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냄새 유형의 숫자는 너무나 적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 불필요한 점을 모두 없앤 분류법이 현실 세계의 복잡한 냄새를 다룰 수 있을까? 이미 인간의 두뇌는 이 복잡한 냄새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는 게 드러났다. 오스트레일리아 심리학자 데이비드 랭(David Laing)은 처음으로 이와 관련된 의문을 다루었다. 인간은 코 하나만으로 혼합물에서 얼마나 많은 냄새를 구별할 수 있을까? 그는 스피어민트, 아몬드, 정향처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시작했다. --- p.36
사실 마약 탐지견은 코카인 분자 자체가 아닌 메틸 벤조에이트 냄새로 코카인을 찾도록 훈련받는다. 다른 마약도 마찬가지다. 엑스터시는 피페로날의 체리 파이 냄새로 알 수 dLT고, 메스암페타민은 벤조알데히드의 독특한 체리 아몬드 냄새를 풍긴다. 사실 개는 마약과 관련된 냄새로 마약을 찾는 것이다. --- p.48
심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갑작스럽게 후각을 잃을 수 있다. 이는 식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후각 상실증에 걸리면 식사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입에 들어온 음식은 냄새를 맡지 못하면 잘 씹히지 않는 덩어리가 되어 풍미를 느낄 수 없다. 음료 역시 맛을 느낄 수 없다.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해 입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식사량 조절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먹는 양이 줄어들어 살아 빠지는 사람들도 있고, 배가 부를 때까지 양껏 먹어 살이 찌는 사람들도 있다. --- p.72
후각 병리 현상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모든 것에서 똥 냄새가 나는 악취 후각증이다. 필림 K.딕의 공상과학 소설《시뮬라크르》에는 염력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처드 콩그로시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에겐 정서불안장애도 있다. 콩그로시안은 짜증나는 광고를 볼 때 자신에게서 악취가 난다는 착각에 빠진다. 체취에 집착해 강박적으로 씻지만 아무 소용없다.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콩그로시안은 멀리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보다도 신체악취공포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더 유명한 등장인물이다. 이 질환의 특징은 계속해서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 p.74
최근에 밝혀진 증거는 후각과 관련된 노 조직의 크기와 세포 구조에 남녀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 해부학적 차이가 배리의 재치 있는 표현을 설명하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지각의 남녀차이(여성이 냄새를 더 강하고 불쾌하다고 평가한다는 사실)는 기본적인 뇌파 반응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성의 후각적 우위는 여성이 언어적으로 더 유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 능력은 냄새 기억과 냄새 인지 테스트 점수를 향상시킨다. 또 다른 요인은 호르몬이다. 여성의 후각 민감도는 월경 주기 동안 달라지고 배란기에 가장 높다. 호르몬의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이는 복잡하게 인지적 요인과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실험실에서 관찰된 것 중 가장 극적인 후각적 남녀 차이를 낳는다. --- p.75
사람들은 대개 내게 후각 능력에 대해 질문한다.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낫습니까? 조향사와 일반인 중에서는요? 흥미롭게도 이런 차이를 질문하기보다는 단정하는 이들도 있다. 와인 잔을 든 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맹인들의 후각은 엄청나게 높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니면 “헬렌 켈러의 코는 대단히 민감했습니다.”라며 굳게 믿는 이들도 있다.
헬렌 켈러는 1968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지금까지 시력을 잃으면 그 대신 뛰어난 후각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방사능에 노출되어 시력을 잃은 대신 그 밖의 모든 감각이 초인적으로 발달된 마블코믹스의 주인공 데어데블도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스스로 후각이 민감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 헬렌 켈러가 자신의 능력을 겸손하게 평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님이 후각으로 보상받는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게 이치에 맞는 듯하다. 하지만 그럴까? 이 의문을 다룬 실험적 증거는 수없이 많다. 지난 20년 동안에 걸쳐 이뤄진 여섯 번의 연구는 앞이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후각을 비교했다. 예외 없이, 맹인이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 pp.78~79
