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그 세계를 몰라. 동물의 왕국이야, 그게. 어떡해, 끗발 없어서 군대 끌려온 놈이. 피할 수도 없고 대들 수도 없구. 그럼 이를 갈면서 버티는 거지. 입대 초기에 그러구 나니까 나중에는 맞는 게 편해지더라구. 여긴 이러구 사는 데다 그러면서 다른 대가리만 굴리는 거야. 그래야 살잖아. 아니면 못 살아. 난 군대가 좋았어. --- p. 47
대한민국은 유병언이 같은 사이비 교주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그런 구조야. 박태선이 세운 전도관이나 문선명이 세운 통일교, 그게 다 유병언이 구원파랑 비슷한 거지. 내가 결혼 전에 전도관에 다녔구, 애들 엄마도 거기 어린이부 교사랬잖아. 그때 박태선이가 신앙촌을 만들었어. 거기가 뿌리가 돼서 우리나라 사이비 종교들이 모두 나왔다고 봐. 나중에 제정신 들어서 보면 그게 다 완전 사기꾼 집단이야. 근데 공무원들 하는 짓이 그거랑 도낀개낀이라니까.--- p. 62
그때 정말 못된 짓 많이 했네. 늦게사 성의 희열을 알아서 돈만 있으면 계집질이었어. 유부녀나 처녀들이 아니고 술집에 몸 파는 애들 데리고 노는 거야. 허무하고 말 게 어딨어? 오히려 책임이 없으니까 편하지. 술집 기지바들이랑 하룻밤 풋사랑은 했을망정, 따로 길게 만나고 살림 차리고 그런 거는 없었어. 나중에 집사람이랑 이혼할 때랑 그다음에는 살림도 차려봤지만. 캬바레서 만난 여자들이랑도 여관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길게 연애하고 그런 거는 없었어.
--- p. 67
일수방 아까워서 니야까에서 자면서 2만 8000원을 키우면서 다시 살아온 거야, 지금까지. 제일 싸구려 돼지호박 5500원 어치로 완전 밑바닥에 굴러떨어진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거야. 그때만 해도 처자식 서울로 불러올릴 일념으로 정신 차리구 모은 거지. 유별나게 바람이 센 모퉁이가 있지. 그걸 지나오면 또 달라져. 나는 잡초야. 어디다 집어던져놔도, 어떤 구뎅이에 떨어져도, 내 힘으로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 p. 88
한 놈 한 놈한테 몇 백이라도 쥐어주고 나와야지 생각하니까 최소한 돈 1000만 원은 있어야겠더라구. 그러느라구 자꾸 늦어져. 막내 아들놈이 서른여덟이야, 77년생. 다들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있겠지. 애들이 더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될지. 애들 얘기는……그만합시다. 그 얘기만 하면 여엉……(다시 운다). --- pp. 107~109
당시 나는 꿈도 없고 그냥 배불리 먹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만 알았죠. 모자르는 게 없는 여건이어서 그랬나 봐요. 아니, 모자른 건 있었는데 채울 수 없는 거였지요. 마음 붙일 곳……, 나를 챙겨주는 어머니나 집, 그런 거요.
--- p. 152
저러다 죽는구나 싶더라구요. 한참 지나서야 헬기가 와서 그 친구랑 다른 부상자들을 실어 가고 우리는 다른 헬기 타고 부대로 돌아왔어요. 결국 그 친구는 죽었대요. 헬기에서요. 그러면 정말 여러 날을 무지 힘들지요.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그런 소리가 났을까도 싶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소리도 계속 들리는 것 같고. 안됐지요. 제일 팔팔하고 좋을 나이인데 남의 나라 군인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으니……. 언제든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 p. 178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그렇게 떠돌았는지……. 생각해보세요.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온 거잖아요. 그러니 몸이고 마음이고 붕 떠 있는 거예요. 내내 마음을 못 잡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하는 일 없이 돈 떨어질 때까지 술 먹고 여자랑 놀고 그러다가는, 서울 형네도 잠깐 있었고, 동대문 근처에서 완구 노점도 하고. 그렇게 떠돌며 일도 하다가, 뭘 해도 현실감이 없고, 뭘 하고 싶지도 않고.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사람된다고 하는데, 저는 사람이 안 됐어요. 등 비빌 데도 없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목수 일은 그 한참 뒤에 시작한 거예요. 많이 떠돌다가 청주 고향 동네 형 따라서 공사장을 다니다가 목수가 된 거예요. --- pp. 196~197
조치원서 방황하며 살 때 오다가다 여자들도 여럿 만났고, 같이 산 여자들도 있어요. 그중에는 매춘 생활 하는 여자도 있었고, 남편 있는 여자도 있었구요. 몸 파는 여자는 내가 그 집을 몇 번 가다 보니까 친해지게 됐고, 그러다가 눌러살게 된 거지요. 내가 돈을 벌 때가 아니니까, 주로 여자한테 빈대 붙은 거예요. 매춘하는 여자들이 몰려 있는 동네기는 한데 지방이니까 규모가 작지요. 그런 인연이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어떤지는 더 겪어봐야 아는 건데, 그걸 알도록 길게 살지는 않았어요. --- p. 201
내가 못났다는 생각에 더 벽을 만드는 거겠지요. 남한테 나를 다 열지를 못해요. 지금이야 열어봤자 바뀌는 것도 없으니 더더구나 더 열고 말고가 없지만요. 내가 못난 사람이다, 열지를 못한다, 여자를 두려워했다, 젊어서 조루였다, 이런 이야기들도 내 평생 남한테는 처음 하는 거예요. 오늘 최 선생한테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 하게 되네요. 이런 이야기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 p. 221
고시원에 한 달 내는 돈이 26만 원이에요. 식사는 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말고, 먹든 안 먹든 내는 돈은 같아요. 65세 딱 되니까 보훈처에서 참전 용사 연금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참 고맙더라구요. 조국이 나를 안 잊고 챙겨주니까 고맙지요. 그 연금 17만 원에 구청에서도 5만 원이 더 나와요. 거기에 내가 은행에 넣어두고 있는 돈이 5000만 원 정도 있어요. 그 이자가 좀 나오고. 거기에 노인 연금 20만 원이랑 국민 연금 좀 해서 70만 원 정도가 수입이라면 수입이지요.
---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