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판 레인은 숙성(熟成) 효과를 거두려 애쓰다가 부패(腐敗) 효과만 얻고 말았다. 하나의 소재에서 그가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되고 무미건조한 측면들뿐이었으며, 그의 장기인 적황(赤黃) 색조를 동원하여, 너무 강렬해서 실제로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음영의, 그리고 캔버스에 유동적인 진흙처럼 놓여 있는 색깔들의 치명적인 본보기를 제시했다.’
이 시적인 비평을 쓴 사람은 헤이라르트 더 라이레서 Gerard de Lairesse(1641~1711). 우의적이고 종교적인 소재들을 주로 다룬 플랑드르 화가. 거의 평생을 홀란트에서 살면서 우의적 소재들로 여러 궁택을 장식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시력을 잃은 뒤 구술(口述)을 통해 저술한 드로잉과 유화 관련 서적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라는 화가였다. 그는 1641년에 벨기에의 뢰이크 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화업의 기초를 익힌 후, ‘돈이 어디 있는지’(아아, 피라미드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말이 아닌가!) 알고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곳에서 후원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우의적인 소재들로 참을성 있는 캔버스들을 끝도 없이 뒤덮었다.
그의 저서 ?유화의 역사?에서 완곡하게나마 고백한 바로는, 그 자신도 잠시 렘브란트의 화풍을 시도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명예 실추의 위험에 직면했었으나,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이들 과오들을 버리고 전적으로 어떤 환상에 기초한 수법을 폐기했다.’ __본문 중에서
그러나 렘브란트는 사후 100년이 채 안 되어 비로소 대화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유화,소묘,에칭 등 다양한 분야에 통달한 17세기의 화가이며 미술사에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렘브란트(1606~69). 그의 그림은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능숙한 명암배분이 특징이다. 그의 수많은 초상화와 자화상은 인간의 성격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며, 그의 소묘는 당시 암스테르담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인 호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 그 당시 그의 동시대인들은 풍경화나 정물화, 또는 일상생활을 묘사한 풍속화를 더 많이 그렸다. 렘브란트도 인기있는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자기 제자를 비롯한 젊은 경쟁자들에게 밀려나 빛을 잃었다. 그가 통달한 또 하나의 주요분야는 식각판화였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의 판화들은 비싼 값에 팔렸고, 그의 뛰어난 판화 기법은 몇 세기 동안 판화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특히 젊은시절의 작품을 대표하는 전형적 특징은 유럽의 중요한 화가들(특히 안트베르펜 출신의 P.P. 루벤스)과 경쟁하려는 개인적 야망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유행과 렘브란트 자신의 기질은 그의 야망을 좌절시켰고,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고독하고 괴팍해져 외톨이가 되었으며 그 결과 자기 나름의 독자성을 얻게 되었다.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 상태에 빠진 영원한 인간세계를 독특하고 생생하게 재현한 것은 그의 이 독자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용한 인간의 모습은 렘브란트 예술의 중심 주제이며 보는 사람과 그림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한 렘브란트의 인기와 위대함은 바로 그 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L.A. Silver 글 | 김석희 옮김
현존하는 렘브란트의 작품은 유화?에칭?소묘로, 종교화?신화화?초상화?풍경화?풍속화?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있으며, 그의 중년 이후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졌으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하였다. 색이나 모양이 모두 빛 그 자체이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의 흐름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인간애 정신이 넘치고 있어, 그가 그리는 작품은 한없는 따뜻한 애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렘브란트는 약 100점의 자화상과 수많은 회화와 드로잉 외에도 약 290점의 판화를 제작했다. 특히 판화에서만큼은 그가 거장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렘브란트는 화가로서 활동한 내내 에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는데, 젊은 작가로 활동했던 초기 시절부터 나중에 암스테르담에서 성공한 거장으로서 절정기를 누리고 있을 때는 물론이며, 결국 생애를 마칠 무렵에 이르러서야 에칭을 그만두었다.
이 책 두 권에 걸쳐 본문 중에 언급되는 렘브란트의 작품100여 점을 수록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세 개의 십자가>와 <백 훌던짜리 판화> 에칭을 비롯, 유화와 드로잉을 글과 함께 감상하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리라 생각된다. 끝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화자인 ‘나’의 세 명의 친구들이 겪는 무용담 역시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며,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