데버러 웰스L(Deborah Wells)와 피터 헤퍼(Peter Hepper)는 ‘개 냄새를 맡는 인간’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발견했다. 이들은 개 주인들에게 똑 같은 담요 두 장의 냄새를 맡도록 했다. 그 중 한 장은 그들의 개가 깔고 잔 이불이었고, 다른 한 장은 낯선 강아지가 깔고 잔 것이었다. 주인들은 89퍼센트 정확히 자신의 개 냄새를 구분했다. 냄새의 강도나 유쾌함 때문이 아니었다. 개와 무관한 집안 냄새 때문도 아니었다. 개 코의 ?라운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개의 능력만 강조할 뿐, 그 재주를 조종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 인간의 코가 동물과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면, 개만큼이나 확실하게 그 목표를 추적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무 하드 막대에 꽂았던 아이스크림 냄새를 맡기만 해도, 보통 사람들 역시 그 막대가 위스콘신 산인지, 메인, 브리티시콜롬비아, 중국 산인지 알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영장류인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파티에서 여러 손님들 가운데 한 손님이 자신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잠깐 만진 물건을 냄새로 식별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손 냄새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1977년의 연구는 손 냄새가 개개인마다 뚜렷하게 다르다는 점을 증명했다). 파이먼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더러운 빨래 더미에서 배우자나 애인이 입었던 티셔츠를 골라낼 수 있다. --- pp.84~86
1899년 와이오밍 대학교 강의실에서 화학과 교수 에드윈 E. 슬로손(Edwin E. Slosson)은 수업시간에 장난을 쳤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기를 통한 냄새의 확산을 증명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병 속의 액체를 솜뭉치에 붓고 그걸 과장되게 자기 코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그러고 나서 초시계를 누르고는 학생들에게 무슨 냄새를 맡으면 즉시 손을 들라고 했다. 이후 일어난 일을 그는 이렇게 보고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학생들 중 내가 부은 화학 물질 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냄새가 진하고 독특하긴 해도 그다지 불쾌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설명했다. 15초 후 앞줄에 앉아 있던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들었고, 40초 후 냄새는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강의실 뒤쪽까지 퍼졌다. 학생들 중 4분의 3이 냄새를 지각했다고 했고,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소수 학생들 중엔 남학생들이 더 많았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암시에 굴복했겠지만, 1분 후 나는 실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몇 명이 불쾌감을 느끼고 강의실에서 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슬로손의 실험은 후각적 암시의 효과를 증명했다. 그가 들고 있던 솜뭉치에 흡수됐던 물질은 평범한 물이었다. --- p.113
잔을 볼 수 있을 땐 와인에 대한 감정가의 기대가 바뀐다. 세 번째 연구에서 입술 닿는 부분이 점점 좁아지는 공 모양의 잔은 튤립 모양이나 입술 부분이 좁아지지 않는 공 모양의 잔보다 와인 향이 더 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감정가 개개인의 후각 민감도를 고려하자 이 효과는 사라졌다. 후각이 뛰어난 이들만이 잔 모양의 미묘한 영향을 식별할 수 있었다. 분명 이 같은 사실에 와인 전문가는 더 콧대를 세우겠지만,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연구진은 똑같은 와인을 여러 모양의 잔에 주었는데 대부분의 감정가는 2~3가지 와인을 마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후각보다 시각이 맛을 더 지배한다는 증거다. 와인 잔 선택은 전통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조향사들은 끝을 접어 V자 모양으로 뾰족하게 잘라 사용하는 시향지를 미국 조향사들이 선호하는 좁은 직사각형 시향지보다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면 향수가 더 정확하게 증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객관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후각의 세계에는 불합리한 믿음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 p.142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 덴 베르그는 피실험자에게 어떤 냄새가 나면 메스꺼움을 느끼는 조건 반사를 일으키게 했다. 놀랍게도, 단 한 번만 육체적 고통을 느껴도 그 냄새에 대한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13. 반 덴 베르그는 이 과정을‘증상 학습(Symptom Learning)’이라고 불렀는데, 생명체가 환경에 반응하는 기본 과정인 연상 학습과 비슷하다. 증상 학습은 유칼립투스처럼 유쾌하고 신선한 냄새보다는 암모니아와 낙산 같은 악취에 더 효과적이다. 학습된 혐오증의 또 다른 특징은 자극 일반화(Stimulus Generalization)다. 이것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한 냄새로 인해 불쾌한 감정을 받은 사람은 비슷한 냄새를 맡았을 때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 p.151
후각적 설득은 어디서나 일어난다. 환기구에 숨겨져 있거나 구석에 놓여 있는 향기 발생기는 가게 상품의 자연스러운 냄새를 과장할 수 있다. 최고급 셔츠 제조업자 토머스 핑크(Thomas Pink)는 갓 세탁한 리넨 냄새를 이용하는 반면, 타임스 광장에 있는 허쉬 판매점은 공기에 또 다른 초콜릿 냄새를 분사한다. … 10년 전, 사회 심리학자 로버트 배런(Robert Baron)은 뉴욕주 올버니 근처의 쇼핑몰을 살펴보면서, 냄새가 없는 구역뿐 아니라 미세스 필드 쿠키와 시나본 스토어, 커피 비쪳리 등 자연스럽게 유쾌한 냄새가 나는 곳을 정교하게 표시했다. 그런 다음 배런은 사람들을 보내어 쇼핑객들에게 접근해 ‘우연히’펜을 떨어뜨리거나 지폐를 잔돈으로 바꾸어달라고 시켰다. 그는 쇼핑객들의 단순한 반응을 기록했다. 쇼핑객들이 낯선 사람을 도와줄까, 도와주지 않을까? 펜을 집어주거나 잔돈으로 바꿔주는 등 남을 도와주는 행동은 냄새가 없는 지역보다는 좋은 냄새가 나는 지역에서 현저히 많이 일어났다. 배런의 실험은 실험실 밖의 자연스러운 소비자 생태계, 즉 쇼핑몰에서 냄새의 효과를 검사한 최초의 것이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쇼핑객들은 주변 향기에 크게 반응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익숙한 냄새는 그 자체만으로 주의를 끌지 못하겠지만, 그 냄새를 맡은 사람들의 행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 pp.215~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