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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도 병인 양하여

다정도 병인 양하여

: 옛가락 이젯가락

리뷰 총점8.0 리뷰 1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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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668g | 142*215*30mm
ISBN13 9788934934899
ISBN10 893493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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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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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도 병인 양하여 _ 이조년 외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신위申緯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한역했다.

梨花月白五更天 啼血聲聲怨杜鵑
?覺多情原是病 不關人事不成眠

배꽃에 달이 밝은 이 깊은 아닌 밤에
피로 우는 소리소리 원한의 두견이여!
다정이 병이랴마는, 잠들 수가 없구나!

두견이 곧 두견새[杜鵑-]는, 두우杜宇, 자규子規, 촉조蜀鳥, 촉혼蜀魂, 시조時鳥, 접동새, 소쩍새 등으로 불리는 철새다. 철새라, 봄·여름이 제 철이요, 밤에 우는 새라, 달밤이 제격이다. 한 호흡 간격으로 뇌고 뇌는, 그 단조로운 두 음절의, -밤을 꿰뚫는 듯, 청 높은 소리[高調音]! 미분화음未分化音이라, 듣기에 따라 ‘촉도蜀道…… 촉도……’ 하는가 하면, ‘솟적…… 솟적……’으로, 또 어찌 들으면 ‘접동…… 접동……’, 그런가 하면 원한에 사무친 사람들에게는, (어찌 그리도 야속하냐는 듯) ‘어쩜?…… 어쩜?……’으로, 들리기도 하여, 듣기 나름으로 전설도 갖가지다. 그러나 그 본래의 전설은, ‘촉蜀나라에서 쫓겨난, 망제望帝(이름 杜宇)의 혼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한에 사무친 울음이라 한다.
울다 울다 가끔 ‘게객’ 하는 엇박자가 섞이는 것은, 그 바로 피를 토하는 소리라 하고, 그 피로 목을 축여, 다시 또 운다는 두견이! 그 피로 물든 꽃이 두견화杜鵑花, 곧 ‘진달래’라고도 한다.

공산이 적막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아!
촉국蜀國 흥망興亡이 어제오늘 아니거늘,
지금히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나니? (정충신)

옛 촉나라가 망한 지야 이미 수천 년도 전의, 한갓 전설 시대의 일이거늘, 그때 그 한을 이날토록 피나게 울어, 이 밤의 수많은 수인愁人들로 하여금 창자를 끊게 하고 있는 것이랴!
허균許筠은 두견이 소리의 고저高低마저 사음寫音하였으니;

피 흐르는 몸을 뒤쳐 나무 나무 옮다니며
‘촉’은 높고 ‘도’는 낮게 돌아감만 못 하다고
밤 내내 촉´도, 촉´도 애타게도 울어라!

‘앞소리는 높고, 뒷소리는 낮은 소리로 ‘촉´도…… 촉´도……’를 애타게 되뇌는 소리라 했다. 어느 방향인지도 가늠이 잘 안 되는, 어느 먼먼 산에서, 귀를 뚫는 듯, 송곳같이 날카로운 높은 소리에 이어, 끝소리는 귓전에 와 부리는 듯, 낮고도 가까운 그 소리다.
두견이 우는 밤엔 딴 새들은 감히 나서지를 못하는 듯, 깊으나 깊은 밤, 오직 그 소리만이 한밤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호응하는 소리가 있음 직도 하건마는 그것이 없다. 철저하게도 혼자인 새! 그 속속들이 정한에 사무친 소리! 귀청으로 파고드는 높은 목청의 속 소리! 그 마디마디 단절되면서도 같은 간격으로 이어가는 애끊는 소리! 자고로 그 소리, 얼마나 많은 수인愁人들의 잠을 앗고, 눈물을 앗고, 애를 마르게 하였던고?
‘수인愁人’이란 가슴속에 ‘그리움’을 품고 있는 사람을 이름이다. 인생을 사노라면, 생별生別이든 사별死別이든 이별 겪지 않은 이 뉘 있으리? 이별 겪은 이의 가슴 가슴에 어느덧 자리 잡아 도사리고 있는 그 ‘그리움!’

꿈에나 임을 보려 잠을 청해 누웠으나,
새벽달 지새도록 자규 소리 어이하리?
두어라! 단장춘심斷腸春心(임 그리운 애끊는 마음)은 너나 나나 다르랴? (호석균)

아내 여읜, 또는 남편 여읜, 애틋한 불면의 밤이다.

꿈에나 임을 보려 잠을 청해 누웠은들
두견이 저 소리에 잠이 와야 꿈을 꾸지?
애끊는 그리움이야 너나 나나 다르랴?

그러나 또 보라!

