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끔찍하게 아픈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여자는 소년의 와이프란다. 소년은 내게는 혼자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소년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속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기분도 나쁘지 않다. 우리 모두는 끔찍하게 아픈 세상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소년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소년이 하나도 밉지 않다. 비로소 그가 술에 취해서 떠들었던 ‘위대한 사랑’의 말듯을 알 것만 같다. B급 일러스트레이터일 뿐인 그가 언제나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았던 까닭도 이제 알 것만 같다. 그는 아픈 사랑을 보듬으면서, 희생자가 갖는 정신의 힘으로 오만하고 힘센 세속의 사랑에 맞서온 것이다. 그러니, 의심할 여지 없이 소년은 내 생애 최고의 연인이다.--- p. 43
휴머니즘이란 것……, 제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건데요. 휴머니즘의 정수는 바로 상대를 돕는 것이에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선수를 인류애로서 돕는 것, 그것이 야구가 가르치는 휴머니즘이죠.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저는 상대 팀 선수에게 이 휴머니즘을 실천하고 싶었어요. 과연, 야구는 제가 생각하는 휴머니즘을 전폭적으로 허용하는 인간적인 경기였지요. 그런데 경기 중에 어떻게 나누고 무얼 도울 수 있냐구요? 네, 그건 간단해요. 제가 누굽니까, 퍼스트베이스맨 아닙니까? --- pp. 67-68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날마다 질문을 하고 있다. 질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운 기쁨을 안긴다. 나는 묻는다. 이 삶이 가소로운가 아니면 무거운가, 달콤한 것인가 아니면 쓴 것인가, 내가 배운 언어는 아름다웠는가 아니면 추했는가? 나는 무엇을 사랑했고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았는가, 그전에 나 자신을 사랑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인가? 나의 조국, 나의 고향, 나의 기원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p.103-104
언젠가 누가 내게 물었죠, 왜 당신은 비극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어요. 비극이 희극을 압도하니까요. 권태는 비극의 전경 같은 것이다. 권태에 대한 나의 집착은 아마도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열세 살이란 나이는, 고대 왕조의 왕자라면 왕좌에 오를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맞벌이 나가는 가난한 부부의 아들이라면 일직 자위행위를 터득하는 나이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런데 그때 권태를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 이어질 내 삶이 빌어먹을, 권태에 바쳐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p. 113
사마리아 모텔 666호가 보통의 모텔 방과 다른 것은 또 있어요. 그것은 바로 냉장고예요. 666호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냉장고가 서 있어요. 냉장고의 문은 마치 커다란 성의 정문만큼이나 웅장하죠. 그 문은 사람 두세 명이 한꺼번에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크죠. 냉장고 안을 돌아다니는 데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돼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부모님을 상상하거나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 랑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부패하거나 썩어나가는 것들에 저항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랑은 커다란 냉장고가 필요했죠. --- pp. 158-159
사실 내가 꿈꾸는 것은 창백한 유전자를 적출해내서 비눗방울처럼 날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나는 성실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니, 음탕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고 내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스무 살 때 군대에서 야간 보초를 서면서 문득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면 나는 무척 외롭고 슬펐다. --- p.174-175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내 영혼은 맹렬해졌다. 좋게 얘기하면 그 질문의 형태로 열망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내 삶을 각별한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이 언어유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풀게 되는, 거기에 대담을 하게 되는 어떤 사건과 극적으로 마주쳤다. 그 힌트는 역시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 pp.211-212
당신들의 오래된 서랍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서랍 속에도, 시간의 결을 쓰다듬으면서 내려앉은 먼지가 쌓인 몇 장의 흑백사진과 편지와 비망록 따위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빛이 바랬을 정도로 낡고 오래된 것이지만, 아직도 푸른 인화액 속에 잠긴 채 출렁거리는 듯 현실 속의 나에게 실감 있는 감상을 던지곤 한다. 나는 이 감상에 잠기는 시간을 다크블루의 시간이라고 표현하겠다. --- p. 227
돌아오는 길은 그중 술을 덜 먹은 내가 운전을 했고 한동안 말없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윤섭과 재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잠을 자기 시작하자 나도 갑자기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공동묘지 터의 작은 물줄기를 타고 떠내려오던 백골들을 생각했다. 그 백골들은 흘러흘러 어디까지 갔을까. 어디를 가고 싶어궼 물길에 제 흉한 몰골을 실었을까. 말없이 떠나온 아내를 찾아가는 길이었을까. 늙으신 홀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길이었을까. 아직 나어린 딸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은 것이었을까. --- p.285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일주일 동안의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주말 저녁, 내 작은 방에서 씌어졌다. 정기적인 노동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자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욕망을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노동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나 자신을 끔찍하게 부정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백치가 되었을 것이다. 노동은 그러므로 내게 썩 유효한 항우울제 처방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소설 쓰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의 수동적 욕망과 휴식의 능동적 욕망이 서로 마찰을 일으킬 때 내 안에서 피어나는 몽상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숙취로 쓰린 배를 움켜쥐고 지하철역의 계단을 내려갈 때, 다시 말해 하루치의 양식을 얻기 위해 반드시 감내해야만 하는 모독을 생각하며 지레 겁을 먹고 인상을 찌푸릴 때, 불현듯 귓가에 들려오는 세이렌의 목소리 같은 것이다. 나는 그 목소리의 음계를 머릿속에 잘 저장해뒀다가 모니터 위에 풀어내는 것뿐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쓰는 동안 나는 줄곧 ‘사태’라는 개념에 골몰해 있었다. 나는 사태를 사건이나 상황 따위와는 다른, 좀더 본질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개념을 가진 어떤 ‘문제적’ 정황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본새를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사태는 시간의 부식성에 저항하고자 하는 모든 욕망의 진화하는 풍경이다. 그러므로 사태는 종료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개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제는 해소되거나 말소되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 증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하룻밤 잠을 자본 이라면 알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눈앞의 세계가 바뀌어 있다는 것. 산처럼 높은 사구가 바람에 의해 하룻밤 사이 뭉개져 있는 비현실 같은 현실 세계. 사구가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는 이와 같은 사태는 비현실 같은 현실 세계의 지위를 갖고 인간의 의식에 침투하는 것이다. 내 소설 쓰기는 그것의 엄밀한 보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다름 아닌 ‘사태의 꽈리’ 같은 것일 테니까.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그것은 나의 오랜 희망에 관한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나의 희망은, 당신이 모르는 최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내가 아닌, 나일 수 없는 모든 타자를 의미한다. 당신이 아는, 혹은 당신에게 들켜버린 나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당신이 아는 나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재미없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당신이 나를 모를 때, 나는 그런 나에게서만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나를 알지 못할 때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 진실해질 수 있다. 다시, 나에게 소설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당신 앞에서 당신이 알아볼 수 없도록 끊임없이 나를 색칠하고 지우는 작업이라고 대답하겠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소설책을 내게 되어 참 기쁘다. 요즘도 촌스럽게 이런 소회를 밝히는 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문지’는 내 문학적 열망의 압도적인 아이콘이었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분들께 빚을 지면서 살고 있지만 우찬제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흠이 많은 소설들을 너그럽게 봐주시고 책으로 묶일 수 있게 도와주셨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어지럽고 난삽한 소설에 해설을 붙여주신 오생근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더욱 거짓 없는 치열한 소설 쓰기로 두 분 선생님께 보답하고 싶다. 문우이자 사랑하는 나의 동반 K에게도 각별한 인사를 전하고 싶고,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문지 편집부에게도 우정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고향에 계신 나의 어머님, 그리고 대전의 부모님께도 고마움의 절을 올린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