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1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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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16쪽 | 264g | 124*210*20mm |
ISBN13 | 9788937408489 |
ISBN10 | 8937408481 |
발행일 | 2016년 1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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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16쪽 | 264g | 124*210*20mm |
ISBN13 | 9788937408489 |
ISBN10 | 8937408481 |
1부 얼굴의 물 탕으로 파도가 있는 방 낳고 원경 모습의 흐름 토우 확성의 밤 사로잡혀서 예식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어딘지 흐르고 붉은 미열 이 모든 것이 여름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남은 얼굴로 2부 연안으로 동양 산양 시월 베네수엘라어 모색하는 사람 자재로 없는 개를 원어 동공 合 새 나는 새벽에 대하여 말했을 뿐인데 두 번째 자연 3부 그것에 누가 냄새를 지었나 공백 고원에서 누에 살구로 맛볼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동면 밤을 몰라보게 되어서 재를 넘어서 옥상으로 피서 문 기르는 얼굴 입국 손쉬운 체조를 하면서 그림자의 사람처럼 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2월의 비 감은 눈으로 작품 해설 장은정 찢는 증오 |
우리는 근본적인 모순으로 존재한다. 결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면서 내 얼굴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표상에 기대어 말하고 있다. 안태운 《감은 눈이 내 얼굴을》시집은 제목부터 그걸 말하고 있다. 증명사진처럼 내 얼굴이 나를 설명할 수 있다면 감은 내 눈이 내 얼굴을 설명하는 것이 이상할 게 무언가. ‘뒷모습과 뒤를 돌아보는 모습 사이에서 걷고’ 있다 말하는 그의 자서(自序)가 이상할 게 무언가. 그래서 그의 시집엔 얼굴들이 새처럼 떠다니고 물처럼 흘러 다닌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만을 설명하는 독립체도 복속체도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설명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왜? 모든 언어는 모든 언어에 속하며 서로를 표현하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런데 그게 참 멋지게 도착해 있다.
시 <자재로>를 살펴보자.
“운반은 반복되고 있다”, “필요는 망각되지 않는다”, “노동력이 이동하고 있다. 강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자재로 자재의 원천을 깨뜨린다. 묘사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표현을 만나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가 될 것이다. 상태가 상태를 설명하는 이상한 증식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묘사하면서도 더 이상 묘사할 수 없는 상태를 보여 준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꿈 얘기를 하고 꿈 속에서 현실처럼 살 듯, 있는 것들이 없는 것들을 설명하고 없는 것들이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이분법적 도식이 아니라 설명이 설명을 전복하는 사태가 이 시집에는 가득하다.
“어딘지 분실한 적이 있던 거리”, “꿈 속에서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안 건 나뿐이었다”(<미열>), “감지되는 나와 지향하는 나는 한 몸에서 서로를 시늉하고 있습니다”(<동공>),
“불러도 오지 않는 개가 있다. 개는 물 위에 엎드려 있었지. 엎드려서 흐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기르는 얼굴>),
“그사이 그림자 안으로 밝은 새가 어두운 새를 떨어뜨린다”(<그림자의 사람처럼>),
"그리고 하나를 골랐다. 눕고 있다. 어떤 것들은 변질된다. 어떤 것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떤 순간은 서서히 침윤되어 갑니다. 그늘은 두터워지고 있다."<<모습의 흐름>)
꿈(환영)과 현실을 나누는 우리의 체계를 이렇게 허문다면, 나와 너라는 경계는 종횡무진 시점과 시제 전환으로 허물고 있다. 서술어들을 주시해 볼 것.
“우리의 귀는 기둥의 양쪽 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기둥이 우리를 듣는다. 우리는 들리고 있다. 서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지닌다”(<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가자, 그러면 그는 곧 그녀를 볼 수 있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과 문의 중간쯤에 있었다. 거기서 소를 치고 있다, 여러 마리의 소를. 이 소는 참 예쁩니다. 그는 그녀의 소를 가리킨다. 웃는다. 한담을 주고받으면서 그것의 귀를 만진다. 만지고 있다. 제가 이 소를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 (<예식>)
“그녀는 좋다고 했다. 네게 했다. 너는 말을 한다.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웃어 보인다. 거울은 깨져 가고 있습니다. 너는 깨져 가는 것들을 보지 않는다.” (<모색하는 사람>)
“무사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원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책을 덮는다. 나는 쓰던 공책을 덮고 있다. 그는 낙엽을 도로 줍는다.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다른 곳에 풀어 놓을 겁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낙엽을 밟고 있었다.”(<원어>)
“우리는 이제 정상에 다다르고 있다.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니 기념으로 불러보자. 그러자 우리는 불렀다. 계속 부르는 것 같았다. 부르고 나니 메아리가 울린다. 그러고 나니 고요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짐승들이 자고 있을 것이다. 더 올라갈 겁니까. 나는 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동면>)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 1인칭에서 3인칭 시점, 가정법·평서법·의문법·청유법, 반말과 존댓말 등 모든 어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언어 과학자처럼. 실험이 사실의 지위를 획득하는 순간을 향해.
바야흐로 다른 시 세계가 오고 있다. 일기가 책이 된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이 읽거나 읽지 않는 사이 이 독특한 계절들은 계속 오고 가고 있다고 나는 말할 수밖에 없겠다.