꽃이야 지나 마나, 접동이 우나 마나
전전의 그리는 임 다시 만나 보게 되면
저 지고, 저 우는 것을, 슬퍼할 줄 있으랴? (실명씨)

두견이 소리에 내가 울게 됨은, 두견이 슬픔에 동정해서가 아니라, 내 가슴에 맺혀 있는 ‘이별의 한恨’ 때문이란 것이다. 아니라도 자칫 울먹거리던 나의 서러움이, 두견이 울음에 촉발觸發되었기 때문이란 것을, 예시例示까지 해보이고 있다. 내게 이별의 슬픔이 없거나 해소된 바에서야 ,‘꽃이야 지든 말든, 두견이야 울든 말든’, 내가 덩달아 울 까닭이 있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 아니랴?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숙종 때 사람 이유는;

자규야! 울지 마라. 울어도 속절없다.
울거든 너만 울지 남은 어이 울리느냐?
아마도 네 소리 들을 제면 가슴 아파하노라.

너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이 밤을 앓고 있음이랴? 세월이 약이어서 이제야 가까스로 잊혀져가려는, 옛 아픈 기억들을, 새삼 샅샅이 들추어내어 가슴 아프게 하고 있는, 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뇨?
「울며 잡은 소매 떨치고 가지 마소」의 작자인 이명한도;

서산에 해가 지니 천지에 가이없다.
쳀화에 달 밝으니 임 생각이 새로워라!
두견아 너는 누를 그려 밤새도록 우느니?

고종 때 가객歌客 박효관도;

이화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짖느냐?
너도 날과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 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그 그리움 여북했으면;

그려(그리워하며) 살지 말고 차라리 죽어져서
월명月明 공산空山에 두견이 넋이 되어
밤중만 ‘사라져 울어’ 임의 귀에 들리리라! (실명씨)

임 그리워 이러구러 애달프게 살아 무엇 하랴? 차라리 죽어져서 두견이 넋이 되어, 배꽃 흐드러진 속가지에 싸여 있다가, 한밤중이면 애타게 울다 울다 기진맥진하여 우는 소리도 ‘사그라지게 우는’, 그런 울음에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슬픔에 젖곤 하는 나와 같이, 임의 귀에도 그렇게 들리게 함으로써, -‘그리움’이란 그 어떤 것인가를, 그에게도 몸소 아파 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니, 그 얼마나 극한의 정한情恨이랴?
영월에 유배되어 있던, 16세의 소년 단종端宗도;

소리(두견이 소리) 멎은 새벽 산에 잔월殘月(지새는 달)은 흰데,
피로 흐르는 봄 골짝의 붉은 낙화여!

밤 내내 울다 지친 듯, 두견이 소리도 끊어지고, 핏기 없는 지새는 달빛만이 해사하게 비쳐 있는 새벽, 두견이 핏자국으로 붉게 물들었다는 진달래·철쭉의 낙화가, 한 골짝 가득 개울물에 실려 붉게 흐르고 있는 정경에 눈물짓곤 하던 그도, 어느 달밤 자규루子規樓에 올라서는, 두견이 소리에 마디마디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슬픔을 세인에 하소연했다.

자규 우는 달 밝은 밤, 시름겨워 누樓에 서니, 네 울음 아니런들 이다지도 애 끊일까?
여보소! 이 세상 한 많은 이들이여!
춘삼월 두견이 우는, 달 밝은 다락엘랑, 오르지를 마시라! (사설시조)

정도 많고 한도 많은, 이 땅에 살다 간, 무수한 그 옛사람들! 저 두견이 울음으로 하여, 그 얼마나 많은 밤을 잠 이루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인생을 고뇌하여, 여위디여윈 몸이, 진정 정情으로 -순정으로 살다 간 고인들! 그 뇌고 뇌는 슬픈 가락에 세뇌洗腦된 듯, 그로 하여 눈뜨게 된 순정미純情美, 수척미瘦瘠美, 애련미哀憐美, 비애미悲哀美에 흐뭇이 젖고, 또한 그로 하여 인생의 본향本鄕, ‘정의 옛 뜰’을 그리게 됨으로써, 불여의不如意한 세상, 거칠어지려 사나워지려는 심성을, 다독거려 순화해주고 정화해준 공덕! 그 공덕 적지 않았으니, 두견이는 진실로 이 땅의 ‘고운 마음 지킴이’기도 해왔음을 어찌 몰라주랴?
한때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어, 그 가청권可聽圈(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판자촌 사람들! 그 곱던 마음! (불여의한 도시 생활로 해서) 차츰 거칠어져갈 때, 누구에게서 순화되며 정화되랴? 이젠 도로 그리워지는, 아아, 너 두견이여! 두견이여! --- 본문 중에서

