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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역사

미각의 역사

[ 양장 ] KI신서-180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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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637g | 210*263*30mm
ISBN13 9788950918668
ISBN10 8950918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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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을 했든, 죽은 고기를 찾아 다녔든, 도구를 사용한 호모 하빌리스 시대부터 음식물에서 고기의 양이 상당히 증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부터 원시인류의 뇌가 훨씬 더 커지지 시작한다. 소위 ‘비싼 조직’ 가설(expensive tissue hypothesis)로 불리는 이론에 따르면, 원시인류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음으로써 소화기관이 더 적어지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내장기관은 엄청난 물질대사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래서 그 이론에 따르면, 소화기관에서 물질대사 자원을 적게 소비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비싼 조직, 즉 뇌의 발달을 가능케 했다. 이 이론을 더 크게 확장할 수도 있는데, 추측건대 인류가 맨 처음 사용한 조리법은 소화가 보다 쉬운 음식 만들기였을 것이다. 난방용, 조리용 불을 최초로 사용한 인종은 호모 에르가스터/호모에렉투스(Homo Ergaster/Erectus)이다. 불을 사용한 증거가 나온 고대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동굴 유적으로 50만 년에서 2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화생물학은 차치하고라도, 음식 만들기의 등장은 확실히 새로운 차원에서 맛과 미각적 취향에 대한 논의를 끌어낸다. 그 시대부터 인류는 무엇을 먹을지 단순히 선택하기보다,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지 그 방법을 찾았다. 호모 에렉투스 인종에게 이런 결정은 단순히 날것과 잘 익힌 것 중에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다양한 요리 방식은 맛을 결정하는 데 재료 선택만큼이나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약 10만 년에서 1만 2,000년 전, 그 인종이 세계 어느 지역에 거주했는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원시인류가 죽은 고기를 찾으러 다녔다는 논쟁은 다소 사그라진다. 추측건대,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때에 따라 기회를 틈타 죽은 고기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이 점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때부터 인류가 매우 유능한 사냥꾼이자 채집꾼이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사냥-채집 인류의 음식은 특정 집단이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상당히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우리보다 훨씬 더 단백질이 풍부한 경향을 보인다. 사냥은 주로 동물성 지방이 들어 있는 단백질을 공급한다. 견과류 등의 주요 식물음식은 균형 잡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의 공급원이다. 좋은 탄수화물 공급원은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야생 구근, 과일, 뿌리식물, 덩이줄기 작물 등이 기본 공급원이었지만 이들 중 많은 것들이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있다. 물론 현대 서구 식단은 탄수화물 비중이 높은 재배작물을 주재료로 한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의 가장 편리한 에너지원으로서, 당의 형태를 취하면 훨씬 더 쉽게 물질대사로 변화된다. 현대 서구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풍부한 정제 설탕을 섭취한다. 과거에 많은 사냥-채집 집단들이 특정 시대에 지방과 당분 공급원을 필요로 했으며, 또한 그런 것들을 몹시 탐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특정 음식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은 미각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었을 것이다. --- pp.42-43

중국 요리 관습의 기초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판-차이(반찬 飯饌, fan cai) 원칙으로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판(飯, fan)은 밥을 뜻하는데, 이 맥락에서는 모든 곡물과 빵과 국수 같은 탄수화물 식품을 포함한다. 이것의 목적은 먹는 사람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차이(饌, cai)는 판에 맛을 더해주기 위해 만든 모든 음식을 뜻하고 판 다음으로 중요하다. 모든 중국 식사는 판과 차이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공자 가라사대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곡물에 맞춰 정해진 양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
판이 빠진 과일이나 어포 등의 간단한 형태는 적당한 식사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는 주로 밥이 많고 양념이나 곁들인 음식으로 최소한의 찬이 나오는 형태였다. 반면 경제적 수준이 조금씩 높아지면 찬의 개수가 늘어나 부자들 식사에는 다양한 채소와 육류 음식이 주를 이루고 마지막에 남은 찬을 다 먹기 위해서나 ‘약간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밥 한 그릇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무리로 밥을 먹으면 차려낸 찬이 시원찮았다는 뜻으로 실례되는 반응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일반적 원칙은 지금까지도 일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음식문화의 정수는 다양한 형태의 판과 차이를 창의적으로 조합하는 것이었다. 이는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경우가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차려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경우에 해당했다. 중국 요리사들이 다양한 채소와 육류를 준비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만든 차이들과 판을 조합하면, 거의 무한정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어낼 수 있었다. 자르고, 저미고, 끓이고, 삶고, 데치고,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볶아주고 등등, 간혹 하나의 음식에 한 가지 이상의 방식을 적용할 때도 있으므로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 이런 면에서, 판-차이 원리의 보편적인 적용은 개별 단위마다 미학적 생산 접근 방식을 따랐다. 가령, 서안의 진시황릉을 지키는 수많은 병마용 테라코타 상들이 아주 미미하지만 전부 다른 형태를 취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유사성이 바로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즉 미식법을 순수 예술의 하나로 평가하는 기초가 된다.
판-차이 원칙 외에 중국 요리 관습의 근저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고는 의학 지식, 건강과 인간의 몸에 대한 개념과 직접 관련이 있으며, 대개 이런 개념들은 전통적인 우주 관념에서 파생되었다. 천하 삼라만상은 다른 만물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가치관의 중요한 점은, 인간의 몸 자체가 우주 속의 소우주라는 시각이다. 이때 둘은 에너지, 기(氣, qi)로써 생명을 이어 간다. 인간 몸을 들자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그 에너지는 음식 안에 다양한 분량으로 존재한다. 먹는다는 것-적절한 영향의 근본-의 목적은 음식물을 강화하고 약화시키는 것 사이의 완벽한 평형 상태를 이루고 유지하고자 함이다. 이는 체내 음양의 힘을 균형 있게 맞춰주면 가능하다. 음과 양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이 용어는 낮은 산의 그늘진 면(음)과 밝은 면(양)을 나타낸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음은 차갑고(또는 차갑게 만들고), 어둡고, 습한 것으로 대체로 여성적 특질과 관련이 있으며 반면에 양은 뜨겁고(뜨겁게 만들고), 밝고, 건조한 것으로 대체로 남성적이라 간주되는 특질과 관련이 있다. 음양은 정반대의 요소가 아니라, 어떤 개체가 주어졌을 때 어느 쪽으로든 상호 보완적인 요소이다. 가령, 음식이든 다른 개체든 일방적으로 음, 양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음이 조금 더 많다, 양이 조금 더 많다는 식이다. 음식은 몸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차갑게 만드는 유형과 뜨겁게 만드는 유형으로 나뉜다. 차려낼 때 그 음식의 온도와는 무관하다. 가령, 각 음식의 속성은 변할 수 있지만 녹색 채소와 게처럼 물에 사는 생물은 찬 음식으로 분류되며 지방질 음식, 매운 고추, 닭죽 같은 음식들은 더운 음식으로 분류된다. --- pp.107-109

