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저 멀리에 아슴아슴하지도 못한 몇 줄기의 별빛으로 멀어져 간 나의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 그 풍경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드리워져 있는 이야기들······ 그것들은 내 인생의 보석이었다.
헤어지고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그러한 되풀이가 이 세상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라면 이 세상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라면, 가난과 사랑과 놀이야말로, 그 순수의 기억이야말로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우리들 부질없는 이 ‘찰나의 인생’을 버텨주는 가장 찬란한 보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롤로그 내 인생의 보석」중에서
엄마는 한번 매를 들면 너무나 무서웠다. 나는 엉덩이나 종아리를 맞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또 소리 내서 운다고 더욱 많이 맞았다. 너, 이 녀석, 앞으로 또 할꺼야, 안할꺼야, 저번에도 안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너 당장 빌지 못해? 또 할꺼야, 안할꺼야 하면서 엄마는 살이 우둘투둘해지도록 회초리로 내 엉덩이나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 나는 또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다시는 안하겠다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한참 뒤에 엄마는 화가 좀 풀렸는지, 콧물, 눈물을 훌쩍거리며 방 한구석에 서 있는 나에게 밖에 나가서 씻고 오라고 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서 시멘트 수조에 있는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세수를 하였다. 별안간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우리 엄마가 꼭 남의 엄마인 것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또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부엌으로 나왔다가 밥상을 들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퉁퉁 부은 눈을 끔벅이며 밥을 먹었다. 눈알이 아프고 뻑뻑하였다. 엄마가 옆에 앉아 그릇에 물을 따라주었다. 그리고는 어디 보자, 하며 내 종아리를 만져보았다. 엄마의 손이 내 빨갛게 부어오른 종아리를 어루만졌다. 괜히 또 눈물이 나왔다.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는데, 밥 먹고 약 바르자, 천천히 먹어라 하며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두 눈에서는 또 주르륵 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또 눈물이 나왔는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연탄재 싸움」중에서
내가 돌아갈 때면 아버지는 항상 나를 따라서 문밖까지 나와서는 밥은 먹었니? 하고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그래, 이제 어서 가 봐라, 차 조심하고······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였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왔던 길을 향하여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뒤통수가 간질간질해졌다. 괜히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가 얼른 사무실로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슬쩍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뒷짐을 쥔 채, 사무실 앞 인도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쑥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뛰다시피 걷기도 하였다. 한참을 온 것 같아 이제는 아버지가 사무실로 들어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그루 작은 나무처럼 서 있었다.
---「엄마 심부름」중에서
어떻든 목욕탕 가는 것은 나에게는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였다. 뜨거운 물에 억지로 들어가 목만 내놓고 앉아 말없이 참고 있는 것도 싫었고, 탕 안의 물을 조금이라도 첨벙거리면 옆에서 야단을 치는 할머니도 싫었다. 그리고 나중에 중학생이 되었는데에도 모른 척 하고 나를 여탕에 데리고 갔던 엄마가 참으로 싫었다. 당시 우리 또래의 아이들치고 엄마와 함께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었으랴. 목욕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앉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무언의 고행은 시작되는 것이었다.
---「목욕탕 풍경」중에서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울컥 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옆에 아버지도 있었고, 형과 동생도 같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아이고, 성철아, 어딜 갔었냐 하고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엄마 품에 안기면서 내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뭔지 알 수 없는 서러움 같은 것이 마구 북받쳐 올랐다. 고개를 드니, 엄마 바로 뒤에 서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나를 보고 있었다. 형은 아버지 옆에 빙긋이 웃으며 서 있었고, 여동생은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잠시 뒤에 아버지는 나를 보고는, 너는 꽁지에다가 줄을 하나 매어놓던지 해야겠다. 이제 그만 가자, 찾았으니 됐다 하면서 다시 엄마를 바라보았다.
---「창경원 가족소풍」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