이화우 흩날릴 제 _ 이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

이별의 한恨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야, 어느 계절인들 그러하지 않으랴마는, 그중에도 가을은 더욱 애타게 하고, 한결 못 견디게 하는, 그리움의 계절이다. 매창의 작품도 그 한 예다.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선조 때 부안의 명기이자, 빼어난 여류 시인이다. 이름은 계생癸生이요,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그의 호요, 계랑桂娘으로 애칭되기도 했다.
그녀는 당대의 대문사였던 허균과의 교분도 있었으나, 학자요 시인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과의 정을 오매에 잊지 못해했다.
그녀는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후에도, 내내 그를 사모하여 수절하다, 38세로 요절한 정한情恨의 여인이다.
이외에도 촌은을 그리워한 여러 수의 시가 있다. 그녀는 한시에도 능하여 주옥같은 57수의 한시가 ≪매창집≫에 전해온다. 위의 시조는 1974년 부안에 세운 ‘이매창 시비詩碑’에 새겨진 그녀의 대표작이다.
울며 부여잡고 차마 놓지 못하는 소맷자락! 그예 뿌리치고 떠나가는 임! 눈보라치듯 배꽃 꽃보라(꽃잎들이 ‘눈보라’처럼, ‘물보라’처럼, 어지럽게 휘날리는 모양) 어지럽게 휘날리는 속을, 백마에 채찍을 갈겨, 꽃잎들이랑 얼기설기 가마아득히 사라져가던 임의 뒷그림자……! 이 가을 들면서 ‘저’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음인가? 밤마다 그가 와 보이는 꿈, 내가 가 보이는 꿈들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중장 끝 구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라 했다. ‘임도’, 또는 ‘그도’라 할 자리를, 하필이면 홀대하듯 ‘저도 나를 생각는지’로 한 ‘저’를 음미해보라. ‘저’는 삼인칭으로서는 하대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떠날 때의 야속하게 느껴졌던 꽁한 감정이 아직도 덜 가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 대한 더 친압해진 말투! -오히려 스물여덟 나이 차를 무시해버린, ‘이불 속의 맞수’ 그대로 불러보고픈 충동! 또는 어리광이라도 부려보고, 투정이라도 부려보고 싶은, 몽상적인 현장감 분위기?서 무심중 튀어나온 그 한마디! ‘그도’도 ‘임도’도 아닌, ‘저도’의, 이 고혹적인 한마디가, 이 작품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편을 압도하고 있다. 참으로 신묘하지 않은가? 말의 쓰임새란!
촌은도 그녀를 못 잊어 애가 끊이곤 하였으니;

그대 집은 부안이요, 내 집은 서울이라,
그리워도 볼 수 없고 소식마저 감감하니,
오동에 비 뿌릴 제면 애간장만 끊이어라!

매창도 그를 그리는 여러 수의 한시가 있는 중, 몇 수를 들어보면;

봄바람에 꽃잎들은 어디 없이 휘날리고,
거문고 상사곡 굽이굽이 애끊일 뿐,
그리운 그 님은 여태 어이 이리 못 오시나?

꽃이 지는 봄날이면 더욱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그 심사 풀 길이 없어, 거문고로 ‘상사곡’ 한 가락 미친 듯 뜯고 나도, 그 님은 여전히 없고, 서울 새 사랑에 볼모로 잡혔는가? 슬그머니 샘도 나는, 이 아쉬움! 아쉬움……!

얼룩진 화장으로 주렴도 안 걷은 채,
새소리 요란한 속 ‘상사곡’ 뜯고 나니,
꽃 지는 봄바람 타고 제비 한 쌍 비꼈어라!

봄 아침이다. 대밭집이라 새소리가 요란하다. 주렴도 안 걷은 채, 눈물 질금거려 얼룩진 화장 그대로 상사곡 한 가락 거문고로 뜯고 나서 문을 열치니; 봄바람에 제비 한 쌍 낙화랑 함께 둥실 하늘을 비껴 날고 있다. 그리워 애만 태우던 이 봄도 이제 덧없이 가는 가운데, 그 이별 없는 쌍제비의 다정함이 부럽기만 하다.

비 온 뒤의 서늘바람 처마엔 달 밝은데,
귀뚜라미 울어 새는 한밤 내내 골방에선
답답한 가슴을 치듯 다듬이질 끝이 없다.

