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청춘들은, 지금까지의 청춘들이 누려왔던 권리를 포기해야만 한다. 사회가 어떠하든 사랑이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순수한 욕망덩어리를 마음껏 분출시킬 수 있는 자유는 더 이상 없다. 우리가 옳다고 여겨왔던 ‘모순투성이의 사회’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차피 안 된다’는 두려움을 젊은이들에게 안겼고, 이는 주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연애와 섹스마저 다분히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수행하는 끔찍함으로 이어졌다. 가끔,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사랑만큼은 감성적일 수 있는 ‘젊은이로’ 다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책임은 ‘연애조차’ 포기한 이들이 아니라, 한때나마 욕망에 충실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있다.”
오찬호 (사회학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연애를 하고 있는 20대 남성은 정규직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2014년 내각부 규제개혁회의장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자리에 있던 관료와 대기업 간부들이 술렁였다.
이른바 격차사회. 특히 결혼에 있어서, 연봉이 낮은 비정규직 남성일수록 결혼율이 낮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연애 상대의 유무까지 고용 형태와 연봉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주오대학 문학부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세대, 특히 남성은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여 장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면 결혼뿐 아니라 연애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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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형태의 차이도 연애에 영향을 미쳤다.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중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정규직이 약 34퍼센트였으나, 비정규직은 약 16퍼센트로 그 절반에 못 미쳤다. 30대는 차이의 폭이 덜했지만 그럼에도 정규직이 약 21퍼센트, 비정규직이 약 14퍼센트로 비정규직으로서 연애를 하는 남성이 20대보다 적었다.
어째서 연애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야마다 교수는 ‘젊은이들은 이성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원하지만, 비정규직 남성은 정규직 남성에 비해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적다. 조건뿐 아니라 기회 면에서도 정규직과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 p.24
요즘 여성들에게 스토커 이상으로 가까이에 있는 위험이 데이트 폭력이다. 내각부의 정의에 따라 가정 폭력이 배우자로부터의 정신적·신체적 폭력을 가리킨다면, 데이트 폭력은 연인에게 당하는 폭력이다.
앞서 2005년 내각부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약 23퍼센트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도쿄 도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피해 경험자가 43퍼센트로 드러났다. 후자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전화, 문자를 일일이 체크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속박도 데이트 폭력에 넣었기 때문이다.
--- p.56-57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한데,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사원이라 휴가를 낼 수 없고 돈이 없다고 말하는 젊은이가 늘어난 것이 그들의 책임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리스크 회피 문제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국가나 사회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자기책임이다’라는 말이 들려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토커나 데이트 폭력, 리벤지포르노라는 보도가 줄을 잇는 세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버블 세대가 누렸던 ‘느긋하고 즐거운 연애’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 p.63
와코대학 고사카 교수는 ‘가상 환경에 익숙해진 20대에게 현실 속 연애는 정신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앞서 말했듯이 가상 연애가 벽을 보고 대화하는 거라면 실제 연애는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스포츠와 같다. 따라서 서로 에너지를 원활하게 주고받아야 순조로워지지만, 더러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남녀 중 한쪽이 내성적이어서 가상세계에만 몰두하는 경우, 주고받는 에너지의 총량이 적을 뿐 아니라 한쪽만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에너지 부족으로 피폐해진 쪽이 ‘왜 늘 나만 잘해주고 나만 돈을 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어 결국 연애는 부담스럽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 p.83
현재 초식남인 30대 남성들을 취재하다 보면 ‘극장에서는 왜 여성 관객만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남성 관객은 신경도 쓰지 않느냐?’, ‘역차별 아니냐?’는 의견이 많을 정도다. 역으로 ‘남자의 체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모르겠다’고 답했다.
남녀는 평등하다고 배우며 자란 세대가 유독 연애에서는 ‘돈은 남자가 내야 한다’, ‘고백은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는 등 남성다움을 요구한다. 남성 입장에서는 남녀불평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의 연애를 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 p.113
지금의 20대들에게는 여성 7명 중 1명꼴로 연애 감정 없이 만나는 섹스친구가 있다. 또 남녀 모두 40퍼센트가 ‘연애 감정이 없는 이성’과 섹스를 경험했다.
이들은 섹스친구와는 배란일 전후에는 섹스를 피하거나 매번 콘돔을 사용해서 절대 임신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그러나 진심으로 만나는 남성과는 더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라며 결혼을 노리는 일도 없지 않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들이 프러포즈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섹스를 하기 전에 ‘임신하면 책임질게’라는 의미로 제대로 고백을 받고 싶은 것이다. 섹스에 대해서는 서구화되었어도 연애 방식은 일본식이다.
--- p.176-177
다른 민간 조사에서도 20~30대 미혼 여성이 결혼하고 싶은 이유 1위는 ‘아이가 갖고 싶어서’가 차지했으며, 이는 ‘한 명의 파트너와 계속 함께하고 싶어서’보다 높았다. 또 결혼 생활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로 ‘힘들 때 서로 도울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다른 가족들과 교류할 수 있다’를 들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결혼에 바라는 것은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편안한, 친구 같은 파트너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 부모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앞서 데이비드 노터 교수가 메이지, 다이쇼 시대 일본의 결혼상으로 말한 ‘우애결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p.195-196
이 장의 서두에서 나는 ‘지금 20대 남녀의 대부분이 바라는 것은 연애결혼이 아니라 연대결혼’이라고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온 만큼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른들보다 몇 배나 크다.
나는 취재와 조사를 통해, 일본에서도 스웨덴이나 프랑스처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사실혼)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리고 젊은이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도록 지원한다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별거나 시골에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성공 사례를 제시하고 그에 따르는 제도(집세 보조 등)를 정비하면 결혼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 p.237-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