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죽는 것보다 못한 삶도 있음을…. 그리고 죽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차라리 죽겠다고 결심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마도 내 안 에는 아직 삶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런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최악의 순간이 찾아왔다. 명예퇴직을 당한 것 보다, 주식으로 모든 돈을 날린 것 보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린 것 보다, 아니 그것들은 비교도 안될 만큼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역 광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한 돈으로 술을 사다 마시고,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담배를 입에 물고 앉아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문득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둘째 아들이었다. 순간, 혹시라도 알아볼까봐 몸을 최대한 낮추고 아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어느새 제법 사내 티가 나는 아들 녀석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솟구쳤다. 특히 둘째는 한창 일에 빠져있을 때 태어나 재롱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늘 미안함만 가득했을 뿐이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아버지로서 안 좋은 모습만 보여줬다. 지난날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일하던 그 시절, 아이들이 태어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날들, 나름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악몽 같았던 시간들도. 날마다 아내와 싸우고,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고,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런 날들이 떠오르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문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아이들에게 다시금 아빠의 자리를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아버지를 찾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적어도 이렇게 역 앞의 노숙자 모습만은 면하고 싶었다.
내 나이 50,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노숙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어 방황하다 보니 이곳으로 온 것이고, 노숙자가 된 것이기에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도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당장 술을 끊을 수는 없었지만, 날마다 마시는 술을 의식적으로 줄여나갔다. 물론 술을 마시다보면 어느새 결심은 사라지고 다시금 나를 길거리에 풀어놓고야 말았지만,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반성하고 며칠은 다시 노력하는 것을 반복했다. 노숙자들 중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가급적 그들과 어울렸다. 평생 여기서는 살 수 없지 않겠느냐며 서로를 격려했다. 혼자서 살 방법을 찾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고, 힘들면 위로도 해줬다. 역 화장실에서 씻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이라도 해보려고 찾아갔으나 일거리가 없었다. 혹시 일자리가 있다 해도 나보다 젊거나 멀쩡한 양반들 차지였다. 번번이 헛걸음을 하게 되자 몇몇 같이 갔던 사람들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다시금 예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리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아들의 모습을 봤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날을 떠올리면 세상에 어떤 것도 참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어려움도 이겨낼 것만 같았다.
정기적으로 노숙자들을 위해 간단한 진료를 해주고, 전도를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 믿으란 말이 싫어서 말이라도 걸려고 하면 먼저 자리를 피하곤 했다. 속 편한 소리하는구나 싶어 술 먹고 행패를 부린 적도 꽤 많다. 그래도 가끔 배가 아프거나 감기에 걸리면 약도 받아먹고, 예방접종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중 자주 오는 한 남자분과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있었던 터라 하루는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나,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어려워도 다시 한 번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 분은 사회복지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나의 결심을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줬다. 무엇보다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이다. 내가 봐도 더러운 내 몰골인데, 냄새도 나고 온 몸에 까맣게 때도 가득한데, 그런 내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는 그 사람이 놀라웠다. 민망한 마음에 슬며시 손을 빼며 “그런데 교회는 가기 싫으니까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말아요”라고 말하자, 사회복지사인 그 양반은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나 재활 센터가 있으니 알아봐주겠노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지금의 모습을 벗고 정상적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버텨보기로 했다. 이제 내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내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아직은 포기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만 했는지….
얼마 전부터 그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재활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센터 프로그램을 참여하기 힘들 때가 더 많고, 도망치는 날도 많다. 그래도 나를 채찍질한다. 삶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자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갔다. 언젠가 당당하게 한번쯤 아이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딱 한번이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내 인생, 마흔의 나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모자람. 지난 10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10년, 아니 단 1년이라도 지금까지와 다른 나로 살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보려고 한다.
가끔 아들을 봤던 날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아들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닮은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고,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 삶을 바꿔주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란 사실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