답답한 하고한 심사 풀 길이 없어, 주먹으로 제 가슴을 치고 치듯, 방망이로 치고 치는 다듬이질! 밤을 새우고 있는, 가엾은 여심女心이다.
‘그리움!’ 그것은 그 자체 ‘달착지근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심해의 진주조개 달빛이 하 그리워, 그 ‘그리움’이 가슴속 못[病核]이 되어, ‘보름’만큼 자라 자라 진주로 굵어간다듯이-.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이미 ‘그리움’이 아름다움으로 숙성熟成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있어, 녹음 있어, 동영상 있어, 전화 있어, 휴대폰 있어 영상전화도 할 수 있고, 인터넷에 의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도 쉽게 할 수 있는 세상! 정 못 견디면 각종 차 있어, 비행기 있어, 숙성도 되기 전에 해소해버리게 되니, 어느 겨를에 깊숙한 ‘그리움’의 참맛으로 익어갈 수 있겠는가?
그리도 애타게 그리다가, 그 정한情恨 품은 채로 요절夭折한 매창의 그 ‘애달픔’이야, 요새 잣대로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다만 그녀의 사리舍利처럼 남아 있는 시편들! 그 수수首首 편편片片이야말로 글자마다 알알이 영롱한 진주가 아니던가?
--- 본문 중에서
나비야 청산 가자 _ 실명씨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감당할 수 없는 춘심春心의 발동이요, 솟구쳐 오르는 여정旅情의 낭만이다.
‘꽃’이란 무엇인가? ‘봄앓이’를 하는 ‘사랑의 열병熱病’이, 홍진紅疹에 열꽃이 내돋듯이, 겉으로 내뿜은 발진發疹이요, 춘정春情의 나상裸像이며, ‘에로스’의 극치極致이다.
삼천리엔 청산마다 사랑의 봄 축제가 한창인데, 나도 장자마냥 나비로 화신化身하여, 노랑나비 흰나비들 문관文官으로 거느리고, 호반虎班 출신 범나비 떼, 호위병護衛兵으로 거느린, ‘왕나비’ 되어, 봄바람에 너울너울 팔도강산 청산마다 상춘행각賞春行脚이나 나서 볼까나!
가다가다 날 저물면 꽃 속에 들어 향기 속 일박하면 그 아니 황홀하랴? 축제 기간 중엔 숙박은 물론, 향기로운 꿀 식사며, 매혹적인 잠자리며, 감미로운 갖은 시중! 다 모두 무료라니, 일 년에 단 한 번의 이런 기회를 어이 차마 놓칠손가? 그런 일 없겠지만 어쩌다 꽃에서 괄시라도 할 양이면, 잎에선들 어떠하리? 초록 이불 싱그러운 향기 속의 그 한 밤도 또한 아름답지 아니하랴?
내킨 김에 훨훨 날아 북쪽까지 다녀오자. 영변의 약산 동대 진달래도 흐드러지게 피었으리? 반세기 애마르던 정! 남남북녀 그리웁다! --- 본문 중에서

초암이 적료한데 _ 김수장 외

초암草庵이 적료寂廖한데 벗 없이 혼자 앉아
평조平調 한 잎에 백운白雲이 절로 존다.
어느 뉘 이 좋은 뜻을 알 이 있다 하리요? (김수장)

‘평조’란 시조를 창昌할 때의 곡태曲態를 이름이다. 곡태에는 평조, 우조羽調(날래고 씩씩한 가락), 계면조界面調(슬프고 처절한 가락)의 세 가지가 있는데, 평조란 ‘웅숭깊은 저음低音’ 곧, 도량이 크고 넓고 깊숙하여; 되바라지지 않고, 야하지 않고, 거죽에 드러나지 않게, 으늑하고 느직하게 불리어지는 평화로운 가락으로, 온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 떠도는 듯, 백성들의 시름도 다 풀리어 함께 즐김 직한 태평스러운 가락이다. 시로서는, 저 유명한 소강절邵康節(소옹邵雍의 시호)의;

월도 천심처月到天心處 풍래 수면시風來水面時
일반 청의미一般淸意味 요득 소인지料得少人知

가 대표적으로 불리곤 한다. 이를 시조 가락으로 옮겨보면;

달은 천심天心에 두렷이 밝아 있고
바람은 솔솔 수면水面을 스쳐 올 제,
맑고도 시원한 이 맛! 참 아는 이 드물레라!

과연 평화로운 내용이 아닌가? 옛 가객歌客들은 이 한시에다 토만 달아서 평조로 읊곤 했으니;

월도 천심처요, 풍래 수면시라.
일반 청의미를 요득 소인지라.
어즈버 청풍명월이야 어느 그지 있으리?

한술 더 떠, 금주琴酒까지 등장시키기도 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청의미’는 축나지나 않았던지?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에 오현금五弦琴 빗기 안고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에 일준주一樽酒 자작自酌하니
세상의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는 나뿐인가 하노라!실명씨

초당이 하 고요하고 다사로운 한낮! 명경지수明鏡止水로 가라앉은 맑은 심경! 저절로 평조 한 가락이 흘러나온다. 나직하나 웅숭깊은 목소리, 그 맑고 평화로운 정대正大한 기상의 목소리가 천지에 가득 번지는 듯, 하늘을 건너던 흰 구름도 걸음을 멈추고, 그 평화로운 가락에 귀 기울여 듣다가 잠이 들어버린 듯, 만물이 한결같이 옴짝하지 못하는 가운데, 평조의 평화로운 가락만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메워 흐르고 있는 한낮의 정황이다. --- 본문 중에서

