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평생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자식의 병이 땅속 깊이 뿌리 박혀 있던 바위 같은 어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느니, 내키지는 않지만 하나님이라는 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성경책과 찬송가를 사서 집 앞 새벽기도에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새벽 5시가 되기 이십여 분 전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섰다. 막상 밖으로 나왔는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교회를 혼자 스스로 가려니 자꾸만 망설여지고 막막했다. 그런데 그때 한 여자 분이 작은 손가방을 들고 바삐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저 사람을 따라가면 교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그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저분이 새벽기도에 가는 분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나를 사랑하셨다. 그분이 교회로 들어서자 나도 망설임 없이 교회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졌다. 그날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 알게 된 찬송이 있는데,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였다.
그날 이 찬송이 왜 그렇게 내 마음속에 와 닿았는지······. 그때 이 찬송가를 부르며 뜨겁게 눈물을 흘린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에 나갔다. 그 사이 큰 딸은 암세포들과 싸우며 힘든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고 지금은 회복 중에 있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 딸을 완전히 치유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 때문에 이젠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졌다.
오늘도 새벽마다 나를 깨우시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나를 새롭게 하신 찬송가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푹 잠긴다. --- p.17 [육십 평생 처음 찾아간 교회] 중에서
누군가에게 마구 털어놓고 싶었지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마음을 터놓을 친구 한 명 없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시원하게 내 마음을 토로하고 죽고 싶건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교회 셔틀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가끔 교회를 나가곤 했었는데, 시집 온 뒤로 발길을 뚝 끊게 되었다.
‘그래, 죽기 전에 실컷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회개하자. 그러면 천국에는 갈 수 있겠지······.’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참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처음 들어 보는 찬양이었지만, 그 노랫말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조금 전까지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이젠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찬양이 나를 잡아끌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찬양이 끝나고 내 마음속에는 살 소망으로 활활 타올랐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올라탄 버스] 중에서 --- p.27
하루는 지방에 일이 있어 다녀오던 길에 휴게소 화장실에서 이런 광고를 보았다.
‘신장 파실 분, 사실 분 구함.’
광고 문구 아래 적힌 전화번호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수첩에 그 번호를 적고 있었다. 두 개의 신장 중에 하나 정도 떼어서 팔면 뭐 어떠냐 싶었다. 당장에 살 길이 막막하니 그렇게라도 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광고를 낸 담당자가 정해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오라고 했다. 검사비는 칠십만 원, 검사 후 합당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천칠백만 원에서 이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검사비용으로 칠십만 원이 든다는 말에 바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불행 중 다행인지, 나는 신장 매매를 할 수 없었다. 삶을 살아갈 의욕이 점점 사라져 갈 때 나는 무엇이든 붙들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교회를 찾아갔다. 바쁘게 사는 동안에 등한시했던 교회를 찾은 그날 나는 우연히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양을 듣게 되었다.
감사의 찬양을 부르며 나는 가슴 한 편이 따뜻해지면서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찬양 가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래, 지금은 장미의 가시에 찔린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하자 생각했다.
때론 사업 부도를 낸 남편이 죽도록 미워서, 밥 먹고 있는 남편의 숟가락을 뺏고도 싶었고, 자고 있는 남편의 베개를 차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이젠 남편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건강하게 살아서 다시금 재기하려고 애쓰는 남편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디 있겠는가.
오늘도 “날 구원하신 주 감사”를 흥얼거려 본다. 모든 걸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아니, 모든 걸 도로 가져가신다 해도 감사드릴 것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리라 믿기 때문에.--- p.137 [장미 가시에 찔려도 감사 중에서]
“정은아, 아까 선생님이 피아노 치면서 부른 노래 기억나니? 선생님이 노래 불러 줄게. 잘 들어보렴.”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형제(자매)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른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은아, 친구들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 거야. 그런데 우리 정은이는 평소에 친구들한테 어떻게 했지? 소꿉장난 할 때 친구들 안 끼워 주고 장난감도 안 나눠 주고 해서 친구들이 욕심쟁이라고 놀리던데······. 이제부터 욕심 안 부리고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하기로 약속하자, 응?”
나는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선생님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때 그 선생님의 고운 목소리와 내 눈물을 닦아 주시던 그 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나 역시 유치원 선생님이 되게끔 이끌었다. 어찌 보면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는 찬양이 내게 비전을 심어 준 찬양이 되는 셈이다.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 들려주셨던 찬양. 어린아이가 그 뜻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 선생님은 나에게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르쳐주고 싶으셨을 거다. 선생님 불러주신 그 찬양 덕분에 나는 우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게 됐고, 선물을 받지 못한 말썽꾸러기 친구에게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됐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준 노래, 아직도 내 마음속에 일곱 살의 찬양으로 남아 있는 그 노래가 내 귓가에서 맴돈다.--- p.171 [일곱 살의 찬양, 일곱 살의 꿈] 중에서
그의 일방적인 통보로 우리는 헤어졌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그가 취직을 했다는 것과 꽤 잘나가는 회계사가 됐다는 소식만 간간이 전해 들었을 뿐, 우린 우연이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도 매서웠던 그해 겨울, 집으로 한 청첩장이 날아왔다.
그에게 청첩장을 받은 날, 나는 한숨도 못 자고 눈물만 흘렸다. 결국 두 눈이 퉁퉁 부어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를 마음속에서 지운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를 축복해 주며 떠나보내고 싶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인정하고 그의 앞길을 마음껏 축복해 주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축복하며 그를 완전히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얼마 전 친한 선배의 결혼식에서 들은 ‘축복의 사람’이라는 축가를 그에게 보낸다. 그도 나도 행복하길 바라며······.
--- p. 180 [눈물로 보내는 축복의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