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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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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3쪽 | 456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3378
ISBN10 8984313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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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박노자, 드디어 그의 총론을 드러내다!
--- 김성광 (comma99@yes24.com)
2009-09-16
박노자를 처음 접했던 2002년. 그는 새로웠다. 한국사회의 패거리 문화가 지닌 배타성, 위로부터 강요된 민족주의, 이른바 '진보'사이에서도 만연한 권위주의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장착된 전근대성을 드러내며 우리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느끼게 했다. 때마침 유행하던 '우리 안의 파시즘' 담론과 맞물려, 2000년대 초반 우리 스스로를 본격적으로 진단하는 시각이 자리잡는데 나름의 기여를 했었다.

내부자이면서 외부자. 러시아 출신이면서 우리 말을 겁나게 잘했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을 잘 안다다던 그의 견해는 신선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 우리가 그렇게 좇던 '선진국' 유럽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낯설고 비합리적인 것인지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는 홍세화가 수행했던 작업과 유사한 것이었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새내기가 들어왔을 때 건네는 책선물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교체되기도 하였다.

이후 박노자는 자신의 전공인 한국사 -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식민지 시기 '사회진화론'에 대한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우승과 열패의 역사』가 있다. - 에 매진하면서도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구상하고 있는 '전체적인 그림'을 알기는 힘들었다. 내가 게을러서 그의 글들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그의 단행본들 중에서는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자신의 '총론'을 드러낸다.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나는 그의 총론을 나름 요약해본다.

그는 자신의 총론을 위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단어와 '복지국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조금은 어색한 이 조합을 활용해 문장을 구성해보자면, '사회주의와 혁명을 긍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지국가'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책에서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꾼다"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국가 주도적 발전을 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신자유주의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좌절이 사회적 불만으로 조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의 철권통치가 강화되든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된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게 되든지 어느 쪽이든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 두가지 방향 중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는 국가운영의 주체에 달린 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중(多衆)을 중시하는 자율주의적 분위기의 '신흥 좌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구식 좌파'로 남아 있다." 그렇다. 그는 국가를 '탈환'하고, 사회안전망이 강화된 '복지국가'를 향해 (왼쪽으로!) 핸들을 꺾고자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가를 탈환하여,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국가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박노자는 '자유주의 세력'은 그런 막중한 임무를 책임질 수 없음을 명백히 한다. 여기서 자유주의 세력이란 '민주당'과 다수의 시민단체를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구도가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의 구도인 것처럼 곧잘 여겨지지만, 박노자는 이 구도를 흔든다. 민주당의 강령을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좌파는 커녕 다소 우익적인 자유주의로 분류하기 알맞고, 그만큼 한국의 정치지형은 우편향 되어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실제로 박노자는 민주당과 지난 정권을 '보수'로 규정한다. 그러니 그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를 선택한 것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균형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복지국가 프로젝트를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은 '노무현 정권 '에 대한 실망을 근거로 한다. 국가보안법 등 각종 악법을 폐지하고, 관료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삼성 등 각종 대자본을 적절히 견제하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 하는 등의 개혁 프로젝트들은 모두 좌초되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를 한국사회의 '지배연합', '재벌의 지위' 등의 해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자유주의의 태생적 한계로 규정한다. "개인 노무현은 최다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어하는 '착한사람'이었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그 수단으로 '시장'과 '경쟁'을 선택하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잘 요약하는데, '시장' 또는 '경쟁'을 버리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개혁'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넓게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복지국가'라는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태생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노자는 새로운 세력에 눈을 돌린다. 자유주의의 왼쪽에 있는 세력들. 바로 좌파. 좌파에도 무수히 많은 갈래들쳀 있지만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그는 진보정당에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은 국가운영 - 즉, 집권! - 을 염두에 두는 조직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강부자 정권에 투표를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에서 진보정당이 설 땅은 좁디 좁을 수 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경기에 민감한(=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수가 많은터라 '분배'보다는 '성장'에 매력을 느끼기 쉽고, 토건적 경제성장 시스템으로 인해 서민들도 지역 경제에 콩고물을 떨어뜨려 줄 대형 건설사업을 물어올 능력이 있는 '가진자'에게 투표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에서 자본주의의 가혹한 착취에 맞선 민중들이 저항으로 '복지'를 쟁취한 것과 달리, 압축성장한 한국에서는 '복지'라는 화두를 국가가 먼저 선점했다는 것도 이유로 거론된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권리를 쟁취한 경험이 거의 없는 '시민 아닌 시민'이라는 낯설지 않은 분석이 여기서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정당이 자리를 잡기에 너무 척박한 토양이다. 이같은 어려움 때문에, '국가운영'을 위해 진보정당을 얘기한 그가 역설적으로 "'진보 정당의 집권 계획' 이야기는 당분간 하지 않는 게 현실적일 듯 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패와 무관하게 의미있는 소수로 남는 것도 현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당장의 '탈환 가능성'은 없다는 말이다.