산은 높고 물은 멀고 _ 윤선도

산은 높고 높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고산은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된 부모님 산소에 성묘차 올라가고 있다. 지팡이에 힘을 실어, 한 굽이 한 굽이 굽이돌아 올라가고 있다. 숨이 차면 몇 번이고 길섶에 앉아 쉬어쉬어 가며,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묘소에 이르렀다.
계하階下에 재배하고 봉분을 둘러보는 사이, 그렁그렁해진 눈을 식히려고 묘정에 앉아, 끔벅끔벅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삼면을 멀찍이 둘러 있는 산, 산, 산들! 산들은 끝끝내 베풀어주신 어버이의 사랑인 양, 한결같이 울멍줄멍 높기만 하고, 어버이 그리운 절절히 애달픈 이 마음은, 멀리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강물인 양, 끝없이 끝없이 이어져가고 있다. 슬픈 마음 더욱 격해져, 그예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늙은 아이, 아이 울음으로 한바탕 엉엉 울어버린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울음소리 끝에 딸려오는 소리가 있다. 끼룩끼룩 기러기 소리다. 대열을 잃은 외기러기가, 저 넓은 하늘 벌판을 지향도 없이 허위허위 울며 울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 나야말로 이 허허로운 우주 공간에 오직 하나 외로운 한 마리 외기러기와 같은 고아가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높고 높고…… 멀고 멀고……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울고 울고……

어버이 그리움이 오죽이나 했으면, 이렇게도 애달프게 부르짖음이랴? 그립고도 애달픈 마음! 잘해 드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절절한 회한! 의지할 곳 잃은 외로움! 등, 그 모두를 고조하는 첩어疊語들! 그걸 다시 또 반복법으로 고조하기를 다섯 번이나 거듭하는 가운데, 시정詩情은 천야만야千耶萬耶 극에 이르러, 독자로 하여금도 각자의 처지에서의 어버이 그리움과 한스러움이 가슴 가슴에 사무치게 하고 있다. 그것은 초·중·종장이 한결같이 현재진행으로 일관되어 있음으로 해서, 더욱 긴박하게 이끌어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시가 이 경지에 이르면, 이는 ‘신운神韻’이라 이를 뿐이니, 읽고 읽고 또 소리 내어 읽어볼수록, 그 그윽하고 아득히 서리는 정한을 감당하기 어렵거든, 하물며 애원처창哀怨悽창한 계면조界面調에 얹어 굽이굽이 읊어내는 창唱의 경우야 더욱 일러 무엇 하리오?

[여담이지만, 고산에게 몇 글자만 바꿀 것을 건의하고 싶은 데가 있다.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의 종장을;
‘어디라 외기러기는 울며 울며 가는고?’로 바꾸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러기의 우는 위치가 ‘공간의 어느 정지된 곳에서’가 아닌, 어디를 지향도 없이 가면서 울고 있음이라, ‘어디라’가 제격일 것 같아서며, 또 우는 것이 연속되는 데는 ‘울고 울고’로 도막 나기보다는 ‘울며 울며’로 이어지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으며, 맨 끝을 ‘가는고’로 하면, 초장·중장의 끝 ‘-고’, ‘-고’와 각운脚韻으로 가지런히 통일이 될 뿐만 아니라, ‘-고’가 모두 11군데나 반복되어 있어, 형식미形式美, 운율미韻律美에, 정제미整齊美마저 갖추게 됨으로써, 더욱 완미진선完美盡善의 수사修辭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내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울고 울고’의 ‘-고 -고’는, 그 위에 여덟 번이나 씌어온 ‘-고’의 여세餘勢를 이어받은 것이요, 또 ‘가느니?’는 종장의 끝인 동시에, 전편의 맨 끝이라, 그마저 ‘-고’로 {‘ㄱ+ㅗ→고’(‘ㄱ’은 끝이 닫히는 폐쇄음이요, ‘오’는 촬구음撮口音(입을 오무려서 내는 소리))} 입을 오므려서 소리를 좁은 공간으로 제한하고 보면, 끝이 경색梗塞해질 것이 아닌가? ‘-니’와 같은 구장개방음口張開放音으로 끝을 활짝 헤쳐 열어줌으로써야, 글도 소리도 비로소 너울너울, 산도 물도 그리움도 숨통이 트이는 듯, 기러기의 울음도 단절 없이 이어져가는, 그야말로 ‘말은 끝났으나 정情은 다하지 못한’ 긴긴 여운餘韻으로 남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건의하고자 했던 것 중 ‘어디라’를 제외한 다른 하나하나는, 작자가 이미 그렇게 해보려다가 기각했던 것을, 부질없이 뒷공론한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한편 놀랍기도 하였으니,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나타나듯, 과연 우리말을 부려 쓰는 조사措辭의 귀재鬼才임에 재탄再歎 삼탄三歎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청산은 어찌하여 _ 이황 외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지 아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 (이황)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잘 가노라 닫지 말고 못 가노라 쉬지 마라.
부디 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김천택)

