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내게 학교입니다. 잡초라 불리는 풀 한 포기부터 작은 벌레 한 마리까지, 숲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친구처럼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스승처럼 삶의 지혜를 들려줍니다. 덕분에 숲길을 걷는 그 자체가 흥겨움이자 진지한 수업 시간입니다.
요즘은 숲길을 걷는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쓰레기 시멘트’라는 거대 악과 전쟁 중입니다. 지난 3년여의 고생 끝에 꼭꼭 감춰졌던 산업 폐기물 시멘트의 해악을 널리 알렸고, 많은 언론과 국회와 감사원까지 움직이는 성과를 이뤘으니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홀로 거기에 맞서 3년 넘게 달려올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숲의 친구들이 들려준 ‘생명’이란 깨달음 때문입니다. 숲은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에 힘과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에 눈을 뜨고 나니 누가 더 예쁘고 화려한지, 누가 천연기념물이고 더 희귀한지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숲 친구들은 무엇보다 살아 있음, 생명 그 자체가 가장 멋진 아름다움이라 말합니다.
행복한 만남이 기다리는 숲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연약한 몸으로 딱딱한 땅을 헤집고 나오는 새싹들을 보면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새싹들을 제대로 보려면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허리를 숙이고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예 납작 엎드려 한쪽 뺨을 땅에 대고 새싹과 인사를 나눕니다.
흙냄새가 물씬 날 정도로 몸을 낮춰 보세요. 새싹 키만큼 눈높이가 낮아지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눈높이에 따라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경험할 겁니다.
한 알의 씨앗에는 나무 한 그루가 온전히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비록 연약한 한 포기 풀이지만 언젠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새싹들은 오늘도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신록이 춤추는 봄 숲에 들어설 때면 그 희망의 노래가, 생명의 힘이 내 마음까지 밀려들어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 「생명이 기지개를 켜다」 중에서
올봄에는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심어 보세요. 씨앗 봉투에 그려진 꽃 모양을 보고 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꽃씨를 직접 고르게 해보세요.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심고 관찰하는 것보다 아이의 심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습니다. (중략)
꽃씨를 선택하듯 내 안에 피울 꽃 또한 선택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내가 ‘보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에 뿌리는 씨앗입니다. 오늘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의 씨앗들을 뿌렸습니까?
식물의 씨앗은 뿌리는 시기가 따로 있지만, 생각의 씨앗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너무 빠른 때도 없고, 이미 늦은 법도 없습니다. 씨앗을 심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꽃씨를 심는 즐거움」 중에서
청설모는 잎사귀를 꼭 동그랗게 말아서 바나나 먹듯이 먹습니다. 특이하게도 한 가지에서만 따먹지 않고, 이 가지에서 한 잎, 저 가지에서 한 잎, 사방을 오르내리며 따먹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한 가지에 달린 잎을 모두 먹으면 그 가지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나무에게 잎사귀를 얻어먹되 나무의 형편을 헤아리는 듯한 청설모가 참 기특합니다.
자연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서로를 이용하지만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더함도 모자람도 없이 모든 생명이 어울리는 한 마당인 셈이지요. --- 「청설모의 지혜」 중에서
밤나무를 심은 주인공을 알고부터는 밤을 독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잘 익은 밤이 날카로운 가시 입을 쩌억 벌릴 때쯤 한두 번 주워 오는 것으로 가을의 수확을 마칩니다. 아직 나뭇가지에 먹음직스런 밤톨들이 많이 달렸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래전 밤나무를 이곳에 심은 다람쥐의 아들딸의 아들딸들의 몫이지요. 심지도 가꾸지도 않고 몇 해째 얻어먹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자연에 들어와 살면서 비로소 더불어 사는 게 무엇인지 하나씩 배웁니다. 내가 밤톨을 싹쓸이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저 귀여운 다람쥐들이 또 다른 곳에 밤톨을 옮겨 심을 것이고, 그 밤톨이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또 다른 이들에게 단밤을 제공할 겁니다. --- 「숲의 일등공신 다람쥐」 중에서
은행, 밤, 모과, 감, 포도, 도토리……. 열매들은 저마다 모양뿐 아니라 맛과 향이 다릅니다. 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비를 맞고 똑같이 햇볕을 쬐었는데 신기한 일이지요. 한두 종류는 맛이 비슷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들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로 당당히 살아가는 나무들. 남과 비교하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중략)
나는 어떤 맛을 지닌 존재인가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종종 더 그럴듯한 누군가를 흉내 내려 애썼습니다. 나의 나 됨을 잃어버리면 허상으로 전락한다는 걸 깜박 잊곤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누군가를 닮으려다 제 것이 아닌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나다운 내 길을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인생입니다. --- 「모든 열매는 한 세계의 주인」 중에서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숲으로 달려갔습니다. 솔직히 지난밤 강추위에 민들레들이 어떻게 될까 싶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시 찾아간 겨울 숲은 밤새 내린 서리로 하얀 이불을 덮은 듯했습니다. 어제의 민들레는 면사포를 쓴 고운 신부 같네요. 하얀 서리가 보석처럼 눈부시게 꽃잎을 치장하여 말 그대로 ‘눈꽃’이 되었습니다.
서리를 뒤집어 쓴 꽃잎 위로 작은 내가 보였습니다. 그저 좋은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던 나의 못남…….
따뜻한 봄에는 누구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는 봄이란 기다림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된 희망이란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오늘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이겨 내며 만드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 「민들레의 위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