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힘에 대하여
(힘, 힘을 알자)
힘이란 무엇일까?
이와 비슷한 명제로 시간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있다. 여기에 대한 대답보다는 이에 대한 견해가 있다. 생물학적인 시간, 물리학적인 시간, 등 여러 각도에서 나름대로의 시간을 정의해 볼 수 있다.
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접근해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물리학적인 논리를 펼쳐 보도록 하겠다. 이 관점에서 힘과 관련된 세상 일 들을 비추어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방편을 취하는 것이 되는데 방편치고는 너무나도 멋지고 확실한 방편이 아닐까 한다.
잠깐 힘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자. 무엇이 힘인가? 우선 아는 것이 힘이다. 힘을 강자의 정의라고 한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나 역량도 힘이며 매력도 힘이다. 부모나 스승의 따스한 보살핌과 자애로움에 의해서 자녀들은 변화한다. 자라면서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한다. 이처럼 여러 현상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대단한 힘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약이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약효도 힘이며, 건전지는 전기를 발생시키는 기전력의 원천이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건전지는 힘을 저장하고 있는 그릇이 된다.
사랑이라는 힘으로는 능히 상대를 포로로 만들며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노예가 된다. 마력으로 주술을 걸 수도 있으며, 힘에는 악한 세력과 선한 세력도 있다. 경제력도 힘이며 돈도 힘이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힘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하며, 모든 것이 힘과 관련된 것이니 세상일들의 기저에는 힘이 깔려 있다.
기업 경영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힘의 속성을 알아야 하고, 전쟁을 하더라도 힘의 관계를 잘 따져 상대편과 나와의 힘의 분배나 역학 관계를 잘 추론할 수 있어야 승산이 있다. 적어도 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힘에 대하여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지만 이 모든 힘들의 속성은 한결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세상일이나 물리적인 힘 모두가 유사한 점이 있어서 일정한 법칙 하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살피고, 힘의 속성과 기본 법칙을 잘 이해하면 자연히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일이나 힘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 힘들의 속성을 살피고 이해하면 자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일들에 많은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힘들을 단순히 물리 법칙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과 생각 속에서 잘 조화롭게 활용 한다면 지혜는 한 단계 높아질 것이고, 자연(우주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힘을 알자.
모든 것의 원천은 힘이다.
모든 것이 관련된 힘. 힘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차원에서 활용이 될 것이다.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응용할 수 있으니, 학생이나 자녀 교육을 하더라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주변 상황에 잘 대처하는 현명한 판단으로 얻어진 힘으로 한 차원 높은 또 다른 힘을 과시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힘을 들이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지만 힘을 헛되이 쓰면 소모력으로 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힘의 성질을 이해하고 이들 간의 상호 관계를 살핀다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으니 바로 새로운 힘을 쌓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힘의 역할과 성질 등., 힘들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이것이 아마도 행정가의 몫이리라.
2. 힘이란
(힘의 이해를 위하여)
힘은 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이동시키며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정지시킬 수도 있고, 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힘이며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작용이 힘이다.
팽이가 돌고 있는 것을 보자. 신나게 한참 회전할 때에는 돌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꼿꼿하게 똑바로 서서 돌고 있다. 팽이에는 조화와 균형이 내재하고 있다. 이처럼 물체에 힘이 작용할 때 평형이 유지되게 하는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힘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세력 균형이 되어 있는 것도 팽팽하게 힘이 맞서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긴장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체가 상호작용 하는 것은 물체들 사이에서 어떤 매개체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힘이 작용하는 것은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장(field)과 장이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과 장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힘과 힘의 대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 힘들이 상호작용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무거운 물체를 들 때에도 힘이 작용을 하고, 힘이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힘이 든다는 것은 완전히 주관적이다.
힘이 든다는 것이 왜 주관적인가? 아기는 빈 주전자조차도 들 힘이 없지만 조금 자라서는 물을 가득담은 주전자라도 별로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아기는 무거워서 주전자를 들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힘이라는 개념은 마치 온도를 느끼는 것 같아서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힘을 객관화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객관화 작업은 물리적인 관점인데 실험을 한다거나 이론을 세우는데 있어서 기본적일뿐더러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당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작용하는 힘에 의해 물체는 변형을 한다든지 움직이게 된다. 힘이 작용하니 물체는 찌그러든다든지 속도가 증감하게 되며 일을 하기도 한다. 이 힘에 의하여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운동 상태가 변하는 것 등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된다. 즉 힘에 의해서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힘은 어떠한 형태인가?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힘은 형태뿐 아니라 장소에 따라서 나타나는 양상이 다양하다.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힘을 질량이 있는 물체를 가속시키는 능력으로 정의한 사람이 바로 뉴턴이다.
질량이라는 간단한 단어도 때에 따라서는 만만히 이해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량의 단위는 이다’라는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질량의 단위는 “스칼라”라고 불리 운다’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량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아야 한다. 의 물체를 가속키는 데에는 힘이 든다. 이 물체를 의 속도로 가속시킬 수 있는 힘을 1 뉴튼이라고 한다. 이러한 힘도 내력과 외력으로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다양한 힘들에 대하여 여러 각도로 고찰할 것이므로, 차차 힘들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3. 질량
(질량과 마음은 같은 것)
‘믿음직하다. 듬직하다. 묵직하다. 신뢰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통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가볍다, 경솔하다, 촐랑거린다. 약삭빠르다. 재빠르다.‘ 이와 같은 말들도 서로 의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쪽 편은 어딘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말 중에서 어떤 말들을 선호하겠는가? 누구나 믿음직하고 신뢰받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을 물리적으로 본다면 쉽게 적용할 수 있어서 이들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관성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질량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질량의 단위는 이다’라고 말한다면 다소 이해가 갈 것이다.
