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건 TV 프로그램 제작차 취재를 하면서 임사체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과 가까워진 영향이 더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의 죽음과 젊은이의 죽음, 혹은 불의의 재난과 사고에 따른 죽음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젊을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당연해요. 나도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 두려웠으니까요. …(중략) … 내가 철학에 경도된 것도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두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고, 그저 그렇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보니 점차 관념의 세계로 빠져들었지요. --- p.11~13
비이성적이고 해괴한 것에 빠져들어야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계에 입성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 p.31
보르지긴 박사와 구도 교수의 연구 결과는 현행 뇌사판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심장이 정지한 후 점점 약해지던 뇌 활동이 겨우 몇 초 동안이지만 갑자기 활발해질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죠. 만약 임사체험을 하는 도중에 뇌사판정을 받는다면 생의 최종 단계가 강제로 중단될 우려가 있는 겁니다. 따라서 뇌사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판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p.37
뇌가 고도로 진화한 결과 인류는 풍부한 상상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거짓 기억을 만들어낼 위험성까지 짊어지고 말았다는 도네가와 박사의 설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분도 많을 듯해요. 인간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상당 부분이 자신의 실제 기억과 학습 기억, 문화와 문명이 심어준 착각이 혼재된 ‘거짓 기억’의 집합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요. --- p.39
위스콘신대학의 신경과학자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 교수가 주장하는 ‘의식의 통합정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네트워크를 가진 시스템이라면 어디에든 깃들 수 있다고 합니다. 생물뿐 아니라 로봇, 인터넷 같은 무생물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이론은 현재 검증이 진행되고 있는데, 만약 검증에 성공한다면 인간은 사망 후 뇌의 네트워크 속 연결망이 사라져 마음도 함께 사라진다고 볼 수 있어요.… (중략)… 임사체험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건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며 ‘초월적 존재’와 만나는 신비체험입니다. 방송 말미에서는 켄터키대학의 케빈 넬슨(Kevin Nelson) 교수가 진행한 연구를 단서로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인간은 왜 신비체험을 하는지와 같은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어요. 인간은 죽음의 순간 정서, 의욕, 기억에 관여하는 대뇌변연계의 작용에 따라 백주몽을 꾸는 것 같은 상태가 되면서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이때 신비체험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비체험은 뇌 속 기관 중 진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부분인 변연계와 관련 있다는 가설을 근거로 넬슨 교수는 신비체험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현상일 가능성을 언급했어요. 인간은 어쩌면 태곳적부터 죽는 찰나에 신비체험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 p.40
인간이란 막상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상황을 파악하거나 그에 대처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죽음을 걱정할 여유 같은 건 없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겁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 p.52
큰아버지는 여든 살이 됐을 때 “나는 내일 죽는다”라고 가족에게 말씀하시고는 정말로 다음 날 아침에 돌아가셨어요. 일어나실 때가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어서 깨우러 갔더니 자리에 누운 채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해요. 그전까지는 아무런 징조 없이 평소처럼 지냈지만, 아마도 본인에게는 죽음이 가까이 온 걸 짐작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겠지요. 나도 죽을 때가 가까워져 오는 걸 알게 되면 발버둥 치지 않고 조용히 가고 싶습니다. --- p.56
어린 시절 생각한 이상적인 죽음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은 책에 나온 코끼리의 죽음이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끼리는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밀림 속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코끼리들의 무덤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덤에 도착하면 산처럼 쌓여 있는 뼈와 상아 위에 저 홀로 고요히 몸을 누인다고. 나도 죽을 때는 코끼리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혼자서 고요히 죽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사회에서 이렇게 죽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백부처럼만이라도 죽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성싶다. --- p.67
이제 조만간 여러분은 현장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요, 맨 처음 기다리고 있는 시련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일 겁니다. 간호사의 일은 어떤 의미에서 집안일과 매우 닮아 있어서,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려고 들면 할 일이 끝없이 생겨나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할 수는 없고 말이에요.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이 환자도 돌봐야 할 것 같고 저 환자도 안 돌봐주면 안 될 것 같고. 그러면서 녹초가 되어 점점 지쳐가는 겁니다. --- p.87