르네상스 저자들에게 요리 의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테이블 매너를 규제하는 일이었다. 식탁은 인문주의자 고문들이 궁정 사람들에게 사회적 훈련을 시키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에라스무스의 교육용 안내서 『남성에게 필요한 유용한 매너 De civilitate morum puerilium』는 유럽 전역의 엘리트 계층에게 필요한 적절한 테이블 매너를 설명했다.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이 책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체코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종류의 저서들은 식탁 사교의 초점을 음식 자체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남들 앞에서 배고픈 모습을 지나치게 보여주는 것을 무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사교의 초점은 친교와 계몽적인 ‘식탁 대화’를 지향했다. 이리하여 에라스무스는 충고했다.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물을 마시거나 말을 하는 것은 무례하며 불안한 일이다. 식사가 쭉 이어지면 중간에 간혹 이야기를 하면서 쉬어가야 한다.”
또한 에라스무스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용적인 충고를 해주었다. “소스를 얹은 요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은 상스러운 짓이다. 원하는 음식은 나이프나 포크로 가져와야 한다. 식도락가들이 하는 것처럼 전체 음식 중에서 골라서도 안 되며 무엇이든 자기 앞에 있는 것만 가져와야 한다.” 포크는 16세기 궁정 디너에서도 매우 귀한 도구였다. 포크를 직접 봤다는 최초의 기록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나오지만, 16, 17세기에 와서야 엘리트 계층의 식탁에서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17세기 후반까지도 논평가들에 의하면, 영국인들은 ‘손가락 외에 포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럽 내 최고 수준의 상류층 에티켓을 정립했다고 간주되는 베르사유 궁정에서도 그랬다고 한다. 팔라틴 공녀(Princess Palatine)는 루이 14세는 손자들이 포크 사용을 관습으로 택하려 하자 어떻게 그 일을 승인하지 않았는지 기록으로 남겼다.
전투가 아닌 식탁용 포크와 나이프 등 적절한 식기류가 도입되면서 식탁에 그것을 적절하게 차리는 방식에 대한 개념도 따라 나왔다. 플라티나의 조언에 따르면, 식탁은 계절별로 차림이 달라야 한다. 봄이면 식탁과 식당에 꽃을 두어야 하고, 겨울이면 ‘실내 공기에서 좋은 향수 냄새가 나야’ 했다. 냅킨과 식탁보도 테이블 세팅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데, 플라티나가 내세우는 이유는 이랬다. “만약 그런 게 제대로 놓여 있지 않다면 구토를 유발하여 식욕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리하여 유럽의 상류층뿐 아니라 새로운 교양예절을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의 디너 테이블은 교양예절에 대한 르네상스의 여러 개념들이 마음껏 회자되는 이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엘리트 계층의 식탁에서 자리배정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상류 가문들은 다이닝 홀을 담당하는 의전관리관과 전례관을 계속 유지했는데, 이들은 올바른 예의를 갖추어 식탁 손님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책임을 맡았다. 사회계급 순서가 떨어지는 고용인들과 손님들은 엘리트 계층 손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했다. 14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귀족 상류층 가문의 식당 시설의 전체 구조는 독립 식당을 따로 마련하는 쪽으로 변했다. 이는 오래된 중세의 거대한 식당구조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영주와 직계 가족 만이 식사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었다. --- pp.205-207

