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400~500권씩 늘어가는 책은 30평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10년 전 60평으로 넓혀야 했다. 새 집으로 이사하는 날은 부인 이씨가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과 겹쳤다.
“아무 걱정 말고 여행이나 잘 다녀오시오.”
돌아와 보니 남편이 인심 쓴 이유를 알았다. 60평 새집이 더 좁아 보였다. 방마다 책을 두고도 모자라 거실과 안방, 화장실에까지 책이 널렸다. 빤한 벽은 서예 작품과 그림 도배였다. 지하 서고를 따로 두고 쌓아두었던 책을 이사하면서 책장에 꽂아버린 것. 안방 화장대도, 옷장 위에도 책, 책.
“어디서 화장을 하란 말예요?”
“나는 화장 안 한 당신이 제일 예뻐요.” --- chapter 4 “20년 만에 이룬 북카페의 꿈_춘천의 북카페 사장 김종헌” 중에서
조씨가 따라 읽은 사람은 소설가 이윤기 씨. 《하늘의 문》 《나비넥타이》 등 창작소설로 시작한 그의 따라 읽기는 번역본으로 확대돼 200여 권을 모두 독파했다. 그렇게 하면서 작가 이윤기의 전모뿐 아니라 그의 눈을 통해 세상 이치까지 두루 읽게 됐다. 사실과 인과로 꽉 짜인 역사의 시각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 세계인 신화라는 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사유 공간이 생긴 것. 사회나 사물을 직관적으로 보고 그때그때 욕망을 표출했는데, 그의 책을 보고 나서 말랑말랑해지고 욕망을 억누르는 여유도 생겼다.
그 무렵 사내 커플의 사랑은 무르익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800자 원고지 10장에 빼곡히 사연을 적고 그동안 독파한 200여 권의 이윤기 책 사진을 동봉해 반 협박 편지를 띄웠다. 당신 아니면 주례 설 사람이 없다며. 결혼식 며칠 전까지 답이 없어 포기하고 있던 차 이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12월 9일 화천으로 내려가겠습니다.” 활자가 목소리로 되고 책 속에서 사람이 걸어나오는 듯한 환각.
“책과의 인연에서 더 이를 수 없는 극점이었다”는 게 조씨의 말이다. 소설가 이윤기는 주례 이윤기가 되었고 스승 이윤기가 되었다. --- chapter 6 “우체국과 책, 사라지는 것의 끄트머리_화천 상서우체국장 조희봉” 중에서
“중간상이 책 욕심을 내서는 안 되죠. 주인 찾아 책을 넘기는 게 본업인데…….”
그한테 책은 흐르거나 잠시 머무는 존재. 그런 탓일까. 그의 집에는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가 어디선가 꺼내온 이것들은 책이라고 하기는 뭣하고 그나마 때와 때 사이에 좀 길게 머무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리 욕심이 없기로서니 이것뿐일까, 라는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기왕 보여줄 것 다 보여주마, 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누리는 안복. 40년에 걸쳐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책들을 졸여 남긴 것이니 어련할까. 그의 절제와 인내는 범인이 이를 수 없는 ‘저만치’에 있었다. --- chapter 9 “시간과 시간 사이_책 중간상 김창기” 중에서
그가 고서 덫에 걸린 것은 26년 전 술자리에서다. 1982년 윤석창 씨 소유의 책으로 두 달간의 한국문학작품초판본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의 뒤풀이. 한 일간지의 문화부장이 꺼낸 말이 씨가 됐다. 그 책들을 경매에 붙여 팔지 말고 여 사장이 사들여 문학 박물관을 만드는 게 어떻겠는가? 여씨는 자신을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에 비유했다. 그로부터 2~3년간 강아지가 주인 따르듯 서지학자인 안춘근 씨의 뒤를 따라 헌책방을 다니며 책 보는 눈을 키웠다. 그렇게, 초판본 전시회에서 만난 이광수의 《일설 춘향전》은 320여 종의 다른 판본으로 확대되었고, 일본에서 만난 《텬로역뎡》은 100여 종의 다른 판본까지 인연이 넓어졌다.
“책 모으는 재미가 엄청났지요.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책은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전광석화 같은 순간에 인연이 아니면 그곳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겠어요. 하지만 그것이 블랙홀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거죠.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힘든 지경이었어요.” --- chapter 11 “내가 주인인가 책이 주인인가_화봉책박물관 관장 여승구” 중에서
이메이션에서는 책값을 회사에서 대준다. 사고의 폭,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직원들이 소설이나 어학 등을 제외한 책을 산 뒤 결제를 올리면 한 달 단위로 전액 지급된다. 주제나 금액에 제한이 없고 보고서나 독후감 등 부담도 없다. 한 해 2,500만 원 정도가 책값으로 나가니 직원 한 사람이 평균 100만 원어치의 책을 사서 읽는 셈이다. 마케팅 담당 함동철 씨는 “작년에 책값으로 70여만 원을 지원받았다”면서 “회사 안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3년 전부터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 ‘책사모’라는 동아리가 만들어져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고 난 뒤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부회장은 ‘그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처음 쭈뼛쭈뼛하던 책값 결제 신청이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자율로 이뤄지듯이 책동아리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 chapter 13 “뉴턴의 사과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_‘독서경영’ 이메이션코리아 대표 이장우” 중에서
과일 333억, 우유 449억. 도서 10억. 2002년 국방비 16조 3,640억 원 가운데 도서비는 0.006퍼센트다. 그나마 일관되게 0.003퍼센트를 유지하다가 두 배로 올렸다. 이후 도서비는 10억 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10억 원을 육해공 3군으로 나누면 3억 3천만 원정도. 중대급에 풀면 19~20권꼴. 한 해 한 번 보급하는 ‘진중문고’는 그래서 20권 한 질이다. 책에 목마른 일선 부대에서는 감지덕지다. 군인이 강인한 체력에 총만 잘 쏘면 그만이지 무슨 독서냐고?
