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뒤에, 그는 여전히 그 만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그는 따로 떨어져 앉아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비타민이 첨가된 시리얼을 씹으면서, 그는 성을 추구하는 행위의 흡혈귀적 성격에 관해서, 혹은 그것의 파우스트적 측면에 관하여 생각했다. 예컨대 그는 사람들이 흔히 호모들에 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호모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그는 어린 남자들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성도착자들은 많이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흔히 호모라고 부르지만 브뤼노가 보기에 그들은 상대의 나이에 상관없이 동성을 좋아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 이른바 호모들은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 대해 일종의 본보기 구실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젊은 몸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브뤼노 자신을 놓고 보더라도, 마흔두 살인 그가 자기 나이의 여자들을 원했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기는커녕, 미니스커트에 가려진 젊은 음부를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령 세상 끝까지는 못 갈지라도, 서구의 다른 중년 사내들처럼 방콕까지는 갈 수 있을 듯했다. 열세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말이다.
--- pp. 152~153
브뤼노는 밤 11시경에 도착했다. 이미 술을 약간 마신 탓인지, 그는 댓바람에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했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정확함에 놀라게 돼. 그가 그 책을 쓴 것이 1932년이야. 그 점을 생각하면 헉슬리는 정말 굉장한 작가지. 그 이후로 서구 사회는 줄곧 그 모델에 다가가려고 노력해 왔어. 우선 출산에 대한 통제가 갈수록 정확해지고 있어.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생식과 섹스가 완전히 분리될 것이고, 인류의 재생산이 안전성과 유전학적 신뢰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게 될 거야. 그러면 가족 관계가 소멸하고 혈연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겠지. 또 의약의 진보 덕분에 젊은이와 늙은이의 구별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 헉슬리가 묘사한 세계에서는 60대 노인이 20대 젊은이와 똑같은 외모와 욕망을 지니고 똑같은 활동을 해. 그러다가 노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자유롭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어. 고통받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죽을 수 있지. 『멋진 신세계』에 묘사된 사회는 비극과 극단적인 감정이 사라진 행복한 세계야. 성적인 자유가 완벽하고, 개성을 꽃피우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어. 우울증과 슬픔과 회의를 겪는 순간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문제는 항울제나 항불안제 같은 약을 복용함으로써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 <1세제곱센티미터의 약으로 열 가지 감정을 다스리는> 진보가 이룩되거든. 그 세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열망하는 세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세계가 아니겠어?」
--- pp. 230~231
솔레르스는 요한 바오르 2세에 관한 브뤼노의 글을 『무한』의 다음 호에 실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브뤼노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당시 솔레르스는 한창 가톨릭의 <반(反)개혁>에 동조하면서 교황을 열렬히 지지하는 선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었지만, 브뤼노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솔레르스가 활기 찬 어조로 말했다.
「페기, 좋아요. 감동을 주죠! 그리고 사드, 사드! 특히 사드를 읽어야 돼요!…….」
「가족에 관한 제 원고는…….」
「네, 그것도 아주 좋아요. 당신은 반동 분자예요. 그 점이 좋아요. 위대한 작가들치고 반동 분자 아닌 사람이 없어요. 발작, 플로베르, 보들레르, 도스또예프스끼 등 반동 분자가 아주 많죠. 하지만 섹스도 해야 돼요. 안 그렇소? 파르투즈를 해봐야 돼요. 그건 중요한 일이오.」
솔레르스는 브뤼노를 가벼운 자아 도취 상태에 빠뜨려 놓고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 pp. 271~272
「그래도 상당히 독창적이에요. 전혀 무겁지도 않고요. 게다가, 당신은 인종 차별주의자이기는 해도 반유대주의자는 아니더군요.」 그러면서 솔레르스가 다른 대목을 가리켰어. <서구 사회에서 흑인이 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유대인들 뿐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지성과 죄의식과 수치심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서구 문화에서 유대 인들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것에 필적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흑인들이 유대 인들을 유독 미워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 pp.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