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천히 검지를 뻗어 그녀의 살결을 쓰다듬었다. 노란 손가락. 손바닥을 펼쳐 앞뒤로 쓸었다. 엄지와 검지로 피부를 꼬집어서 들어올렸다. 손을 놓고 다시 피부가 평평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벌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 좋아.’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물담배 피우는 애벌레가 말했나, 팔뚝의 벌레 문신이 말했나.
희미한 진동음이 들렸고, 그는 시계를 보았다. 다시, 어딘가에서 웅.
그는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어딘가에서 배낭을 끌어당기더니 그 안에서 약이 들어 있는 피하주사를 꺼냈다. 이번에는 팔의 핏줄에 주사를 다시 놓았다. --- p.18
시계공은 라임이 만난 범죄자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간이었다. 신원을 계속 옮겨 다녔던 리처드 로건은 1차적으로 전문살인범이었지만, 테러공격에서부터 절도에 이르기까지 온갖 범죄를 조율했다. 어마어마한 청부 수수료를 지불하는 고객이라면 누구를 위해서든 일했다, 물론 일이 충분히 도전적이라면. 라임이 자문 법과학자로서 사건을 맡을지 말지 결정하는 요건과 동일했다.
시계공은 라임을 앞질러 생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범죄자 중 한 명이었다. 결국 함정을 파서 로건을 교도소에 넣기는 했지만, 성공한 여러 음모를 막지 못한 것이 아직도 라임의 자존심을 긁었다. 실패했을 때도, 때로 시계공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 라임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 수사관 살인 음모를 저지했을 때, 로건은 그래도 국제적인 분쟁을 일으켰다(사건기록은 봉하고 없었던 것으로 하는 데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 시계공은 세상에 없다. --- p.27
라임은 메리츠 휠체어를 클로이 무어 소호 살인사건 관련 증거물이 놓인 작업대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작업대 위의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색스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이미지가 고해상도 화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죽은 여자의 얼굴과 부글거리는 타액, 일그러진 미소, 토사물, 커다랗게 열려 번들거리는 눈을 관찰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반영하는 표정이었다. 독미나리에서 추출한 치명적인 독은 강력한 경련과 극심한 위장 통증을 유발했을 것이다.
왜 독이었을까? 라임은 다시 생각했다. 왜 독을 주입하는 데 문신기계를 이용했을까?
“젠장.” 색스는 자기 작업대에서 상체를 세우며 중얼거렸다. --- p.111
자연스럽게 ‘사랑스러운 소녀’가 떠올랐다. 빌리는 잠시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 순백의 피부를 그려보다가, 떠나간 연인의 소중한 사진을 밀어놓듯 정신을 분산시키는 영상을 머릿속에서 거두었다. 조심스럽게, 액자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사랑이 망가질 것 같은 근거 없는 두려움을 안고. 그는 페이지를 넘기며 앞으로 할 일을 검토했다. 다시 공책을 밀어놓고 ‘수정’은 정말 복잡하다는 상념에 잠겼다. 그 과정의 여러 지점에서 과하게 까다롭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날 오전 도서관에서 훔친 ‘연쇄 도시들’의 페이지를 떠올리며, 거기서 알게 된 놀라운 ? 아니, 충격적인 ? 정보들을 되새겼다.
링컨 라임의 가장 큰 재주는 범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이 될 것인지 예측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법집행기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인용문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클로이 무어가 유감스럽게도 책의 그 문장을 찢어버렸기 때문에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 p.147
빌리는 생각했다. 그가 그 시점에 다시 병원에 간다는 사실을 경찰이 미리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색스는 그저 인상착의에 부합하는 남자를 보았는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러 갔을 것이다.
상념이 다시 아멜리아 색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어떤 면에서 사랑스러운 소녀를 연상시켰다. 아름다운 얼굴, 머리카락, 예리하고 단호한 눈빛. 어떤 여자는 논리로 조종해야 하고, 어떤 여자는 압도해서 조종해야 한다. 그러나 조종할 수 없는 여자도 있다. 그게 문제다.
흰 피부를 떠올렸다. 협죽도의 방….
그는 아멜리아가 그 방 소파에, 긴 의자에, 2인용 연인 의자에 누워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그녀의 피부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고, 그 피를 맛보았다. 냄새를 맡았다.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