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노벨문학상을 탄다고 해도,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고 해도,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1등을 한다고 해도, 아니면 밀라노 오페라의 최고 소프라노라고 해도, 이 나라에서 그 풀 먹인 세례식 드레스를 입는 사람들에 비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너희 식구들이 네 남편 같은 사람을 인정해줄 것 같아? 너의 정신병과 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 그 착한 아길라르를? 너희 식구들은 심지어 아길라르를 호적에 넣어주지도 않을걸. 네 어머니가 아길라르를 싫어하는 것까지는 괜찮아.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도 않잖아. 그리고 진실의 순간에는 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아. 원래 그런 거야. --- pp.181-182
아주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자 그제야 희미한 비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내가 방금 자른 것은 손톱이 아니라 비치의 손가락 끝의 아주 작은 살점이란 것을 알았어. 착한 비치, 내가 낫게 해줄게, 울지 마, 안 그러면 내가 널 다치게 했다고 혼난단 말이야. 비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여전히 칭얼대긴 해도 아주 조용해, 비치의 손가락에서 잘려나간 살점이 손톱 끝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야. --- pp.191-192
안 돼, 아구스티나, 그런 건 얘기하는 게 아냐. 뭘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엄마? 그런 거, 여자들만 아는 거, 그리고 창문으로 다가가 내 사촌과 동생들에게, 아구스티나는 여기서 우리와 카드를 하고 싶어해서 밖에 못 나간다, 라고 말한 것은 바로 우리 어머니였어. 무슨 카드요, 여기서 카드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저는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햇빛을 쬐면 출혈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나가선 안 된다고 했어, 그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어, --- p.199
나중에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아구스티나가 말한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자동차 때문도 밤 때문도 첫 데이트 때문도 그 친구가 바지에서 꺼낸 거대한 초 같은 물건 때문도 아니었어. 다름 아닌 아버지가 늦은 시각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 때문이었어. 아버지가 날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어. 전에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어, 전에는 한 번도 그러지 않으셨어. 그 후로 남자들이 영화구경을 시켜준다고 하면 난 늘 수락했어. 그것이 아버지를 불안하게 하고 흥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이번에는 자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리라, 아버지를 조금 더 불안하게 만들리라. 아버지의 화를 부추기되 아주 조금만 부추기리라, 얻어맞을 만큼은 아니고 그때 처음 느꼈던 그 느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조금만 부추기리라. --- pp.248-249
마약 거래상을 미국으로 인도하는 범인 인도 조약과 관련해서 콜롬비아 정부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서 의회가 그 조약을 비준할 게 거의 확실하다고 했더니,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화를 냈고 그러면서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어. 그리고 나중에 레스플라나드 레스토랑에 폭탄이 터졌을 때 내 머릿속에 그 말이 떠올랐지. 아구스티나, 잘 적어놔야 할 거야, 이건 역사적인 복수 선언이니까. 파블로는 이렇게 말했어, 내 재산을 몽땅 퍼부어서라도 이 나라가 통곡하게 만들겠어. --- pp.278-279
어쩌면 그 순간 늘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긴 타인의 성욕에 관해 에우헤니아가 가졌던 일종의 적대감이 튀어나왔는지도 모르지, 또 어쩌면 자기 자신의 성욕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었는지도 모르고, 이상할 것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제부와 동생 모두 다른 사람들의 성욕을 비난하고 단속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두 사람은 그런 그늘 속에 함께 들어가 있었고, 거기서 의견이 일치했으며, 공범자였어, 그리고 그것은 제부나 동생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둥이고, 어쩌면 혐오증의 대들보였는지도 몰라, 마치 나머지 가족의 성욕을 통제하는 사람이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대물림을 통해 알고 있는 것 같았어, --- p. 287
우리 모두는 심장에 총을 맞은 것처럼 숨을 삼켰고,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네, 곧이어 카를로스 비센테 1세는 여전히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카를로스 비센테 2세에게 발길질을 해대면서, 그 아이가 했던 말을 흉내 냈어. 어머나, 예쁘기도 해라, 어머나, 예쁘기도 해라, 염병할 남자답게 말하랬지, 호모새끼처럼 하지 말고.
--- p. 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