8년째 병영 도서관 건립 운동을 펴는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 민승현 본부장은 “군인들에게 반드시 책을 읽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병은 2년여 동안만 군인입니다. 이들은 복무가 끝나면 우리 미래 사회의 주체들이죠. 그러므로 병역을 감당하되 그로 인해 고립,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병사 개인은 물론 국가의 손해죠.” --- chapter 16 “군인도 총만 쏘고 살 수 없다_책나눔 운동의 결실 병영 도서관” 중에서
처음에는 비종교 도서를 갖추고 비교인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하는 데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교회가 좋은 일한다는 입소문이 나며 교회 이미지가 좋아지자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던 한 고등학생은 대학 영문과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예술고등학교를 진학한 아이는 이곳에서 빌려 읽은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이 도움 됐다는 말이 전해졌다. 교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져 “만일 교회를 나간다면 은광교회를 가겠다”고 말하거나 자신은 나오지 않지만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10년이 넘도록 도서관을 이용했지만 교회 나오란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다고 말하는 성현주 씨의 말투에는 편안함보다는 서운함이 섞였다.
이동준 담임목사는 “도서관 운영과 기독교 전도는 완전히 별개다. 만일 두 가지를 연계했더라면 이렇게 장기간 도서관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chapter 22 “책벌레 이웃 다 내게로 오라_은광교회 김종대 목사 기념도서관” 중에서
돈벌이나 문단 권력과 무관한 반년간 잡지를 생떼 같은 돈을 들여 펴내는 것은 그의 대책 없음과도 무관치 않다. 1982년 결혼해 지난 1999년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구입하기까지 청파동, 포일리(평촌), 여의도를 17~8년 전세로 떠돌았다. 그동안 책값, 술값으로 나간 돈이면 집 두어 채는 샀을 거라는 게 부인 강문자 씨의 말이다. 술을 마시면 스스로 전생에 황제였다고 뻐길 만큼 남들과 비교해 결코 빠질 게 없다는 그는 단 한 가지 빠진 게 적금통장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 chapter 23 “살아남은 자의 슬픔_시인 피디 이도윤” 중에서
유일한 휴식시간은 헌책방 가는 길. 그는 헌책방계에서 ‘사전을 모으는 이상한 교수님’이다. 심의린의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이문당, 1925)을 지방의 한 헌책방에서 찾아내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단행본 사전임을 밝혀냈다. 그는 요즘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책방을 찾는데 사전 비슷하게 생긴 고서를 보면 가슴이 찌르르하다고 말했다.
책방 길에 USB 메모리는 필수 휴대품. 낯선 물건을 만나면 그것을 컴퓨터에 꽂아서 자신이 구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그 안에는 A4 300쪽 분량의 사전 목록과 140쪽 분량의 어휘 자료가 입력돼 있다. 10년 이상 정교하게 다듬어와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사전 편찬사를 얽을 단계에 이르렀다. 서지학 관련자나 어휘사 연구자들이 탐을 낸다는 말에 “한 벌 카피해서 줄 수 있느냐”고 운을 떼자 턱도 없는 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 chapter 26 “사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_한국어사전 독립운동하는 국어학자 박형익” 중에서
퇴임하면서 연구실에 있던 책은 “집으로 나르기 귀찮아”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눠주었다. 요즘도 빌려달라는 이한테 선뜻 빌려주고 반납을 채근하지 않는다. 책은 다른 것과 달리 대체 불가한 것. 자신의 욕심에 견주어 다른 사람들의 책 욕심을 이해한다. 그래서일까. 책 알맹이는 다 뽑아져 그의 머리로 옮겨지고, ‘괜찮은 책’은 빌리는 형식으로 다른 주인에게 옮겨졌으니 책꽂이의 책들은 빈껍데기처럼 보였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감히 탐내지 않는 책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터.
“우리 집은 도둑이 든 적이 없어요. 책밖에 없으니까요.”
살 때는 제값이지만 팔 때는 값없는 책, 책, 책들. 하긴 살 때만 사용가치와 시가가 일치하지 않겠는가. 외출 때도 대문만 잠근다. 그가 쓰는 방은 온통 책과 책상, 그리고 침대 하나뿐. 나머지 옷장이나 장식장 따위는 모두 마루에 나와 훀다. 책 이외에 하다못해 골동품 하나, 그림 한 점 없다.
--- chapter 27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_프랑스 유학 1세대 불문학자 민희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