선현先賢들의 이런 좋은 권고를 세상 사람들은 수긍首肯은 하면서도, 어른들은 누구나 으레 하는 소리로 치부해버리기가 일쑤다. 너무 교훈적인 것은 집안 어른들에게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에, 별로 감동하는 기색이 없다. 그중에 혹은 발심發心하여 마음에 새기면서도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내버리기가 또한 일쑤다.
그런가 하면 한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느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아니 놀고 어이리? (실명씨)

일정一定 백 년 산들 긔 아니 초초草草한가?
초초한 인생이 무엇을 하려 하여
내 잡아 권하는 잔을 덜 먹으려 하는다? (정철)

우정워정하며 세월이 거의로다.
흐롱하롱하며 이룬 일이 무슨 일고?
두어라! 이의이의已矣已矣니 아니 놀고 어쩌리? (정철)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 들어보소.
청춘이 매양이며 백발이 검는 것가?
어찌타! 유한有限한 인생이 아니 놀고 어이리? (김천택)

인생을 헤아리니 한바탕 꿈이로다.
좋은 일 궂은일, 꿈속의 꿈이거니,
두어라! 꿈같은 인생이 아니 놀고 어이리? (주의식)

이런 노래도 그러려니와, 정철의 「장진주將進酒」에 이르러궼는, 그 낭만, 그 퇴폐가 극도에 이르러 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여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깔나무 백양白楊 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잰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쩌리? (사설시조, 정철)

이런 노래들에 이르러서는 즉석에 감동한다. “진실로 그렇커니!” 탄성까지 올리며, 연거푸 잔을 비워낸다. 왜 그럴까?
전자(표제의 노래들)는, 의지에 호소하여 실천의 일관된 노력을 요구하는, 쓰디쓴 맛인 반면; 후자(노세! 노세!의 노래들)는, 감정에 호소하는 감미로운 넋두리라, 아니라도 쏠리기 십상인 낭만의 깃에, 가랑잎에 불 댕기듯, 순식간에 옮겨 붙으니, 이내 활활 탈 수밖에-.
그러나 이들 퇴폐적인 낭만물浪漫物도, 이백李白 이래로 술자리에서의 우정 시늉해보는 허풍일 뿐, 평소의 소행이야 자자근면孜孜勤勉, 성의정심誠意正心, 본색은 다 군자君子를 지향하는 유교인儒敎人들일 뿐이다. 술자리에서의 거나해지는 취기와 함께 천야만야 부풀어 올랐다가, 술 깸과 동시에 푹 꺼져버리는 풍선과 같은 헛바람들인 것이다.
이는 마치 소량의 당해當該 병원病原을 주입注入함으로 해서, 각종 전염병의 면역免疫 효과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함 직도 하다 하리? --- 본문 중에서

대 심어 울을 삼고 _ 김장생 외

대 심어 울을 삼고 솔 가꾸니 정자로다.
백운白雲 덮인 데 나 있는 줄 제 뉘 알리?
정반庭畔에 학 배회하니 긔 벗인가 하노라! 김장생

집 둘레에 대나무를 심어, 산울타리를 만드니, 언제나 바람 소리 그윽한 ‘대밭집’이 되었고; 뜰 가에 소나무를 심어 정자나무로 자라니, 언제나 그윽한 솔바람 소리 거문고 소린 양 싱그럽다. 이 깊은 산속에 내가 살고 있는 줄, 속세의 사람들이 알 리가 없고, 다만 뜰 가에 학이 배회하고 있으니, 그를 벗 삼아 학처럼 시름없이 여생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녹수청산綠水靑山 깊은 골에 찾아올 이 뉘 있으리?
화경花徑도 쓸 이 없고 시비柴扉도 닫았는데,
선방仙尨이 운외폐雲外吠하니 속객俗客 올까 하노라. 실명씨

낙화로 자욱한 길! 쓸 이 없이 그대로 붉어 있고, 올 이 갈 이 없으니 대낮에도 닫혀 있는 사립문! 신선 개[仙尨](신선으로 자처하자니, 개도 ‘신선 개’일밖에)가 저 흰 구름 바깥을 향하여 짖고 있다. 그 바깥은 속세인데, 그쪽을 향하여 개가 짖으니, 속세의 손님이 찾아오려나?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물이 하 맑으니 고기를 헤리로다.
백운은 나의 벗이라 오락가락하는구나. 실명씨

모두가 속세를 떠난 깊으나 깊은 산수 속에, 외로이 살고 있는 은사들의 ‘은거隱居의 변辯’이다.
여긴 수다스러운 말이 없고, 번거로운 인간관계가 없다. 시기 질투도 없고, 원망하거나 탓하는 일이 없다. 노루 사슴 물고기 자라와 이웃하여, 물소리에 귀를 씻고, 반석에 누워 백운에 졸다, 시장하면 자연의 산물로 요기하면 족하다. 다시 무엇을 더 바라랴? 이것이 은사들이 자족해하는 소박한 생활상이다.

