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무인정권, 현대사의 군사정권, 그리고 드라마 ‘武人時代’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은 1170년(의종 24년)에 일어난 무신정변에서 시작하여, 1270년(원종 11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무려 100년 동안이나 계속된 정권이다. 국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무인 출신의 집권자들이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100년 동안이나 고려왕조를 통치한 것이다. 이러한 무인정권은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전 역사를 통해서도 매우 독특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으로써 충분한 소재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회 대중적 관심이 적었다. 이 시대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가 미진했던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는 무인정권 자체를 다루는 정치사 분야의 연구만 해도 수없이 많은 논문이 나와 있고, 사회 경제사 분야의 연구까지 계산하면 학계의 연구성과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읽을만한 역사소설이나 볼만한 사극 한편이 없었고, 일반인들은 기껏해야 현대사의 군사정권과 비슷하게 이해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금년 초부터 KBS 1TV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 ‘무인시대’는 그래서 일단 주목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을 정면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대중 교양물은 영상이건 문자이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런 이유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해야할 점도 많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무인시대’를 보는 일반 대중들은 자신들이 실제 경험했던 현대사의 군사정권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의 군사정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나 혹은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나, 드라마 ‘무인시대’는 그 군사정권과의 연상작용이 불가피한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내용도 각자의 위치에서 편의대로 해석하거나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호?불호를 극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다는 뜻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서, 이제 참여정부가 시작되어 군사정권이 끝난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시점에 와서 왜 하필 ‘무인시대’ 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의 어두운 기억이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제야 군사정권이 주목받을 기회가 왔다고 반겨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후자 쪽의 시선을 특히 경계한다. 군사정권이 끝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사회 도처에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세력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드라마에서는 반드시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부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과민한 반응일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드라마 ‘무인시대’의 내용이나 전개과정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민감한 정치 사회적 메시지일 수 있다. 전문 학술연구에서는,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현대사의 군사정권을 결코 미화시키지 못한다. 이 시대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라면 이것은 기본적인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한 드라마는 다르다. 일반 대중들의 역사인식은 옳든 그르든 TV의 사극에서 영향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은 분명 아니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무인시대’의 내용 전개는 신중해야 한다.
드라마 ‘무인시대’의 내용 중에서, 무신란을 성공시킨 세 거두 중의 한 사람인 이고(李高)가 당시 사대관계에 있던 금나라에 대해 자주노선을 표방하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움직임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 이고가 문신귀족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기도를 한 적은 있었지만 왕위 찬탈만은 결코 도모하지 못한다. 이고 뿐만 아니라, 100년 동안의 무인집권기간 동안 10여 명의 집권무인들이 등장하지만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인은 한 명도 없었다. 가장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했던 최충헌과 최이(최우) 부자도 그런 욕심만은 입밖에 드러내지도 못했다. 다만 이의민이 왕위에 오르려는 꿈을 꾸었다는 역사기록이 있지만, 이것도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조작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개진되어 있다.
그리고 무인정권이나 군사정권은 보통 대외적으로 강경 노선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주노선인가는 그 시대상황 속에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부분 정권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몽골의 침략에 맞서 40년 가까이 항쟁한 최씨 정권이 바로 그랬다.
드라마 ‘무인시대’를 보면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이나 무인 집권자에 대해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지 불만이다. 특히 고려시대가 그렇다. 로마사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중국사의 항우?유방, 일본사의 도쿠카와 이에야스 등, 그런 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이 남긴 말 한마디나 사소한 일화까지 알고 있으면서, 우리 역사의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우리 역사를 상징할 만한 인물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캐릭터도 없다. 우리 역사의 인물들을 대중화시키는 일은 역사학자의 소임만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발벗고 나서야 될 일이다. 조선시대의 세조 수양대군이나 단종,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의 인물이 그런대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박종화나 김동인 등 뛰어난 작가들에게 힘입은 바 컸다.
드라마 ‘무인시대’를 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배경으로 한 성실하고 잘 짜여진 역사소설 한편쯤 먼저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지금 기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