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여러 해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 슈베르트가 쓴 [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 1822년 7월 3일 ---「시작하며」중에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교차하는 흐름들은 미약하고 부차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겨울 나그네]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역사를 통해 전파된 역사의 산물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일례로 뮐러가 이 작품을 썼을 때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겨울 여행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나폴레옹 군대의 모스크바 퇴각이다. 뮐러는 1814년에 나폴레옹에 맞서 싸운 독일 애국자였지만, 그 바로 전에는 충성스러운 마음이 한층 혼란스러웠다. 1812년 9월 러시아를 침략한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은 다국적 부대였고, 오스트리아 병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해 12월에 러시아에서 퇴각한 군인들 12만 명 가운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기타 다른 독일 지방 출신자들이 5만 명이었다. 프랑스인보다 독일 민족이 더 많았다. 프란츠 크뤼거의 [눈 속에 주둔한 프로이센 기병대]라는 그림은 시간이 조금 흘러 1821년의 작품인데, 눈으로 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스산한 시체의 모습이 [겨울 나그네]를 다른 맥락에서 바라보도록 시각적 도움을 준다. 혼란스럽고 끔찍한 전쟁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에게 눈 덮인 풍경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하게 한다. ---「제3곡. 얼어붙은 눈물」중에서
우리가 음악에서 느끼는 강력한 감정을 제대로 짚어낸 대목이다. 우리의 역사든 다른 문화의 역사든 지난 시대의 분위기와 주관성을 불러내고 압축해서 보여주는 음악의 특별한 힘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렇게 환기된 감정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슈베르트 시대의 감정이 대부분 사라지고 묻혔다면, 우리가 [겨울 나그네] 같은 작품에 그토록 관심을 보일 리가 없다. 감정의 역사를 살펴보는 다른 방법들도 있겠지만, 음악만큼 내적으로 충만하고 위력적인 경험을 약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4곡. 동결」중에서
책의 한참 앞에서 카스토르프는 실패하기는 했지만 한 차례 마의 산에서 도망치려는 시도를 했다. 눈 덮인 풍경이 펼쳐진다. [보리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다는 것을 아는 이상, 실패로 끝난 카스토르프의 이 여행을 [겨울 나그네]와 겹쳐서 읽는 것은 너무도 쉽다.
장의 제목은 ‘눈’이다. 타고난 본성에 따라 겨울 풍경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 나그네의 곤경과, 사방이 눈에 갇힌 요양원의 편안하지만 죽음과 같은 품속으로 빠져드는 [마의 산]의 주인공 결핵 환자 카스토르프의 곤경이 왠지 유사하게 보인다. ‘눈’에서 카스토르프는 갇힌 곳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밖을 돌아보다가 길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궁극적인 질문들에 맞닥뜨린다. 그러므로 ‘눈’을 읽으면 [겨울 나그네]를 노래하거나 경험하기 위한 좋은 상상력, 정신력 훈련이 된다. ---「제5곡. 보리수」중에서
이렇게 말고 각각의 곡들을 독립적인 경험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몇몇 연주자들은 실제로 노래들을 겹치거나 묶어서 부르면 각각의 곡의 독자적인 개성이 흐려진다고 여긴다. 나는 이런 식으로 가곡 리사이틀을 구성하지 않는다. [겨울 나그네]가 내게 좋은 본보기이다. 슈베르트의 노래들로 무대를 꾸밀 때 [겨울 나그네]는 몹시 매력적인 예가 된다. 이 작품은 조성(먼 조성과 가까운 조성, 장조와 단조)을 잘 배치하여 큰 효과를 거둔다. 예컨대 조성 관계를 통해 기나긴 여행에서 노래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나타낼 수 있다. 길이가 짧고 빠른 곡이 길고 느린 곡들 사이에 다리가 될 수 있다(가곡 작곡가로 유명한 프랑시스 풀랑크가 슈베르트로부터 이것을 배웠다). 앞서 보았듯이 모티브의 연결로 특정한 노래 사이에 근접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동결]의 몰아치는 셋잇단음표가 [보리수]의 바스락거리는 셋잇단음표로 이어지고, [보리수]의 마지막 절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는 부점 음형이 [넘쳐흐르는 눈물]의 도입부로 바뀐다). 가수마다 공연마다 청중마다 피아니스트마다 홀마다 해결책이 달라진다. 날마다 도전이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다면성이 [겨울 나그네]의 매력의 일부다. ---「 제13곡. 우편마차」중에서
[이정표]는 연가곡에서 처음으로 죽음과 명확한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관계를 기술하는 용어는 여전히 감질나게 모호하다. “나는 길을 가야 한다. /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길을.” 우리는 앞서 [보리수]에서 죽음의 속삭임을 들었다. [백발]에서는 노년으로 도피하는 환상이, [까마귀]에서는 송장까마귀의 그림자가 등장했다. 나그네는 이제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고, 그의 선택은 무덤이 여인숙으로 형상화되는 다음 곡 [여인숙]에 반영된다. 동시에 나그네는 우리 모두 어느 시점에 가서는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그것은 바로 ‘되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불가피함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겨울 여행은 프로이트가 말한 극단적인 두 충동인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를 연결하는 축이 된다. 포기를 배우는 것, 불가피한 것과의 화해를 배우는 것이다.
---「제20곡. 이정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