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2006년) 사회를 논평한 책이 20여 년 전(1985년)에 출간되었다? 적어도 당신은 이메일을 쓰거나, 회신전화를 걸거나, MP3를 다운받거나, 게임에 빠져 있거나, 웹사이트를 둘러보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메신저로 채팅을 하거나, 동영상을 녹화하거나, 동영상을 구경하고 있지는 않기에,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 당신은 20세기에 출간된 책 중 21세기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아마 잠시이 책을 훑어보기만 해도, 1985년 당시 세계에 대한 적나라하고 도발적인 비판 때문에 적지않게 충격받을 것이다. 은근하면서도 뿌리깊은 텔레비전의 해악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한 이 얇은 책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시대에 와서야 시의적절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 2006년판 서문 중에서
당신은 지금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우리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혹시 당신은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기기는 ‘인간이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고정관념의 소유자는 아닌가?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를 단순히 ‘또래문화’ 정도로 치부하는 경솔함을 보이진 않는가? 막장드라마나 선정적인 쇼, 저질 코미디 프로야말로 텔레비전의 골칫거리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히 틀렸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기사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을 여론이라 여긴다면, 구제불능 수준이다. 이 말은 이미 당신은 21세기 초반의 매체생태환경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분별력을 송두리째 상실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과거 어느 시절보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때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불과 10여 년 사이에 온갖 매체가 우리를 뒤덮어 버렸다. 고개만 돌리면, 손만 뻗으면, 엄지손가락만 움직이
면 온갖 즐길 거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다. 놀 거리가 지천에 널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죽도록 즐기기' 딱 알맞은 세상이다. 그런데 죽도록 즐길 때마다 실제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죽어가고 있다. 그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 역자 서문 중에서
텔레비전 세계에서 오락은 모든 담론을 압도하는 지배이념과 같다. 무엇을 묘사하든,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 때문에 매일같이 뉴스에서 재난이나 잔혹한 장면을 접하면서도, 뉴스진행자가“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하는 한마디에 걸려들고 만다. 왜냐고? 아마 TV에서 몇 분 정도 살인이나 무차별적 살해사건을 보면 한달 정도는 잠을 못 이룰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미 삼아 보게 될 것임을 잘 알기에 뉴스진행자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 p.142
뉴스쇼에서 온통 우리가 보고 듣는, 잘 생기고 상냥한 뉴스진행자, 유쾌한 재담, 자극적인 타이틀 음악, 생생한 현장 장면, 그리고 매혹적인 광고… 이 모든 것들이 방금 본 장면이 슬퍼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뉴스쇼는 오락적 구성 형식일 뿐, 교육적이지도, 성찰하거나 정서를 함양하는 형식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뉴스쇼를 만든 사람들을 엄격하게 비판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읽을 뉴스를 편집하거나 라디오 청취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위한 뉴스를 TV로 내 보내고 있을 뿐이다. --- p.142
결국, 우리는‘ 하찮음의 추구’라고 부를만한 정보환경으로 급속히 들어서고 있다. 이 게임은‘ 사실’을 오락을 위한 원재료로 사용하기에, 우리의 뉴스 출처도 오락의 재료가 될 뿐이다. 오보(誤報)나 판단오류가 난무해도 문화는 존속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단 22분 만에 어림잡는다거나, 재미있는 뉴스가 가치 있는 뉴스로 둔갑하는 상황에서도, 문화가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다. --- p.178
우리 모두는 "자, 다음은…"이라는 뉴스세계 - 모든 사건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전후 관계는 물론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까지 배제된, 파편화된 세계 - 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기에, 일관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모조리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모순이 도래했다. 소위 무상황의 상황(the context of nocontext)에선 모순이 증발해버린다. --- p.174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매 30분마다, 앞섰거나 잇따를 사건과는 내용이나 정황이나 감정적 성격이 제 각각인 단절된 사건이 등장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텔레비전이 시간을 분초로 나누어 팔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텔레비전이 말보다는 이미지 우선이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자가 TV화면 앞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기에, TV프로그램은매 8분 단위로 사건을 그 자체로 완결쎽켜 나타내도록 편성된다. 따라서 어떤 뉴스 꼭지에서 다른 꼭지로 넘어갈 때, 시청자는 생각이나 느낌을 전혀 끌고 다튴 필요가 없다. --- p.159
이제 텔레비전은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론까지 지시하는 초(超)매체적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와 동시에 TV는 미국문화에 너무나 익숙하고 철저하게 얽혀 있어서 이제는 더이상 배후에서 나오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깜박거리는 회색 불빛도 보지 못한다. TV가 구축해 온 삐까부 세상도 이제는 더이상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 p.132
그래픽과 전자혁명으로 유발된 가장 큰 골칫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 세계가 우리에게 낯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낯설게 느끼는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길들여졌다는 신호이며, 길들여져 온 만큼 우리가 변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는 이제 텔레비전의 인식론에거의 다 길들여졌다. 즉,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규정되는 진실, 지식, 사실을 너무도 철저하게 받아들이기에, 쓸모없는 것들이 중요한 것인 양, 그리고 모순된 것들이 대단히 합리적인 양 우리 안에 가득 들어앉게 되었다는 뜻이다. --- p.133
텔레비전이 배출하는 쓰레기 정보에 대해선 별 이의가 없다. 무가치한 정보야말로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최선의 것이고,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때문에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가 문화를 평가할 때는,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길만한 것으로 잣대를 삼지, 시시하고 뻔한 것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텔레비전은 기껏해야 하찮을 뿐인데, 주제넘게 과대 포장되어, 스스로 중요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전달자로 자처할 때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 p.37
이 책은 우리 족속 모두가 겪고 있는 글쓰기의 마법에서 전자기술의 마법으로 넘어가는 엄청나고 전율할 만한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 글쓰기나 시계와 같은 기술을 문화에 도입하면 시간을 붙들어매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단순히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은 물론 나아가 문화의 내용까지 변질시킨다는 사실이다. --- 1장 〈미디어는 메타포다〉 중에서
아침에 TV뉴스나 라디오 또는 조간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인해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전신의 으뜸가는 유산이다. 즉, 전신으로 인해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 5장 〈삐까부 세상〉 중에서
여기서의 쟁점은 텔레비전이 오락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온 세상과 교감을 유지하지만, 이는 인격이 사라진 무표정한 방식일 뿐이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 6장 〈쇼비즈니스 시대〉 중에서
사람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고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여왕처럼 게걸스럽게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괜찮은 인물이야?" 사람들은 TV화면에 비친 성격이나 가정생활이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여왕이 받은 대답보다는 나은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제 나름대로의 이미지로 신을 그린다. 즉,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은 시청자가 상상하는 대로 자기 이미지를 개조해야 할 터이다. --- 9장 〈이미지가 좋아야 당선된다〉 중에서
배움에서 중요한 점은 어떤 식으로 배우는가 하는 문제와 늘 관련된다.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로 체득한다. 텔레비전은 아이들로 하여금 TV시청 때 유발되는 행동습관대로 행하도록 가르친다. 지속적으로 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2차적인 배움이 맞춤법이나 지리, 역사를 배우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근본적으로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10장 〈재미있어야 배운다〉 중에서
대중이 하찮은 일에 정신이 팔릴 때, 끊임없는 오락활동을 문화적 삶으로 착각할 때, 진지한 공적 대화가 허튼소리로 전락할 때, 한마디로 국민이 관객이 되고 모든 공적활동이 가벼운 희가극과 같이 변할 때 국가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문화의 사멸은 필연적이다.
--- 11장 〈헉슬리의 경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