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산월기」 중에서
그러나 궁형은, 그 결과로 이렇게 되어버린 내 몸의 모습이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같은 불구라도 다리가 잘리거나 코가 잘린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이것만은, 신체가 이러한 상태라는 것은 어떠한 각도에서 보아도 완전한 악이다. 말을 둘러댈 여지가 없다. 마음의 상처뿐이라면 세월이 지나면서 치유되기도 할 터이나, 내 신체의 추악한 현실은 죽을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동기가 어쨌거나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결국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가 잘못되었나. 나의 어디가? 어디도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바른 일밖에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단지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잘못된 것이다.---「이릉」 중에서
처음에는 참으로 천하고 우습게만 비치던 호지의 풍속이, 이 땅의 실제 풍토와 기후 등을 배경으로 생각해보면 결코 천하지도 불합리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릉은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두꺼운 가죽의 호복(胡服)이 아니면 북방의 겨울을 견디기 어렵고, 육식이 아니면 호지의 추위를 견뎌낼 힘을 얻지 못했다. 고정된 가옥을 짓지 않는 것도 그들 생활 형태에서 비롯된 필연으로, 무조건 저급하다고 비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인의 풍습을 끝내 지키려고 한다면, 호지의 자연 속 생활은 하루도 지속할 수가 없다. ---「이릉」 중에서
이 사람과, 이 사람을 기다리는 시운 時運을 보고 울었던 때부터 자로는 결심했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 자신을 정신적으로 인도하고 지켜주는 보답으로, 공자의 세속적인 노고와 오욕을 일체 자신의 몸으로 받아낼 것을. 외람되지만 이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학문과 재능은 많은 후배들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무슨 일이 생길 때 가장 앞장서서 공자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칠 사람은 바로 자신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제자」 중에서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뭐란 말이야. 응? 정말로.”
(…)
이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모두 얼어버리겠지 등을 생각하며 수면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문득 그가 아까 한 말을 떠올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발견한 듯하여 깜짝 놀랐다.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도대체 뭐지?’라는 조의 말은, 하고 나는 그때 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단지 현재 그 한 개인의 경우에 관한 감개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숙하다고는 하지만, 겨우 중학교 3학년 말에 그런 의미까지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그를 과대평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출생에 둔감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매우 민감한 조 군이고, 또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의 일부도 그것에 원인을 돌리곤 하던 그를 잘 아는 나였으므로, 내가 그때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도 반드시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범 사냥」 중에서
“모두 알아요? 지진 때의 일을.”
그녀는 큰 소리를 지르며 어젯밤 들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머리는 흐트러지고 눈에는 핏줄이 섰으며, 게다가 이 추위에 잠옷 바람이었다. 통행인은 그 모습에 놀라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래서요, 놈들은 모두, 그것을 숨기고 있었어요. 정말로 놈들은.”
마침내 순사가 와서 그녀를 체포했다.
“어이, 조용히 하지 못해? 조용히.”
그녀는 순사에게 달려들더니 갑자기 슬픔에 복받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외쳤다.
“뭐야, 너도 같은 조선인이잖아, 너도 너도…….”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