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역사를 호흡하는 공부
지식을 공유하려면 공부하는 마음 속에 역사의식이 녹아나야 한다. 거창한 역사가 아니라 내가 왜 이 지식을 섭취해야 하는가하는 자기 물음이 바로 역사의식이다. 인문학자나 사회학자는 물론이거니와 과학기술자나 직장의 중견인이든지, 내가 속한 사회의 아픔을 실천으로 풀고자 하는 모든 이가 바로 공부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지식인이다.
제2장 삶과 세계를 연결하는 인문학적 통찰
동양에는 학문방법론이 없었다는 어디선가 잘못 유포된 소문에 속거나 혹은 스스로 속기를 자청해서 학문의 제국주의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서구의 학문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들의 학문은 자신의 사상사적 맥락 속에서 동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양의 문을 두들길 뿐이다.
제3장 학문의 현실인가, 현실의 학문인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사이의 학문적 대화는 끊어졌고,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개념의 세계에서 언어의 맴돌이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학문행위는 언어의 유희가 되고, 학문의 권위가 등장되며 자기만의 소유물로 가두어진 지식의 경쟁이 나오게 되었다. 지식을 암호화시키거나 폐쇄된 자기만의 고유논리로서 상대의 지식을 폄하하고 남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수입지식을 갖고 학문의 권위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학문의 보편주의를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제4장 지식과 삶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정보는 많이 모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정보를 나의 정보로 만들기 위하여 주어진 정보를 버리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보를 꿰어 내는 작업의 시작이다. 꿰어 내기 위하여 큰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하고 모으기만 한다면 창의성의 세계는 사라지고 권력의 세계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버리고 비워두는 삶의 행위가 바로 우리의 공부이다.
제5장 이성과 신비의 두 날개
정보화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최첨단의 합리성의 패턴을 지니는 과학 환경과 최고의 비합리성인 신비주의 환경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비주의 자체가 나쁜 것이기보다는 결국 상업주의의 하수인으로 전락되어 가는 신비주의 산업이 문제인 것이다. 신비주의 산업 일반은 겉으로 대개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지만 결국 사회마취제적 기능에 봉사하고 만다. 신비주의 산업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삶의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 이익집단의 목적달성을 위한 구호일 뿐이다.
제6장 연속성의 사유와 진화 인문학
진화인문학은 첫째, 인문학의 결과적인 완성형을 추구하기보다는 진행형인 과정을 중시한다. 그래서 그 공부의 과정은 구체적이고 실천의 연계성이 있어야만 한다. 둘째, 세계와 삶을 분리하지 않으며 삶을 말하여도 세계를 보는 눈을 잃지 않으며, 세계를 말하여도 삶과 유리된 추상적인 하늘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셋째 가치중립성이라는 자연과학의 탐구와 같이 개체보존적 공부에만 그치지 않으며, 역사를 접점으로 갖는 계통보존적 공부의 길을 찾는다는 점이다. 개체보존형의 공부는 자기보존을 그 목적으로 두지만, 계통보존형의 공부는 재생산성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제7장 타자와의 만남에서 재구성되는 동아시아 정체성
서구 기계론이나 결정론의 부정적 측면을 중화시키기 위하여 생기론이나 동양의 기철학에 대책 없이 심취하는 일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나 뉴턴의 기계론이 오늘의 문명위기를 자초한 정신적 뿌리가 되는 것이라는 표피적인 단서를 잡고, 그 반작용으로 주역을 미화하고 노?장자를 정신적 영웅으로 되살리는 일은 결국 현실 도피적 학문이 될 뿐이다. 서구의 분석주의나 실증주의가 갖고 있는 해부학적 태도가 못마땅하다하여 정령론에 가까운 개체 생명주의에 빠지는 일은 더더욱 판단 문맹을 부채질 할 뿐이다.
제8장 동서양 사유의 종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구사상에서 보는 자연은 과학적 자연이거나 아니면 생태주의적인 자연이거나 관계없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시각에서 보는, 그리고 인간의 우주적 복지를 위한 자연 개념에 귀속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이거나 아니면 이원적이거나 관계없이 자연은 대상화된 개념으로 남는다. 반면에 불가에서 보는 자연은 누구를 위한 자연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그냥 움직이며 비어있으면서도 꽉 차있는 그런 자연이다.
제9장 서구의 과학과 동양의 자연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마음의 스펙트럼은 분화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과 와류 속에서 동양의 마음은 자칫 미로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동양의 마음과 서양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보면 철학의 마음은 그만 이야기하고 사회의 마음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을 개인화하는 작업의 정점이 서구의 프로이트를 낳았다고 보면, 동양의 마음은 항상 사회적 마음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제10장 경계 없는 사유가 요청된다
요즘 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나가는 소나 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분하고, 친구와 처자식, 그리고 임금에 대한 사랑을 따로 구분하는 분별적인 사랑인가 아니면 무차별의 사랑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 그 개인에게만 부과될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심과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 풀이를 찾기보다는 학자군의 만남, 학문간의 협동이 절실하다. 그래서 동서양의 경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 전통과 근대의 경계에 묶이지 않으며, 삶과 역사를 호흡하는 그런 공부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