후퇴. 또 후퇴. 그는 끊임없는 미래로 과제를 넘긴다. 사회주의와 혁명에서 진보정당과 복지국가로. 그리고 진보정당과 복지국가라는 '현실적 과제'를 다시 미래의 일로.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진짜 시민사회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본 한국의 시민사회는 저지와 반대는 잘 하지만, 명확한 프로젝트는 없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활동했던 시민운동가들은 모두 '한 운동' 했던 이들이지만,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더라도 추진되었을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열심히 처리했다. 다른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권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화 운동세력-시민운동 세력은 반대와 저지 이상의 구호를 외치지 못했다. 박노자는 명확한 프로젝트 - 그의 경우에는 '복지국가' - 를 지니고, 굳이 시민운동이 정권과 관계맺을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진보정당이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시민사회에 요청하는 것 같다. 그는 온 나라를 총파업과 데모로 마비시킬 만큼의 '비폭력적 실력 행사'가 가능할 수준의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시민사회를 얘기하고 있다. 국가를 탈환한다는 것이 단순히 정권만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프로젝트를 교체한다는 의미라면 이 수순은 당연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 국민의 자질에 맞는 사회체제와 정부를 가진다"는 말처럼, '복지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적인 동의와 승인, 내면화가 없다면 국가 탈환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진짜 시민사회'라는 단어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시민사회는 단순히 '시민단체'가 아닌 것이 된다. 국가 외부의 모든 영역을 말하는 것이며, 그 영역을 '복지국가'라는 큰 그림에 동의하는 시민들-민중들의 힘으로 가득차게 해보자는 말이다. 그래서 시민의 힘으로 국가의 움직임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같은 구상이 단지 몇몇 단체의 역할로 가능할 리가 없다. 그는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큰 프로젝트에 (몇몇 단체가 아닌) 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했던 것처럼, '민주화 프로젝트' 이후 소실되었던 프로젝트를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켜 보자는 것이다.

그의 총론은 이처럼 명확하고 매끄럽다. '복지국가'라는 선명한 방향성, 자유주의자가 아닌 좌파라는 추진주체, 진짜 시민사회의 형성이라는 방법론까지. 하지만 본인도 예상하다시피 좌파를 자임하면서 '혁명'을 기각했다는 것은 비판의 화살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지 않는 이유를 몇가지 제시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박노자가 혁명을 대하는 관점이다.

그는 혁명이란 -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 목적을 위해서는 젖먹이라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며,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 등이 뒤따르게 되는 혼돈의 상황이라 규정한다. 때문에 가급적이면 혁명과 같은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민중의 삶을 지키고, 복지수준과 제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그의 입장은 혁명이라는 사태가 오지 못하도록 대중을 달래서 미연에 방지하자는 지배계급의 낡은 구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올바른 길을 위한 혁명이라는 것도 "민중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기에, 그 길을 피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가급적 피하자는 것이다. 때문에 '혁명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실패했을 때 결국 혁명적인 사태가 도래하게 된다면 혁명을 부정해선 안된다고 말한다.(내겐 혁명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즉, 그에게 혁명이란 민중들을 가혹하게 눌렀을 때 발생하는 자연현상(끔직한 재난!)과도 같은 것이고, 가급적 사전에 문제를 해결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이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과정이 너무나 끔찍한 과정이라고.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는데, 지금은 - 특히 서구나 대한민국에서는 - 혁명의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복지수준이 높은 서구민중들과 반주변부(대한민국을 포함)에서는 체제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동의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제국가('차르'체제)가 농민들을 가혹하게 눌렀던 러시아 혁명 시기에 비해 오늘날의 자본주의 중심부-반주변부에서는 혁명이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대중없는 혁명은 쿠데타다!) 때문에 이같은 상황에서는 혁명보다는 급진적 개혁이 현실적이며, 때문에 '복지국가'라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라 그는 설명한다.

나는 지금 느낀다. 박노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새로웠던 기분. 그가 던진 생소한 질문들. 그 느낌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받았다. '좌파'란 '혁명을 꿈꾸는 자'라는 정의가 흔들리는 듯 하다. '복지국가'와 '좌파'란 사실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국가'라는 담론은 좌파와 우파의 어설픈 섞어찌개가 되기 쉽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총론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조금 솔깃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실 나도 '혁명'이 두렵다. '목적을 위해서는 젖먹이라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며,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 등이 뒤따르는' 상황을 맞고 싶지도 않다. 아무래도 집회때 피켓을 드는 것과 혁명에 나서 총을 드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혁명이 오기 전에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을 나도 바란다. 가능하다면!

