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 그러니까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책무에는 ‘등신’과 같은-그러면서, 곧 다음 절에서 논하게 되는 바와 같이, 개인을 통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데에는 ‘귀신’ 같은-국가와 정부는 개인과 인간 그리고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가 아니고 정부가 아니다. 그건 아무런 실체도 없이 그저 서류상에나 존재하는 국가와 정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페이퍼 스테이트’(paper state)요 ‘페이퍼 거번먼트’(paper government), 즉 종이 국가요 종이 정부일 뿐이다.--- p.28
내가 보기에 세월호 참사와 광주 민주화 항쟁의 폭압적인 진압은 키클롭스 국가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키클롭스 국가의 부작위적 폭력성과 파괴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면,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는 키클롭스 국가의 작위적 폭력성과 파괴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2015년 언젠가 진도 팽목항에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린 적이 있다고 한다. --- p.46
만약 신자유주의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면, 그리고 방금 인용한 구절에서처럼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세월호는 계속된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보다 신자유주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는 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보다 신자유주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는 왜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신자유주의 한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대형 사고보다 더 많은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 p.49
이 “정복하기 위해 해방하는 자” 미군정이 3년이라는 한시적인 통치 기간 동안 궁극적으로 추구한 바는 남한에 일본을 청산하고 미국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심어라”-이것이 미군정에게 주어진 정언명령이었다! 한국인이 열망한 독립국가 수립은 그들에게 미국적 민주주의와 사고방식 및 생활양식을 주입한 이후의 사안으로 보았다. 요컨대 한국을 미국에 예속된 독립국가로 만들려는 것이 미군정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 p.82~83
한국 사회의 모순은 일차적으로 학벌에 의해 야기된다. 학벌은 사회 전체를 뒤틀고 비틀기 때문에 그 폐해를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 가장 심각한 폐해는 청소년들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자살로 내모는 공부와 성적 스트레스일 것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 봐도 학벌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반드시 타파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로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벌 타파의 가장 큰 책임과 능력이 있는 국가가 학벌 공고화를 부추기며 거들고 있다. --- p.9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 그것도 가급적이면 급속한 경제발전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했
으며, 재벌을 그 ‘파트너’로 삼았다. 그리하여 국가와 재벌이 동맹을 체결하여 국가경제를 이끄는 주체가 되었다.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성장-바로 이것이 박정희 정권이 이해한 근대화이다. 본격적인 근대화가 박정희 정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근대화는 환원근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근대화는 그 영역에서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그 주체에서 국가와 재벌로 환원된 근대화, 즉 이중적 환원근대이다. 국가는 재벌에게 온갖 경제적 혜택과 특혜를 베풀었으며, 재벌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에 정치적 정당성을 선사했다. 이처럼 국가와 재벌이 주연이 된 근대화 과정에서 다른 사회집단과 개인은 조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 p.109
그렇다면 어떻게 선진국= (1인당 국민 소득) X만 달러라는 경제주의적·유물주의적 주술로부터 해방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방금 앞에서 던진 테제, 즉 경제와 더불어 다른 삶의 영역이 골고루 발전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라는 테제에 있다. 선진국에 대한 표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으로 가는 여정인 근대화에 대한 표상을 바꿔야 한다. --- p.195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이 모든 엄연한 근대적 사실과 ‘진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개인과 개인주의의 시대인 근대에 지속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전근대적 원리인 집단과 집단주의를 고수해오고 있다. 그 정점에 국가와 국가주의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개인들의 사회가 아니라 사회의 개인들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비근대적인, 아니 너무나 반근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수많은 갈등과 비극은 개인주의 시대에 집단주의 윤리가 지배하는 이 역사적·사회적 부정합성에서 비롯한다. --- p.208
개인은 사회나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사고하며 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인류와의 관계 속에서도 존재하고 사고하며 행위를 한다. 그리고 개인?인류의 관계는 글로벌화로 국민국가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점점 더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화의 기제로는 유엔 등의 국제정치, 세계경제, 국경 없는 과학,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행사, 전 세계적으로 실행되는 보건 프로그램, 세계뉴스, 전 세계를 포괄하는 교통 및 통신 체계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국가, 즉 국민국가사회와 세계사회가 병존한다.
--- p.213~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