환자 중에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확실히 알려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의사로서 환자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될지,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자신의 남은 수명을 사실대로 알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은지 환자에게 미리 물어봅니다. 하지만 환자가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괜찮으니 꼭 사실대로 말해주세요”라고 했다고 해서, 정말 사실 그대로 말해버리면 큰 충격을 받아 병세가 훨씬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일반적인 규칙을 단순 적용하는 게 아니라 환자가 하는 말의 뉘앙스를 잘 파악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 p.97
결국 의료라는 것은 마지막에는 환자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호할 때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환자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면, 그 환자가 사망했을 때 심리적 타격이 너무 큽니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조절해야만 하는 게 간호사라는 직업의 매우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p.99
여러분이 졸업하고 의료 현장에 나가면 환자의 사망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마음가짐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의 대비를 제대로 해두어야 나중에 힘들어하면서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나 봐’ 같은 회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봐야겠지요. --- p.100
“인간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음이란 오히려 인간 존재를 이 세계에 묶어두고 있는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라고 인터뷰 중에도 진지하게 답하기에, 내가 “그럼 당신은 죽는 게 두렵기는커녕 기대되겠군요.” 하고 말했지요. 그러자 박사는 환한 얼굴로 빙그레 웃더니 “네, 고대하고 있습니다(Yes, I’m expecting).” 하고 답하더군요. --- p.108
일본존엄사협회는 현재 존엄사를 희망하는 인구가 12만 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과거 의사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따라 진료를 했지만, 지금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만을 고집할 경우 앞서 든 예처럼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목숨만 부지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늘어날 뿐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여기서 이익이 남는 사람들,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을 지속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어떤 관점을 취할지 정해두는 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 p.120
임사체험이란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의식 회복 후 이야기하는 신비한 시각체험을 말합니다. 체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영혼이 몸을 벗어난 감각, 즉 체외이탈로 불리는 현상을 경험하고 삼도천 혹은 꽃밭 가운데를 걷습니다. 거기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만나 행복한 기분에 휩싸였다고 말합니다. 이런 임사체험은 동서고금, 나이, 인종을 불문하고 많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 p.126쪽
흥미로운 점은 죽음의 순간에 쥐의 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대량 분비되는 현상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인간도 임사체험 중에 행복감에 휩싸인다는 보고가 다수 있어서 보르지긴 박사의 연구 결과는 임사체험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을 지지해 줄 유력한 실증연구가 될 거 같습니다. …(중략)… 넬슨 교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기초로 뇌 깊숙한 곳에 있는 대뇌변연계가 죽음 직전 인간이 백주몽을 꾸는 듯한 신비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추적한 과학자예요. 변연계란 파충류에도 있는 진화 초기부터 생겨난 기관인데, 수면을 조절하거나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아직 그 신경전달물질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세로토닌이 아닐까 합니다. --- p.142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설계한다면 의식을 부여하는 게 기술적으론 가능하겠지요. 가장 큰 문제는 의식에 ‘주체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미래 사회가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거예요. 기계에 주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기계는 사용자인 인간의 도구 내지는 노예일 뿐입니다. 도구로 있는 한 기계가 아무리 높은 차원의 의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인간의 시대가 지속될 테니까요.
다만, 기계가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주체성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걸 허용한다면(로봇 3원칙 등은 무시),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 p.158
앞으로도 과학은 늘 해석의 여지를 남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이 해석의 여지 없이 ‘임사체험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연구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르는’ 영역은 새롭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 ‘모름’은 내가 죽음에 관한 철학을 공부하며 고민하던 젊은 시절의 그것과 사실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67
이 책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 조력 자살, 고령자·말기 환자 간호 문제 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제를 언급하며 존엄 있는 삶, 존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대답하기를 채근한다.
답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지금의 답도 세월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죽음은 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내느라 저 멀리 밀쳐놓은 문제였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가까이 가져와 보기를 권한다. 어떻게 죽을지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지를 생각한다는 뜻이므로.
---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