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바라옵건대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이 다한 후
나의 사랑하는 그대의 팔에
또다시 안길 수 있기를!
나의 고향집 가까이
조용한 숲 주위에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우리 두 사람은 오래오래
서로를 끌어안지 않은 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달콤하고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었네.
“피곤하세요?”
윌리엄이 말했다.
눈을 비비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리라.
“아니요.”
엠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기한 것들을 너무 많이 봤더니 눈이 좀 놀랬나 봐요.”
안경을 다시 쓰려고 하는 손에 손가락이 걸렸다.
윌리엄의 손이…부드럽지만 조금은 강인하고 힘 있는 손가락이… 안경을 빼앗아갔다.
돌려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쓰게 하지 않겠다는 듯.
그리고 맨얼굴을…안경을 벗은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여 달라고 무언의 투정을 부리듯 두 뺨에 손바닥을 포개었다.
차가운 손바닥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은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 때문이다.
윌리엄의 손바닥과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신중하게, 그리고 살며시 윤곽을 따라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광대뼈 주위를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드럽게 감쌌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안경을 벗어 더더욱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 속에 윌리엄의 얼굴이 다가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가까이에 머무르며 눈에 황금색 눈썹이 드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엠마도 눈을 감았다.
입을 맞추는 순간, 엠마는 더없는 행복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찾아들어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는 두터운 가슴과 넓은 어깨와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신사다운 복장과 태도에 가려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윌리엄은 멋진 체격의 건장하고 듬직한 청년이었다. 그것은 살며시 맡긴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왔고,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안정감에 엠마는 취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고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음을 느꼈다.
그의 팔에 포근히 감싸이듯 안겨있자니,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가 되어 안전한 둥지에 살포시 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있으면 그 어떤 어둠도, 바람도, 마물도, 두려운 운명도, 결코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런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둘은 그저 조용히 서로를 껴안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그 사람과 이렇게 함께 있음을,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한없는 축복으로 여기며 서로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곳이 바로 낙원.
“엠마 씨라는 분이구나!”
비비안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근사한 이름이다! 윌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집안 사람이야? 어떤 분이셔?”
“어떤 분이라니….”
윌리엄은 말끝을 흐렸다.
“있지, 있지,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공작? 아니면 백작?”
“아니라니까.”
“형이 어떻게 그런 대가의 사위가 되겠어? 기껏해야 준 남작가문이겠지.”
“그러니까….”
윌리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셨다.
“그게 아니라니까. 엠마는 스토너 선생 댁의 메이드야.”
방금 전보다 한층 더 무거운 공기가 방을 내리눌렀다.
“메이드?”
아서는 난생 처음 듣는다는 듯 그 단어를 되뇌고, 시끄럽던 비비안은 입을 떠억 벌린 채 말을 멈추고, 콜린은 그레이스의 허리에 매달렸다.
“그야….”
윌리엄은 말했다.
“지금은 메이드지만….”
“거짓말이지?”
아서가 물었다.
“거짓말일 리가 없잖아.”
“진심이야?”
“진심이고말고.”
“제정신이야?”
“질려버리겠군. 아무리 형이라지만 그 정도로 상식 이하일 줄은 몰랐어.”
“난 그런 사람 절대 반대야!”
비비안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사람한테 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형이 제정신이 아니란 건 꼬마 애들도 다 알거라고!”
“어디에든 예외라는 게 있는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왜 그러는 거야? 누가 좀 말려봐. 오빠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
두 동생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발언수위 또한 과격해졌다.
그레이스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겁을 집어먹은 콜린은 떨어지려하지 않고 그레이스한테 더욱 꼭 매달렸다.
하킴은 끝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형제들의 모습을 살피기만 할 뿐.
“오빠는 우리 집안에 먹칠을 할 셈이야? 너무하잖아. 우리들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형은 늘 그런 식이야. 생각도 편협하고 자각능력도 부족하다고.”
“너희들한테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어.”
“없긴 왜 없어!”
“우린 엄연히 존스가의 자식들이야.”
“비비, 넌 좀 가만있어!”
“내가 왜? 나도 할 말이 있단 말야!”
“왜들 이리 소란스러우냐?”
나지막한 음성에 아서와 비비안이 허둥지둥 뒤돌아보니,
“돌아오자마자 싸움들인 게냐?”
아버지 리처드 존스가 서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