그렇다. 과연 그것은 가능한가. 현재의 체제를 완전히 리셋하지 않고도 모든 이들의 행복한 삶은 가능한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공공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만민평등이란 가능한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에서 북유럽-그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달인들! - 도 복지의 해체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하에서의 복지국가란 비전이 있는 것인가? 세계경제가 - 서브프라임 사태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 침체를 겪어왔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상위권 국가들이 복지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하위권 국가들을 착취한 댓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혁명 외에도 우리에게 훌륭한 수단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의 총론이 옳다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에게 묻고픈 너무나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혁명을 가급적 피하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박노자의 총론에 너무나도 호감이 가지만 내겐 아직 그의 총론이 믿음직스럽진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명확한 프로젝트를 지니지 못한 우리 사회에 그는 중요한 고민거리를 훌륭하고 두텁게 던져준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노자라는 '활발한 사회참여형 지식인'은 이 책에서 비롯된 온갖 질문과 고민에 답변해 줄 기력도 시간도 충분히 예비하고 있을 것이니, 우리가 가슴에 품은 질문들에 어떤 애프터 서비스를 해 줄 것인지 앞으로의 저작들을 기다려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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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자손들이 장차 유치원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무한 경쟁’에 몰입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우리 상황에서는, 비시장적 사회와 같은 궁극적 이상은 고사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복지 자본주의만이라도 성취하려면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게는 왼쪽으로부터의,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왼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크게 봐서 동의어이다. ‘무한 경쟁주의’의 지옥에서 ‘왼쪽’으로의 행진만이 우리의 미래다. 현 위치에서 정지해버리는 것은 과거로의 퇴보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한국적 상황에서 재벌 대표자들의 시장주의적 통치는 ‘경찰주의’, ‘공안 정국 조성’, ‘남북 긴장 조장’, 그리고 끝없는 ‘밑’에 대한 폭력을 의미할 것이고, 결국 과거의 폭력적 통치로의 역행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저항없이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탓할 데라고는 우리 자신밖에는 없다. 한 국민은 그 국민의 자질에 맞는 사회 체제와 정부를 갖게 돼 있다는 격언이 아무리 진부하다 해도, 근대 정치학은 이 말 이상의 진리를 아직도 산출하지 못했다. --- pp.22~23,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에서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다. 그 소수로부터의 압력마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이다. --- pp.43~44

그들(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이란 뭔지 늘 궁금했었는데, ‘햇볕 정책’ 이외에는 대체로 각종 악법(국가보안법 등)을 폐지하는 것, 관료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시키는 것(각종 토착 비리 척결), 그동안 이런저런 월권행사를 당연시해온 각종 대자본(특히 삼성·조중동)에 대해 국가가 적당힌 견제를 가하는 것,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거품 터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단계적 땅값 내림세 유도, 투기 방지책) 정도라 하겠다.
뭐, 발상이야 좋고, 나도 하등의 반대가 없다. 그러나 이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이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앞에서 나열한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온건한 자유주의적 노선’마저도 사실상 ‘자유주의’보다 더 진화된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세력들만이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게 ‘한국적 정치’의 재미있는 역설이다. --- p.53

노르웨이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민당은, 과연 저들의 지배자들을 찬양하면서 무상 교육과 의료 등의 엄청난 양보를 따낸 걸까? 천만의 말씀! 북구의 부르주아들이 대중의 급진화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다 온건한 사민주의자들과의 ‘동상이몽적 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자들과 경쟁해야 했던 1930∼1940년대의 북구 사민주의자들은 말년의 여운형(1886~1947)이나 조봉암(1898~1959)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에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의 건설에 동의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 --- p.72

아이를 키우면서 오슬로에서 사는 처지인지라 이쪽의 아동들의 세계를 꽤나 자주 접하게 돼 있는데, 절감하는 것 하나는 아이들이 벌써 두세 살부터 일종의 ‘유아 자본가·재산가’로 키워진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애정을 주는 것보다 장난감을 줌으로써 아이를 달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껴서인지 아이에게 자주 선물을 사주는 게 의례화되어 있고, 또 유아용 완구 산업과 유아 문화 산업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 예컨대 포케몬 만화가 새로이 나오는 대로 포케몬 관련 새로운 완구도 곧 출시되는 등 - 아이들이 완구에 대단한 의미를 두어 ‘완구 수집가’가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다. 게다가 가시적인 경쟁의 이미지가 강한 이미지 자본주의 사회인지라 아이들도 완구를 누가 더 많이 갖고 있는가를 가지고 경쟁을 한다. 그래서 나도 내 아이에게 ‘벤텐(그 무슨 ‘우주 전쟁’ 영웅인지 뭔지 어쨌든 아주 파괴적인 이미지의 주인공임)’을 사달라는 당부를 늘 받아,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쁘다, 이런 완구를 사면 너도 결국 불행할 것이다”라는 걸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면서 산다. --- p.150

