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술·다찌·실비』
한 상 위에 펼쳐진 융합의 바다
-술은 팔되, 음식을 나눠라
남해군 남해읍 남해전통시장 뒷길의 ‘남면집’. 40세부터 38년간 여기서 하루 한 말씩 막걸리를 빚어 팔고 있는 김선이 씨는 아직 건강하다. 장이 선 오전 나절부터 문을 연 가게는 북적이진 않으나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장 본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적시고 서둘러 떠난다.
안주랄 게 없다. 무와 열무김치가 전부다. ‘탁배기’ 한 잔만 내어주기 미안해 주는 것이니 안줏값도 없다. 이처럼 우리 농경사회의 전통은 술은 사고팔되 음식은 거래하는 것이 아니었다.
길손을 맞아 밥을 먹이는 일은 의무에 가까웠다. 없는 세간에 자기 밥을 내어 주며 ‘차린 것 없어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익숙하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54) 씨는 이것이 우리 술 문화의 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술은 팔되 밥(음식)은 나눠 먹는 것. 그 원형을 간직한 곳이 바로 경남의 통술·다찌·실비다. --- pp.43~44
『예향 통영』
통영의 예술 유전자
-무속신앙, 통제영 문화, 그리고 바다가 내준 풍요와 감성
예향(藝鄕)….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고 예술 즐기는 사람이 많은 고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시인 유치환·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통영에서 태어난 예술인이다. 화가 이중섭, 시인 백석 같은 이도 통영의 숨결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인구 대비 유명 예술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라는 말에 대해 굳이 기준·통계를 따질 필요도 없는 분위기다.
여기 사람들은 ‘예향 통영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바다 낀 고장이 그렇듯 이곳 역시 일찍부터 무속이 흥했다. 집단으로 풍어제를 지내기도 하고, 노모 홀로 바다에 나가 아들 목숨을 빌었다. 무속은 곧 음악·춤·글이 섞인 종합예술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이 ‘남해안별신굿’과 같은 자산으로 이어졌다. --- pp.100~101
『3·15 마산의거』
56년 전 역사가 남긴 의미
-마산, 민중항쟁 불씨를 댕기다
#1960년 5월 29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다. 한 달 전인 4월 26일 오후 1시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한다고 발표했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종신대통령이 될 기반을 마련하고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려던 그를 끝내 몰아낸 것은 4·19혁명이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마산의료원 입구 한쪽에 아담한 비석이 있다. 4·19혁명기념사업회가 혁명 50주년을 기념해 2011년 세운 ‘4·19 혁명의 진원지’ 표지다.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60년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이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항쟁이 전개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의로운 마산시민의 투쟁정신은 곧 4·19혁명 승리의 시발점이 되었다.’ --- pp.185
『경남의 섬』
섬 아우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서해·동해엔 없는 푸른 섬들의 향연
이야기를 통영시 미륵산에서 시작할까 한다. 미륵산을 올랐다. 그 유명한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등산길을 걸어서 갔다. 먼바다에서 일본으로 다가오는 태풍 탓에 바람이 많이 불어 케이블카는 움직이지 못했다. 힘겹게 올라서 그런지 미륵산 정상에서 만난 바다는 유달리 탁 트인 듯했다. 바다에는 여기저기 섬들이 둥둥 떠 있었다. 왼쪽부터 오곡도, 국도, 연대도, 연화도, 우도, 만지도, 초도, 쑥섬, 욕지도, 하노대도, 상노대도, 곤리도, 두미도, 추도, 소장군도, 사량도, 오비도, 이끼섬, 밀도 등 미륵산 정상에서는 통영 지역 웬만한 섬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저 섬들이 바로 한려수도(閑麗水道)다. 이는 통영 한산도에서 사천, 남해를 지나 여수 오동도에 이르는 바다를 아우르는 말이다. 통영은 이 한려수도의 중심이다.
‘통영은 예향이고 맛의 고향인 동시에 섬 왕국이기도 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통영 바다의 물빛은 청보석처럼 푸르다. 그 푸른 물빛으로 인해 통영 섬들 또한 청보석처럼 빛난다. 통영의 섬들은 그 빼어난 풍광만큼이나 걷기 좋은 트레일도 많다. 대부분 한 시간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 통영 섬들은 내륙과의 교통도 편리하다.’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강제윤, 호미, 2013)
--- pp.383~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