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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황홀

눈의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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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12g | 125*192*20mm
ISBN13 9788932029764
ISBN10 8932029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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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건물로 이주할 자격을 얻으려면 뼈 빠지게 불을 질러야 한다. 하루라도 쉬면 밀린다. 있는 것을 얼마나 태워야 새것을 얻을 수 있나. 그저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줄을 잘 서야 한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것을 갖게 될 것이다.---「네로의 詩」중에서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억새만 나부끼고 아무도 없다. 순식간에 깃발도 사라져버렸다. 여기부터가 진짜라고 했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아우성치는 벌판은 위기감 없는 전쟁터와 비슷했다. 여자는 방향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다 슬슬 초조해졌다. 숨이 턱에 찼다. 대체 밥은 언제 먹으려고 이렇게 진을 빼나. 어쩌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단지 밀린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그림을 받고 싶었는데. 여자는 숨이 턱에 차 헐떡거리며 비탈을 올랐다. 지금쯤 회사의 동료들은 오전 회의를 마쳤을 것이다. 석 달 전에 대리가 되었으므로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 그림, 선생의 그림을 포기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선생의 얼굴을 보면 그림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전임자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포기하게 된 걸까. 대체 무슨 주술을 걸었기에. 길은 몹시 가팔랐다.---「하양」중에서

담장 안에 안주하지 말라는 지적은 창피했다. 주섬주섬 구차한 변명을 했던 것 같다. 납득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말했던가. 그런데 담당자의 격려를 받자, 기다렸다는 듯 내 안에서 요동치던 어떤 이미지가, 마치 아나콘다처럼 힘차게 공중으로 힘차게 솟구쳤다. 새 떼처럼 우르르 날아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내 안의 오욕칠정이 빠져나갈 통로를 찾은 건가. 나도 날고는 싶다만…… 내가 겁을 먹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숲의 고요」중에서

그이는 놀란 얼굴로 실을 계속 뽑아냈지. 이거 성가시게 왜 이러지? 목이 막혀 죽을 지경이야! 퉤, 퉤, 퉤. 그이는 틈틈이 실 뭉치를 뱉어냈어. 밥알과 침이 섞인 실 뭉치가 휴지통에 들어 있었잖아. 네가 방학이라고 큰집에 가 있는 동안 그이는 온종일 우물거렸지. 내가 퇴근해서 돌아와 보면 집은 컴컴하고 그이는 벽장에 숨어 있었단다. 밥 먹었느냐고 물어도 대꾸 한 번 없었지. 그이는 나를 믿지 않았어. 이제 그만 털어놓으라고, 햇볕 가운데로 나가자고 설득했더니 나를 그 사람들 편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이는 아무도 믿지 않았어.---「실꾸리」중에서

아니아니 우리 모두 빨간 구두를 신은 거야. 죽을 때까지 빙글빙글 춤춰야 해. 멈출 수 없어. 춤추고 싶은 욕망과 멈추고 싶은 소망을 한데 버무려 그대로 가는 거야. 구두를 벗어 던지고 내 맘대로 춤추면 안 되나요? 이렇게 묻고 싶은 적이 많아. 멈추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구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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