내 집이 길처인 양하여 두견이 낮에 운다.
만학천봉萬壑千峰에 외사립 닫았는데,
개조차 짖을 일 없어 꽃 지는데 졸더라!실명씨

이는 더욱 멋스럽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개도 짖을 일이 없어, ‘개 팔자 상팔자’로 낮잠이나 자고 있는데, 허다한 곳 다 두고, 하필이면 하롱하롱 꽃잎이 지고 있는 꽃나무 아래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개 코며 개 수염에도 낙화가 걸려 있는 희화적戱畵的 골계미滑稽美마저 곁들여 있다.

그러나 은사隱士들이란, 따져보면 소보巢父 허유許由,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은 진짜 은사이기보다는, 대개의 경우, 사이비似而非들의 허풍일 경우가 많다. -송죽을 손수 심어, 그것들이 대숲을 이루고 정자나무가 될 만큼의 오랜 세월, 청렴결백 학같이 살고 있는, 첫 수의 작자야 예외지만-, 그렇다! 말인즉 근사하다. 그러나 사이비들이 어찌 그런 적막한 생활에 오래야 견뎌냈으랴? 그들은 대개 정계政界에서 실각失脚한 고관들로서, 다시 때를 얻어 권토중래捲土重來하기까지의 일시적 은둔처隱遁處 내지 도피처逃避處로 산을 택한 것뿐일 경우가 많다.
인간은 역시 인간 속에서 시달리며 부대끼며 살아야 제 맛임을 알게 되는 존재들이다. --- 본문 중에서

단잠 깨지 말 것을 _ 정 철

단잠 깨지 말 것을, 아이 울음소리로다.
젖줄 곤고노라 매양 우는 아이 갈와
이 누고? 저 누고? 하면 어른답지 않아라!

맛있게 달게 들었던 잠! 아깝게도 깨고 말았다. 아이 우는 소리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아이를 달랜다는, 어른의 못마땅한 잔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아우 서는 탓인지, 젖줄이 딸려, 젖 투정하여 보채는 아이를 달랜다면서 한다는 소리가, “앗! 이게 뭐야? 꼼쥐 아니야?”, “앗! 저게 뭐야? 아니야!” 해쌓며, 노상 겁을 주어 우는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원! 어쩌면 저리도 어른답지도 않게스리’ 쯧쯧! 아내의 하는 짓이 몹시도 못마땅한 ‘짜증’이요, ‘잔소리’다. 직접 대고 말하지는 못하는 대신, 이처럼 짜증을 눙쳐 시조 한 장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소재가 노래됨 직도 않은 것을 가지고도,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멋진 한 수의 노래로 변신한다. 이 얼마마한 마음의 여유이며, 이 얼마마한 글솜씬가? 그에 있어서는 생활이 곧 노래요, 노래가 곧 생활이다. --- 본문 중에서

선웃음 참노라 하니 _ 정철

선웃음 참노라 하니 자채옴에 코가 시네.
반교태 하다가 찬 사랑 잃을세라.
단술이 못내 괸 전엘랑 년데 마음 말자.

소인배들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간교한 꿍꿍이속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있는 작자로서는, 꾹 참고만 있으려니 입이며 코가 간질간질, 금시 재채기가 터질 듯, 시큰거려 못 견딜 지경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주상께 아뢰었다가는, 자칫 시기 질투의 모함으로 되잡히어, 지금 받고 있는 가득 찬 사랑마저 놓치고 말지 두렵다. 아서라! 참자. 저 음모가 무르익어, 죄상을 둔갑시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딴생각하지 말고, 그저 꾹 참아 지켜보고만 있자. -이렇게 자신을 다독거려 달래고 있는 장면이다.
이해득실利害得失 하나하나 계산해가면서, 자기 단속을 하고 있는, 속의 속내! 내심에 깃들었던 시시콜콜 비밀스런 속의 속내! 남이 알면 옹졸한 인간으로 치부되기 십상일, 그런 부끄러운 속내를, 거리낌도 없이, 얼마나 극명하게 사실적으로, 그것도 한자어 한마디 섞지 않은 순수한 우리 고유어로, 실감나게도 그려냈는가를 볼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글’이란, 바로 이런 글을 두고 이름일 것이다.
같은 작자의 그런 글 또 하나 함께 차려볼까.

새원[新院] 원주院主 되어 시비柴扉를 고쳐 닫고,
유수流水 청산靑山을 벗 삼아 던졌노라!
아이야 ‘벽제의 손’이라 커든 날 ‘나가다’ 하구려.

