유럽의 기술이 협력하여 다음 번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것이 더 이상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 pp.124-125
로마에 체류하면서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 씨와 주로 도쿄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경영인인 나는 언뜻 보아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대감각이나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는 면에 있어서는 놀랄 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씨는 고대로마제국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처럼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우리는 연령상으로도 같은 세대에 속할 뿐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맞게 모든 것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지금 현재 눈앞에 놓여져 있는 개별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도 나름대로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전적으로 일치했다. 로마제국의 번영은 과거에 속한 일이긴 하지만 로마제국을 비롯해 그 후에 들어선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은 도시국가의 흥망성쇠 등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 그것을 현대 사회와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자세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온고지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p.48-49
내가 소니 사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처음 약 3년간은 빌 게이츠를 포함한 미국 미디어 산업 분야의 최고실력자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려고 애썼다. 사실 미국의 컴퓨터, 영화, 통신, 방송 등의 첨단 미디어 산업은 20에서 30명 정도의 극소수의 최고경영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비롯하여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닐리, 그리고 휴렛팩커드의 루 플랫 등이 그 대표주자들이다. 물론 그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까지 따지자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 산업의 경우는 월트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을 비롯한 극소수의 메이저 스튜디오 최고경영자들이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소니가 업계 최고의 실력자들과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실제로 업계의 향방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들 소수의 중심인물과 주파수를 맞추어가면서 소니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전략이다. 즉 중심인물들과 함께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라는 비전을 공유한 후에라야 비로소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p.36-37
이 책의 내용은 소니그룹의 사내 홈페이지에 마련된 나의 개인코너 ‘A Point of View’에 올렸던 글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코너는 나에게는 일기장인 동시에 전략을 구상하는 메모장이기도 하고,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많은 사원들과 메일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이곳에 남긴 나의 기록을 통해 사원들에게 ‘변혁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언제나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부디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나의 ‘고민과 노력’이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