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엔 안개 수심, 난초엔 이슬 눈물. / 싸늘한 비단 장막, / 다정히 날아가는 제비. / 밝은 달님 이별의 고통 알지 못해 / 기운 달빛, 새벽까지 비단 창을 비춘다.
어젯밤 가을바람에 푸르던 나뭇잎 시들었지요. / 홀로 높다란 누대에 올라 / 하늘 끝 저 먼 길 뚫어지게 바라보았지요. / 예쁜 종이, 하얀 비단 위에 그리운 맘 적어 보내고 싶지만 / 첩첩 산, 아득한 강물, 님 계신 곳 어디일까? -蝶戀花, 안수晏殊
높다란 누대는 기다림의 이미지를 수반합니다. 거기서 하염없이 먼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대는 사랑의 망루, 사랑에 대한 집착이 찾는 곳. 그런데 이 작품의 화자는 다른 주인공과는 달리 편지 보내기를 상기합니다. 연서. 그러나 아뿔사, 그의 주소를 모릅니다. 이제 왜 “하늘 끝 저 먼 길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또 “첩첩 산, 아득한 강물, 님 계신 곳 어디일까?”에 배어 있는 낙망의 크기도……. --- 본문 중에서
밝은 저 달님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 술잔 들고 저 푸른 하늘에게 물어본다. 하늘 세상 궁궐은 / 오늘 저녁 어느 해일까? / 바람 타고 하늘 궁궐 돌아가고 싶지만 / 아름다운 옥 누각, / 저 높은 곳 추울까 두려워라. / 춤추며 맑은 그림자 너울거리니, / 어찌 이 세상에 사는 것만 하랴.
붉은 누각 돌고 돌아 / 아름다운 창가에 다가와 / 잠 못 이루는 사람 비춘다. / 달님은 나하고 원한이 없으련만 / 어이하여 언제나 헤어져 있을 때 둥근 걸까? / 인간에게는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이 있고 / 달에게는 맑고 흐리고 둥글고 이지러질 때가 있으니, / 인생이란 자고로 좋은 일만 있기 어려운 법. / 다만 우리 모두 오래오래 살아서 / 천리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저 달님 구경할 수 있기를. -水調歌頭, 소식蘇軾
추석이 되면 중국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있습니다. 중추절을 축하하는 카드에도 이 구절이 가장 많이 적혀 있죠. 그게 과연 무엇일까요? 네, 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소개하려는 소식의 「수조가두水調歌頭」의 마지막 구절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단원인장구, 천리공선연)”입니다. “다만 우리 모두 오래오래 살아서 / 천리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저 달님 구경할 수 있기를.” 추석날 밤, 홀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서글픈 심사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우 자유子由에 대한 그리움을 그 특유의 낙천적이고도 긍정적인 사고로 달래고 있는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사뿐사뿐 걷는 그녀, 횡당 길 지나지 아니하니 / 눈으로만 전송한다, / 아름다운 그녀 떠나가는 모습을. / 아름다운 청춘을 그 누구와 함께할까? / 달빛에 잠긴 다리, 꽃 화원에 있을까, 꽃 조각 아로새긴 창가에 있을까, 화려한 붉은 대문 안에 있을까? / 봄만이 그녀 있는 곳 알고 있으리.
나는 듯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두형풀 언덕에 어둠이 내리니 / 아름다운 붓으로 단장의 시구 새로 지었다. / 묻노니 까닭 모를 시름은 얼마나 될까? / 시냇가에 가득 자란 안개 속 봄풀, / 온 성 안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 / 매실이 노랗게 익어 갈 때 내리는 장맛비. -靑玉案, 하주賀鑄
중국말로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장마를 왜 그렇게 부를까요? 매梅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매화나무입니다. 매화꽃이 지고 나면 파란 매실이 열리지요? 그런데 그 매실이 누렇게 익을 때쯤이면 비가 부슬부슬 열흘이고 한 달이고 계속해서 내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마를 ‘매우’라고 하는 겁니다. 그 출처가 바로 하주가 지은 이 노래 「청옥안」이랍니다. 냇가에 가득 서린 안개처럼 그도 슬픔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져 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는 슬픔으로 인해 번민스럽고 심란한 마음의 상태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장맛비는 끝없이 지속되는 슬픔을 나타냅니다. 추상적인 시름을 이처럼 형상적인 이미지로 실감 나게 그려 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노래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연꽃 향기 스러지자 고운 대자리에 가을이 왔어요. / 살며시 비단 치마 벗고 / 홀로 목련 배에 올랐어요. / 누가 저 구름 속에서 사랑의 편지 전해 줄까요? / 기러기 떼 돌아가고 나니 / 서루엔 달빛만 가득하군요.
꽃은 절로 떨어지고 물도 절로 흘러가니 / 한 가지 그리움으로 / 두 곳에서 뜻 모를 시름에 잠겨 있네요. / 그리운 이 마음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어요. / 가까스로 미간 아래로 내려갔나 했더니 / 또다시 마음 위로 올라오네요. 一剪梅_이청조李淸照
才下眉頭, 却上心頭(재하미두, 각상심두)’, 여성의 섬세한 감각이 아니고선 도저히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없는 겁니다. 미간과 마뷀속을 오가는 시름…… 찌푸렸던 미간을 펴자마자 다시 그 시름이 마음속으로부터 밀려온다는 건 시름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지요. 이 사는 신혼 시절 변경(?京, 북송 시기 서울)으로 유학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사랍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