“가을은 점점 공고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안개 속에서 너는 너를 더 잘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있었고 얼마 후 너는 사라진다. 그러나 언제부터 너는 사라졌나. 너는 사라진다. 사라짐으로써 유명해진다 … (중략) …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쓴다. 여름을 적지 않는다.”(<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
쉽게 읽혔는데 쉽지 않았다
해설까지 열심히 읽었는데
그래도 그랬다
*
2월은 자주 슬픔을 어겼다. 비가 내렸고 그 비는 풍경을 지키고 있었다. 너는 지나가고 있었다. 그 비처럼. 그것을 보면서 겨울을 변명하기는 쉬웠다. 내게 이마는 눕기 좋다고 했다. 2월은 비를 받고 있었고 그사이 너는 더 멀리 통과되고 있었다. 나무는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규제가 헐렸고 그 틈으로 새가 날았다. 젖고 있다. 너는 계속 걷고 있었다. 2월의 빗속으로, 그러나 비는 효력이 없었다. 그 비가 2월을 어겼다. 네가 그 비를 어기듯이 걸어갔다. 너는 민담처럼 훝어져 갔다.
... 생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생각하며 띄엄띄엄 살았다. 지금은 생략할 수 없어서 불행하다. 촘촘한 시간의 그물에 사로잡혔다. 이쪽의 시간에서 저쪽의 시간으로 수시로 넘어가고 돌아오는 호사는 잊은 지 오래다. 생략할 수 없으니 많은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의 온기도 사라졌다. 호호 불어가며 발갛게 익은 기억의 껍질 벗겨내던 용기도 한껏 줄어들었다.
“충혈된 밤으로 새가 / 번지고 그 위로 / 떨어지는 이파리 / 몰래 버려둔 횃불에서 / 미끄러져 나오는 해명들” - <확성의 밤> 중
목이 잘린 시체의 머리 부분과 나머지 부분 중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머리 부분...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든다. 성큼성큼 탁자 앞으로 나가 고개 숙인 책상들을 둘러본다. 나는 소리친다. 내가 힘껏 외치자 자판에 불이 들어오고 저장되어 있던 번호로 신호가 날아간다. 새들이 그 옆에서 함께 날아간다. 그렇게 밤하늘을 쉬지 않고 도착하는 곳은 머리 부분과 나머지 부분 중 결국 머리 부분일 테니까...
베네수엘라어
너는 외국어로 말한다 아무런 뜻처럼 나는 외국어로 대답하고 너는 풍겨 온다 나는 부분을 건너뛴다 노래하듯이 차양 밖으로 눈이 흩날린다 외국어처럼 너는 내게 어질러져 있다 혀를 품듯이 그러나 혀를 포기하고 말은 먼 방향으로 진행된다 눈처럼 흩어진다 외국어를 하듯이 무언가 이월되는 기분이 지속된다 나는 말을 할수록 그것을 잃어버리고 그러면 당신은 자주 고개를 끄덕입니다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지피자 눈이 녹아들었다
뭐랄까, ... 이런 느낌이라고 일단 적어 놓고 본다. 팻말은 세워졌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다. 끓고 있는 우유와도 같은 체념,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포착한 뒤의 어떤 눈빛이나 손짓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아무런 감상이 없다. 내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풍요로움 같은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끓고 있는 우유, 적당한 온기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파괴하지 않는 정도의 어떤 뜬금없음...
밤을 몰라보게 되어서
공들여 든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밤에는 털이 날리고
등 굽은 동물이 되어가고
회생한 얼굴을 보았지만
다만 보고 싶은 것은
꿈에 찔려서 도로 능으로 들어가는 얼굴이었고
털은 자란다
죽은 야경을 열어 환기를 하는 사이
얼굴에서는 몸이 드러나고
눈은 녹아 땅을 질게 하고
밤이 여읜 것
다만 밤이 여읜 것에 대해서
향을 피우고
잠든 동물의 얼굴이 되어 가고
밤을 몰라보게 되어서
결여된 맥락으로 가득한 밤이 지나가는 중이다. 딸랑딸랑 소리 들리기 전에, 차단기 올라가기 전에 부리나케 움직이려고 한다. 저기 나의 가장 아래 서랍에서 꺼낸, 오래된 기척이 잔뜩 서려 있는, 일종의 러플이라고 할 수도 있을법한 무언가가 펄럭인다. 기억이 거울처럼 연약하여 혹은 그저 거울에 비친 기억일 뿐이어서 간혹 왜곡되고 변형된다. 밤의 도로에서 기억은 거울이라는 보도석으로 구분된다, 이쪽과 저쪽으로...
감은 눈으로
꿈으로부터 내쳐진다. 감은 눈으로, 일부러 눈 뜨지 않고 걸으면 나와 함께 내쳐진 논이 있고 논 위로 걷는 내가 만져진다. 보이지 않는 눈앞에서 그러나 내가 만진 것들은 다 사라지고 사라진 것들은 내 손을 멈추게 하고 손은 어둠에 익숙해진다. 걷고 난 후의 일들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짚이 타고 있다. 눈 뜨면 꿈과 함께 내쳐졌다.
다리가 세 개인 의자, 아니 그러니까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네 개의 다리 중 하나가 사라져, 이제 다리가 세 개인 의자가 되어 버린 네 개의 다리였던 의자에 앉아 모든 걸 떠올린다. 인공의 감정, 안개 속의 섬처럼 허위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두 개의 팔과 다리로 겨우겨우 떠오르는 전투적인 영법... 아내는 오늘 꿈을 꾸었다는데, 아주 아주 높은 곳에서 아주 아주 어린 새끼 고양이를 떨어뜨리기 직전에 깨어났다고 한다.
안태운 / 감은 눈이 내 얼굴을 / 민음사 / 110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