그런데 세상은 탈북자는 잘 알아도 탈남자들은 거의 모른다. 내가 이야기하는 탈남자란, 단순한 ‘공식적’ 이민 이외에 사회·문화 등 복잡한 이유로 비합법적 통로를 포함한 각종 통로를 통해서 남한을 떠난, 그리고 남한에 다시 오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탈북자와 법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가 통상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북한의 종주국인 중국에 가 있는 탈북자의 수(약 20만 명)만큼이나 불법적 탈남자들(약 19만 명)이 남한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다. 탈북자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 언론들이 왜 그 탈남자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걸까? 거기다가 일본(약 5만 명) 등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을 다 합하면 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 pp.178~179

내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에서 살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러시아인 중 한 사람이 K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던 Ts라는 분이었다. …… 그러다가 K대학교 재직 마지막 해에 한국어를 잘 아는 한 친구가 우연히 그의 인사 카드를 보게 되었는데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그 카드에는 그의 학력이 ‘학사’로 등재돼 있었고 그의 직급 및 급료 지급 기준도 마찬가지로 ‘학사 출신 원어민 전임 강사’로 찍혀 있었던 것이다. 꽤나 순진했던 그는, 10여 년 동안 자신의 월급이 한국 대학 위계서열에서 어느 ‘급’에 해당되는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월급을 훨씬 ‘덜’ 받았다는 것보다도, 박사로서의 학력이나 학자로서의 경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혔다. 그래서 그는 해당 학과 학과장부터 K대학교 총장에게까지 이 문제에 대한 서한을 발송해 지금까지의 ‘부당한 학력 불인정’에 대한 정정과 보상을 요청했다. 그에게 돌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상사 중 한 사람이 그를 불러 “우리 학교를 위해 제발 이 문제를 묻어달라”고 이야기한 것이 전부였다. 10여 년간 한 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에는 그가 그래도 너무나 ‘소련적인’, 즉 ‘법리’보다 ‘온정’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소속 학교로 귀국해 돌아갔고 약 2년 후에 심장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 pp.240~241

오늘날 상당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각각 ‘우리의 신성한 국토’라고 인식하는 독도, 대만, ‘북방 네 개의 섬’을 위해 심신을 다 바쳐 자기희생을 할 ‘애국적’ 각오를 보이고 있지만, 국토의 근대적 관념이 동아시아에 도입된 지 약 15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특정 국가의 지배 영역이라는 의미의 강역(疆域)은 이미 전통 시대에도 인지됐지만 그 사이의 경계선은 오늘처럼 절대시되지 않았다. 예컨대 18세기 말 이전까지의 일본 지도에서는 ‘일본’(즉, 에도 막부 통할 구역)의 영역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가 뚜렷하게 표시돼 있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경선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6세기의 ‘조선팔도지도’를 비롯한 상당수의 조선 지도에는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표시 없이 그려진다. 대마도의 도주(島主) 소(宗)씨가 비록 조선에도 조공을 바쳐 형식상의 관직을 받기는 했지만 일차적으로 일본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조선에서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경선을 표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토 귀속을 신성시하는 근대적 ‘국토’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 pp.293~294

집권 초기라서 불가피한 현상일까? 「한겨레」와 같은 비교적으로 진보적 매체에서조차 오바마에 대한 온갖 ‘기대’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나는 ‘유색인종 출신의 최초의 대통령’에 대한 아주 당연한 친근감이고, 또 하나는 대중국, 대북 정책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놓지 않을까하는 역시 “이유 있는” 기대 때문일 것다. 왜 “이유 있다”고 하는가 하면, 오바마가 ‘착해서’가 아니다. ‘착한 정치인’이라는 말 자체는 형용모순이지만(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이들도 ‘위대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어도 ‘착한 사람’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직업 선택’의 문제이다. 나 역시도 다른 부분은 몰라도 오바마의 피부색만큼은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중산계층의 ‘반쪽’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20퍼센트의 빈곤율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출세할 수 없슴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GM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비상 상황에서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업 그 자체는 타자에 대한 살인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부분을 필수적으로 내포한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도 오바마가 벌써 20여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파키스탄 국경 마을에 대한 미사일 포격을 승인하지 않았는가? 그게 시작이고 앞으로는 그 규모가 계속 커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제국주의 반대자’라기보다는 ‘똑똑한 제국주의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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