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주위가 캄캄해진 다음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죽은 듯이 앉아 있는 그 주방 식탁에서, 사람이 내는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 p.56
바로 그 순간, 칼라일은 그렇게 현관 앞에 서서, 무언가가 그 막을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무언가는 에일린, 그러니까 이 순간 이전까지의 인생과 관련된 것이었다. 내가 에일린을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있기야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칼라일은 그 모든 것이 끝났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그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삶은 한때 조금 전 그가 웹스터 부부에게 얘기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몸부림쳐 왔지만, 그렇게 흘러가 버린 과거 역시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뒤에 남겨 놓은 그 모든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 p.163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런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것들이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서 프랜과 단 둘이 그런 내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식탁에 앉은 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집중했다. 내 소원은 오늘 저녁을 앞으로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음을 당시의 나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p.193
그렇게 우리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옮겨 다니는 동안 줄곧 그의 손가락이 내 손 위에 얹혀 있었다. 지금까지 내 평생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그가 손을 놓았다. “다 된 것 같군. 한번 보시오. 어때요?”
하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마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어때요?” 그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 있소?”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내 집 거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어딘가의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멋진 그림이군요.” 내가 중얼거렸다. --- p.221
하워드와 앤은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고, 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앤이 쉬지 않고 세 조각을 먹어치우자, 제과점 주인은 흐뭇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그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워드와 앤은 열심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둘 다 무척 피곤하고 심란한 상태였지만, 그 제과점 주인이 늘어놓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그가 외로움에 대해서, 그리고 중년의 나이에 느낀 의구심과 좌절감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식 없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의 인생은 끊임없이 오븐을 채웠다가, 또 비워내는 단조로운 작업으로 점철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파티 음식과 축하 케이크가 그 얼마던가. 그가 지금까지 소모한 설탕만 해도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결혼 기념 케이크는 지금까지 수백, 아니 수천 개에 달할 것이다. --- p.259
레이먼드 카버는 1981년에 출판된 단편집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그의 인생을 망쳐온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테스 갤러거와의 새로운 생활이 정상 궤도에 올라 있던 때인 만큼, 이전에 비하면 작품의 질과 작풍이 안정되었다. 작품 하나하나의 단어수도 그때까지의 작품에 비하면 훨씬 많아졌다. 등장인물에 대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에 따라 작품도 깊이와 설득력이 커지게 되었다. 야구에서 타자를 예로 들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배트를 휘두르는 경지에 이른 셈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덮고 있는 암흑과 구름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살짝 내비치는 광선과도 같은 구원,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방해하려는 어두운 구름, 그들의 숙명적인 대비를 묘사하는 방법이 실로 멋들어지다는 뜻이다. --- p.290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이다. 네 명쟀 남녀가 각자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 어떤 이는 험난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사랑이며, 어떤 이는 상식을 초월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증오로 변해 버린 사랑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진지하게 사랑과 구원을 원한다. 갈망하고 희구한다.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다 해도 그들은 어떻게든 출구를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 문이 사랑이라는 기호를 통하지 않고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도중에 깨어져 버린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진지함은 이 단편집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힘을 가지고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카버라는 인간의 내부에서 계속되어 온 냉소주의와 구원 사이의 갈등이 이 작품에서는 분명히 구원 쪽으로 기운다. 그것을 하나의 징후처럼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빛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 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