‘진정한’ 레스토랑의 모든 특징적 관습들은 1782년 파리에서 문을 연, 라 그랑 타베른 드 롱드르(La Grande Taverne de Londres)에서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이곳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빌리자면, “레스토랑의 기본 4박자, 우아한 실내, 똑똑한 웨이터, 고급 와인 저장고, 탁월한 요리를 다 갖춘 최초의 식당이었다.” 주인 앙투안 보빌리에르는 이 레스토랑을 개업하기 전에, 프랑스 국왕의 형제를 모시던 파티스리 셰프였다. 그는 고전 시대 레스토랑 경영인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과거에 상류귀족만이 즐기던 요리 스타일과 문화를 부르주아의 식탁으로 옮겨왔다. 그를 포함해 과거 상류귀족층의 요리사로 일했던 수많은 요리사들이 팔레 루아얄에 레스토랑을 열었고, 이곳은 새로운 레스토랑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새로운 레스토랑들 중에서, 특별 요리나 눈에 띄는 특성 때문에 유명해진 곳도 있었다. 발렌(Balaine)의 로쉐 드 캉칼(Rocher de Cancale)은 생선요리로 유명했고, 카페 메카니크(Caf? Mechanique)는 주방이 손님들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요리가 기계장치로 식탁의 빈 받침대 위로 전달되었다. 또 에네베우스(Henneveus)는 4층을 프라이빗 룸으로 제공했다.
초기 레스토랑의 마지막 특성은 프라이빗 룸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밀회나 부정(不貞)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초기 시절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특성이었지만 이후로는 더 이상 레스토랑의 기능적 특성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프라이빗 룸에 해당하는 카비네 파르티클리에(cabinet particuliers)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에 식사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파리 시내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은 결혼한 사이가 아닌 두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였다. 공공장소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을 허용해주었고, 매음굴보다 훨씬 우아하고 손가락질 덜 받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룸은 적어도 19세기 전반부동안 파리 시내 레스토랑에서 성행했으며, 불륜과 매춘 장소 역할 외에도 수많은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보다 더 기품을 갖추고 있던 몇몇 레스토랑들도 개별 출입구를 유지했기 때문에, 커플들은 랑데부 장소로 가기 위해 공공 공간을 지나다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프라이빗 룸은 정치 단체, 스파이, 집밖에 회의 장소가 필요했지만 프랑스 법적으로 대중 집회가 금지된 사람들도 이용했다. 육체적 향락과 정치 토론의 자극도 존재했지만, 무엇보다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은 단연 식도락을 위한 장소였다.
라 그랑 타베른 드 롱드르 외에도 초기 파리 레스토랑 중에, 후에 전 세계 기준으로 자리 잡은 프랑스 레스토랑의 스타일을 구현했던 세 곳이 있었다. 바로 레-트로아-프레르-프로방소, 베르, 그랑 베푸(Grand V?four)였다. 그중에 그랑 베푸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전형적인 성격의 이들 세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프랑스 레스토랑의 참 의미가 되었으며, 서구문화의 중심지 파리가 제공하는 미각에 호기심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말하자면 그곳에서 매번 식사를 했던 사람들도, 그런 데서 밥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명소였다.
그 레스토랑들은 가족적인 친밀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동시에 겨냥했다. 1786년에 생긴 레-트로아-프레르-프로방소를 경영하던 세 명의 주인은 본래는 서로 친척 관계가 아니었으나 세 명의 자매와 혼인했다. 마르세유 토박이였던 세 자매는 프로방소 브랑다드 드 모뤼(Proven?aux brandade de morue 대구 퓨레)를 만드는 멋진 레시피를 파리에 소개했다.
이 레스토랑은 19세기 세계일주 여행을 하던 많은 외국인들, 특히 미국인들이 파리에 와서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음식은 물론 가구장식까지도 숭배했으며, 그 레스토랑 방문이 사적지와 박물관을 찾는 것보다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 프랑스를 더 쉽게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곳이 프랑스 레스토랑의 개념을 얼마나 완벽하게 구현한 시설이었느냐 하면, 1876년 미국에서 열린 최초의 세계 박람회, 필라델피아 세기 박람회(Centennial Exposition)에서 수입해 갈 정도였다. 거기서 프로방소의 현지 지점에서 뷀식 맛을 본 작가 윌리엄 호웰즈(William Dean Howells)은 이렇게 애석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트로아 프레르 프로방소(Trois Fr?res Proven?aux)의 어마어마한 식사 값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마음이 생긴다(세 명의 주인이 각기 따로 계산서를 쓰고, 손님은 셋을 합한 돈을 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만한 돈은 (이런 음식을 먹은) 우리 자신에 대한 적절한 앙갚음이다. 하지만 나는 (나같이 그 음식을 먹고 엄청난 돈을 낸) 사람들의 귀에다가 살짝 말하고 싶다. 모든 미국인들이 우리처럼 하지는 못할 거라고.”
--- pp.30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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