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쟁이가 아편쟁이를 낳고 그 아편쟁이가 또 아편쟁이를 낳진 않소. 제 자식에게 아편을 먹이는 부모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긴 하오. 내 아피 최갑동은 아편쟁이였소. --- p.18
인천으로 가기로 했소. 왜 인천이었을까? 조선 팔도에 고을이 수백 군데지만, 나는 부산에서 익힌 삶의 기술을 써먹을 곳을 바랐소. 개항장으로 쏟아진 새 세상의 맛을 이미 본 게요. 농사를 지으며 땅만 보고 살기엔 세상도 내 마음도 너무 바뀌었소. 그래서 돈이 있고 기회가 있는 개항장을 택했소. --- p.28
조계는 인천에 존재하는 독립된 이국(異國)들의 전시장이었다고나 할까. 제물포항과 인천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인천에 자리 잡은 조계가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오. 그중 가장 넓고 사람이 많았던 곳이 청국 조계와 일본 조계였소. 두 나라가 조선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기도 했지만, 또한 그 두 나라가 망해 가던 조선을 서로 먹겠다며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놓고 으르렁거렸다오. --- p.61
1891년부터 1904년까지, 13년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하오. 한 인간에게 13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오. 더구나 가장 왕성하게 삶을 개척할 20대와 30대의 13년은 무척 특별한 게요. 또한 그 13년은 그냥 13년이 아니오. 조선이 믿기 힘들 정도로 망하고 일본이 믿기 힘들 정도로 성하는 시기였소. 나라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소.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거요. --- p.143~144
이즈음 아편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자청방이 아편을 풀면 중간 판매상들이 구입하여 유통시켰다. 중간 판매상 대부분이 조선인이었기에,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아편이 전달되었다. ‘천락원’을 비롯한 아편굴과 매음굴의 기생들은 물론이고 은행 거리에 늘어선 은행의 번듯한 은행원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의 학생들, 하다못해 아편을 단속하는 인천 감리서 순검들까지 아편에 손을 댔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 곁방에서 아편을 피우다 쓰러져 죽은 여인도 있었다. 그 곁에는 갓난아기가 울고 있었다. 자청방을 통해 인천으로 들어오는 아편의 양은 급속히 늘었지만,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 들어가듯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소리도 형체도 없는 아편 연기만 인천 하늘로 흩어졌다. ‘천락원’만으로는 늘어나는 손님을 모두 받지 못할 정도였다. 왕지충은 아편굴 하나를 더 만들기로 하고 그 이 름을 ‘지락원(地樂園)’이라고 정했다.
『아편전쟁』을 집어든 당신은 행운아다. 우리의 근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두 인간의 삶을 지켜볼 특별한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청나라는 아편에 찌들어 망국의 길을 갔다. 황해 건너 인천 조계로 스며든 매혹적이면서 치명적인 연기 속에서, 기회를 얻은 자 누구이고 절망에 빠진 자 누구일까. 원탁은 근대인의 어두운 탄생을 누아르에 담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개화기를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아편전쟁』은 완전히 새롭고 놀랍도록 강하다. 특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고백은 너무 뜨거워 내 혀와 눈과 귀가 동시에 타오르는 듯했다. 원탁의 소설이 출간과 함께 속속 영화화되는 이유를 알겠다. - 장원석 (영화 「끝까지 간다」 「의형제」 「최종병기 활」 제작자)
원탁의 세 번째 무블 『아편전쟁』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문학성과 영화적 기획력이 돋보이는 인간 활극이다. 중세와 근대가 부딪치고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이 작품은, 숨 막히는 스릴러면서 우정과 사랑의 드라마인 동시에 지금껏 보지 못한 한국형 누아르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운명을 낱낱이 드러내면서도 그 시대가 안고 있던 사회적 병폐를 놓치지 않고 고발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아편전쟁」에 거는 기대 또한 무척 크다. 김도수 (쇼박스 한국영화 제작투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