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슨은 산상수훈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가에 대한 가장 완전한 그림을 제공한다고 논증한다. 하지만 스테슨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 있어서 산상수훈이란 자신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였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산상수훈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특정한 종류의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일들을 행하시며,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인해 우리의 신뢰와 충성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이 때문에 산상수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우리가 그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가다.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스테슨은 산상수훈이 단순히 높은 이상이라고 논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상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가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실을 올바로 보고 그에 따라 삶을 조정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 보상은 가히 영광스럽다. 우리의 변덕에 굴복하지 않는 하나님의 현실구조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원래 의도되었던 해방의 삶을 누리게 된다. 이 때문에 평화, 용서, 경제적 간소함으로의 예수님의 부르심은 짐스러운 이상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의 온전함과 치유를 위한 비결이다.
-편집장(데이비드 거쉬) 서문 중에서
산상수훈으로 이끄는 서론 부분에 대한 연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높은 이상을 따르기 위한 고된 인간적 노력이 아니며 또한 과중한 의무사항도 아니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된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는 삶과 관련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항상 행하고 계신 새로운 일 가운데 참여하라는 예수님의 초대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고 계신 일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예수님이 보여 주실 때, 우리 모든 사람은 그분을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허락되고, 특권을 얻고, 초대되었다. 나는 독자들이 산상수훈에 나타난 가르침의 기적들을 향해 나아갈 때 바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당신이 “지금 여기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한 부분을 담당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서문 중에서
마태복음 11:28-3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요점은 그분의 길이 어렵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분의 길은 확실하다는 의미에서 좁다. 특히 이러한 말씀들을 따라 산다면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 괴로움, 분노의 삶, 남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삶, 위신이나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항상 염려하는 삶, 나 자신을 위해 항상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삶, 남을 정죄하며 권력자들을 만족시키려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당신은 아마도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바르게 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에 또 다른 가르침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릇된 일을 행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그릇된 일을 행하는 것은 삶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 ‘우리들 각자의 길은 깔때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라는 그럴 듯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넓은 가장자리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삶은 점점 더 닫혀 간다. 그것은 멸망으로 끝난다. 혹은 이와 반대로 좁은 가장자리로 들어간다면,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끝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기쁨으로 활짝 열린다. 그 길은 생명으로 끝난다.
-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