어디서 오셨나이까? 여쭤봐서, “벽제에서 오느니라” 하거든, (아마도 그 친구, 그 귀찮은 친구일 것이 분명하니), ‘나를 외출했노라’ 일러, 돌려보내라고 분부해 둔다. 이는 물론, 유수청산 벗 삼아 시류時流를 배척하는 뜻이야 뜻이지만, 멀쩡하게 집에 있으면서, 오는 손님을 사립문께서 따돌리는 그런 짓이야 소인배나 하는 일이거늘, 어쩌면 호방한 성격의 점잖은 대감 물림이, 그런 내심을 아이하고 공모까지 하고 있으니, 듣기도 부끄럽거늘, 그것도 길이 남을 글 속에다 남기다니?
그러나 보라! 이 또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글’이 아니고 무엇이랴? --- 본문 중에서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_ 정철 외

재 넘어 성 권농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이야 네 권농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하여라. 정철

송강 같은 주호酒豪가 ‘술 익었으니 어서 오라는 기별’ 어제 듣고, 밤을 어이 견뎠을꼬? 그 흥겨움 오죽했으면, 죄 없는 소를 ‘발로 박차’ 일으키며, ‘안장도 없는 민등소를 꾹 누질러’ 타고 가는 것일까? 재를 넘고, 물을 건너 한나절을 가는 동안, 보는 것 듣는 것 느꺼움도 많았으련만, 그 모든 것 송두리째 빼버리고, -다짜고짜 주제主題에로 돌진- 그 집 아이 불러대는 이 멋 좀 보소!
이참에 다음 작품들도 함께 차려보자.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초당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 년 덧 시름없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 다 익었다.
거문고 가진 벗이 달 함께 오마 터니,
아희야 모첨茅첨에 달 올랐다 벗님 오나 보아라. 실명씨

친구들끼리 서로 술 초대, 꽃 초대, 생일 초대, 손자 돌 초대…… 등등, 정과 정으로 어우러진 사귐! 어이 부럽지 않으랴?
박은朴誾이 이행李荇에게 보낸 한시 쪽지의 그 깜찍한 글맛이라니! 제아무리 맛있는 술이기로서니 그 ‘글맛’을 당해낼까?

아침에 마누라쟁이 넌지시 귀띔하길
도가지에 빚은 술이 이제 갓 익었다나!
혼자야 감당 못할 흥! 벗이여 어서 오라!

이런 쪽지 받고 단걸음에 달려가지 않을 목석이 어디 있으랴?
술 쪽지 말하다 보니, 저 당의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유십구劉十九에게 보낸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술구더기 동동 뜨는 오려주 갓 익었고,
오목한 질화로엔 숯불이 이글이글!
오소소 눈발 선 이 밤! 한잔 생각 없는가?

한잔 생각나게 노랑부채질 홀홀 부쳐놓고는, ‘한잔 생각 없는가?’라니?
생각나거든 한걸음에 달려오라는, -저만치서 치고 있는 손짓이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더구나 음식 먹을 때 ‘똥’이니 ‘구더기’니 하는 불결한 말은 금기요, 상식 밖이련만, 술꾼들의 이상기호異常嗜好로는 ‘술구더기’ 운운云云은 오히려 짐짓 군침을 삼키면서 곧잘 지껄거린다.
그렇다고 ‘친구’ 곧 ‘벗’이란 매양 어울려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사이만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남으로 삼긴 중에 벗같이 유신有信하랴?
나의 왼 일을 다 이르려 하노매라!
이 몸이 벗님 곧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정철

친구! 특히 책선責善(옳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하는 친구 사이)하는 친구야말로 일생의 반려伴侶로 어이 소중하지 않으리?
‘책선의 벗’이란, 친구의 그릇된 점, 도의에 미흡한 점을 가차 없이 지적하여 충고하는 벗! 그런 도의지우道義之友를 이름이라, ‘동무’니, ‘또래’니, ‘패’니, ‘패거리’와는, 근본 서로 다른 말이다.
그러나 한편, 친구란 말은, 둥글둥글 두루 쓰이는 정감 어린 말이기도 하여, -‘남자 친구’, ‘여자 친구’는 맛 중의 맛이려니와, ‘젊은 친구’, ‘꼬마 친구’는, 나이 굴레를 벗어던진, 노소동락이요, 각종 취미나 기호의 동호인끼리 두루 지칭하는, ‘바둑 친구’, ‘골프 친구’…… 심지어는 ‘술친구’, ‘욕 친구’, ‘때 묻은 친구’ 등도 있어, 은연중 풍기는 은은한 그 친화미는, 인간 사회를 한결 부드럽고 훈훈한 정다움으로 동여주는, 덕스러운 유행어로, 자타가 즐겨 쓰고 있는, 오늘날인 듯도 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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