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후손과 원수의 후손의 싸움을 하나님은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사탄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후손을 멸하려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일어난 첫 번째 죄악의 사건은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보를 끊으려는, 다시 말하면 여자의 후손을 끊어버리고 메시아의 계보를 끊으려는 온갖 싸움이 성경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의 후예들과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구별된 교회를 이 시간에도 사탄은 끊임없이 공격하고 넘어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26쪽
훈련을 포함한 구체적인 실천이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약한 사람은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에 약한 사람은 기도의 훈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인격의 훈련이 부족하면 제자훈련을 통해 삶을 나누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37쪽
우리는 생각이나 우리가 해야 할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고,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왜 이런 판단을 해야 하는가!’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그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그 말씀의 뿌리 속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4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얻은 이 구원의 선물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사탄이 빼앗아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원의 기쁨과 감격입니다. -51
우리 성도들의 인격은 말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지켜주는 흉배를 풀고 무장을 해제한다면, 수시로 들어오는 사탄의 공격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66
우리가 우리의 양심과 감정을 지키겠다고 차는 흉배가 우리 인간의 의라면, 사탄의 칼에 뚫릴 수밖에 없는 흉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가슴을 막는 흉배가 그리스도의 흉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의라는 흉배이어야 합니다. -73
평안 가운데 제일 중요한 평안은 이웃과의 평안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평안하지 못하면, 마치 미끄러운 신발을 신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미끄러져서 공격하는 적의 칼날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신었는지는 이웃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88
내 마음이 평강을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주님은 내 안에 있는 것이 환경을 오염하고 자신을 오염시킨다고 했습니다. -90
믿음이란 개념(concept)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가 만지고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도구(tool) 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런 믿음의 방패로 우리에게 날아 들어오는 불화살과 같은 불 시험을 막아내라고 합니다. -105
믿음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에게 기대고, 나의 시선이 누구를 향하여 있느냐에 따라서 믿음은 결정됩니다. 건강한 나무뿌리만이 우리를 살려내는 것처럼, 우리를 살려내는 것은 내 안에 있다고 착각하는 믿음이나, 썩은 나무뿌리를 얼마나 확실하게 붙들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직 우리가 바라보는 믿음의 대상에 달렸습니다. -107
‘나는 언제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는 과거시제의 구원은 사실 죄악의 벌칙(페널티)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은 죄를 흔히 가격으로 환산해서 10억 원이라고 하면, 그 10억 원을 탕감 받는 것이 구원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면, 죽음을 면하는 것이 그 죄로부터의 구원일 것입니다. -126
내가 죗값을 다 치렀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닙니다. 어차피 불에 탄 집은 쓰레기를 치우고 다시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소하고 번듯하게 다시 건축해야 하는 숙제가 있듯이, 다시 세워야 할 현재와 미래시제의 구원은 반드시 있습니다. -129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공격용 무기인데, 그 말씀을 가지고 사탄의 공격과 유혹 그리고 시험이 다가올 때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합니다. -148
일주일 동안 금식하는 사람도 영혼의 배고픔에는 쉽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검, 즉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용 무기를 주셨는데도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52
성경 지식은 많지만 어떤 일을 하는 확신과 영적 담대퓇이 없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위축되고 영적으로 무능하다고 느낀다면 틀림없이 기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생활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163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증거 하고 말씀을 통찰하는 이해력이 기도하는 양에 절대적으로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164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필요 없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해서 그것이 자신의 계급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173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기도는 하지만 교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178
내가 하나님 앞에 신앙을 고백하고 내가 결단해서 내가 나온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반만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결단하고 교회에 왔다면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공동체의식과 지체의식 속에서 함께 전투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87
우리의 싸움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싸움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에 달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이건 내 싸움이다. 이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직접 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195
티켓 한 장으로 쏟아버릴 은혜가 아니며, 누군가의 한마디 내뱉은 말에 의해 내 신앙을 송두리째 팔아버릴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풍성함은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에게 있는 문제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속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로 지극히 작아 보이도록 하신 은혜가 풍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런 것입니다. -197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