‘당신의 몸무게는 얼마입니까?’ 하는 물음에, ‘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잘못된 말이다. 은 질량의 단위이지 무게의 단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라고 해야 되겠고, (뉴튼, 힘의 단위로 )이라고 하여도 된다.
의 질량은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의 물체는 달에 가면 가벼워지고 지구에서는 이 되며 다른 천체에 가면 그 별의 중력에 맞게 무게가 변하게 된다.
물체에 힘을 가하여 물체가 움직인다고 하자. 힘을 받은 물체는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물체는 그 질량에 따라 질량이 클수록 작게 가속되고 질량이 작을수록 많이 가속된다. 즉 질량의 여하에 따라서 움직임이 결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힘을 가했을 때 가속되는 정도는 질량에 반비례 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질량이 큰 물체는 가속되기 어렵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큰 물체를 움직이려면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경우를 비유해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경우는 인격이라는 질량이 있어서 인격이 바로 질량에 해당하므로 인격자 일수록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중국의 몇몇 인사들이 모여서 새로 만든 대포의 발사 시험을 관람하게 되었다.
탄약을 장전하고 이윽고 ‘발사!’하자 ‘쾅!’하고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큰 소리에 깜짝 놀라서 마음이 혼비백산 하게 되었다. 유독 태연히 관전하고 있는 김구 선생님, 웬만한 정도의 진동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태연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으니 이것도 질량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인격의 질량일 것이다.
나 자신은 얼마만한 외력에 반응을 할 것인가? 천지가 무너져 내려도 태연할 수 있다면 수양이 깊은 사람이고 군자의 참 면모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부정과 부패를 말하곤 한다. 어떤 이는 담배 값에 움직이고, 몇 만원의 돈이 수수되면 일이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몇 억이나 되는 돈을 마치 자기 돈으로 착각하고 횡령을 한다. 이것은 모두 돈의 힘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이다. 그러나 이런 위력의 뒤에서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라는 질량이다. 마음이 움직여야지 모든 것이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모두 욕심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성인이나 군자는 이러한 욕심에 초연한 것이다. 얼마의 질량이면 초연할 수 있을까? 마음이 초연하다는 것은 마음 질량(무게)의 무한대를 의미할 것이다.
마음의 질량을 어떻게 잴 것인가? 아마도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물질과 외부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닦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쉽게 움직인다고 하자. 유혹에 넘어간다든지 의지가 약한 것도 모두 자신의 질량이 작은 탓이다.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의 질량이 불과 몇 푼 안 된다고 착각 하든지, 값을 너무 싸게 먹이는 것은 아닌지…….
4. 습관의 법칙
(뉴턴의 제 1법칙)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움직임을 계속 하려고 한다. 이것이 뉴턴의 제 1법칙이라고 불리우는 관성의 법칙이다.
자연을 보면 모두 의젓하다. 산은 산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도 누군가가 치우기 전에는 제자리에 있다. 이처럼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관성의 법칙은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움직이는 물체가 움직임을 계속하는 이치는 과연 이치에 합당한가? 관성의 원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공을 굴리면 공은 얼마 안가서 멈추게 되는데, 잘못 생각하면 뉴턴의 제 1법칙이 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되는 관성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다. 눈이 온 날이나 빙판 길에서 달리기를 할 때 정지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지하기보다는 앞으로 죽 나아가는 편이 더 수월하다. 이것을 생각하면 관성법칙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이 현상이야말로 움직이는 물체가 움직임을 계속하려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좋은 예라고 보면 될 것이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정지하는 것은 관성법칙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이동하는 물체에 마찰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찰이 있으면 마찰에 의해 생기는 마찰력이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게 된다. 만약에 마찰이 없다면 한번 움직인 물체는 외력이 작용할 때까지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물체에 힘을 가하면 어떤 물체는 멀리 이동하고 어떤 물체는 금방 멈추게 되는 이유가 마찰력 때문임을 이해할 수 있고, 마찰력의 여하를 막론하고 관성의 법칙이 물체에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험으로 확인하려면 잘 구르는 마찰이 작은 바퀴를 써서 물체를 미는 방법이 있다. 바퀴는 마찰이 작기 때문에 천천히 아주 오래 굴러가게 된다. 또 분출되는 공기 막(air table)위에서 원반과 같은 가벼운 물체를 밀어주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에 의하면, 물체는 공기 저항이나 다른 마찰력에 의해 언젠가는 정지 하겠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척도로는 속도가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성의 법칙, 즉 모든 물체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법칙은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을《습관의 법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대체로 언제나 일찍 일어나는데 이것은 참으로 좋은 습관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습관에 따라 공부하는데 이런 사람은 공부를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해한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도 습관이어서 관성적으로 한번 도박판에 빠지면 헤어날 줄을 모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