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벌써 흑을 쥔 손이 잽싸게 매처럼 날아가 퀸을 들고 뒤로... 아니다! 우리라면 분명 소심하게 뒤로 후퇴시켰을 말을 오른편으로 한 칸 더 전진시킨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감탄한 나머지 사람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수가 무슨 도움이 되는지 사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퀸은 싸움터 한쪽에서 위협하는 것도 엄호하는 것도 없이, 전혀 의미 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서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적들이 늘어서 있는 한가운데서 고독하고 도도하게 서 있었던 퀸은 일찍이 없었다. 장 역시 자신의 무서운 적수가 이 수로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어떤 함정으로 자신을 유혹하려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오래 심사숙고한 끝에 조금은 석연찮은 마음으로, 그는 거듭 무방비 상태에 있는 폰을 치기로 결심했다.
--- p.31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낯선 이에게 감탄했으며, 심지어는 그가 승리해서 가능한 한 인상적이고 천재적인 방법으로 몇 년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려 온 참패를 마침내 자신, 쟝에게 안겨주기를 바랐었다고 고백해야 했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을 것이며, 마침내 구경하고 있던 악의에 찬 군상들, 이 시기심 넘치는 패거리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마침내...
--- p.42
단편 모임집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세편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의 짧지만, 쥐스킨트 문학의 묘미와 깊이를 싶분 보여준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자신의 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번민하고 고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논평으로 본의 아니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평론가, 두 사람이다.
평론가는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백팔십도 뒤집어,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쓴다.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말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이 웃지 못할 모순과 의극 앞에서 독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단편 모임집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세편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의 짧지만, 쥐스킨트 문학의 묘미와 깊이를 싶분 보여준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자신의 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번민하고 고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논평으로 본의 아니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평론가, 두 사람이다.
평론가는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백팔십도 뒤집어,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쓴다.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말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이 웃지 못할 모순과 의극 앞에서 독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 pp.92-93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 p.89
그러나 혹시-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본다-(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활동일 수 있다. 의식 깊이 빨려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 p.87-88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로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분명 헛될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 p.17pp.1-12
그 젊은 여류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이으킨다.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깊이에의 강요]
--- p.12
그 순간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비탄이 나를 사로잡는다. 문학의 건망증, 문학적으로 기억력이 완전히 감퇴되는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자 깨달으려는 모든 노력, 아니 모든 노력 그 자체가 헛되다는 데서 오는 체념의 파고가 휘몰아친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단 말인가? 모든 것이 무(無)로 와해되어 버린다면, 대관절 무엇때문에 무슨 일인가를 한단 말인가?
--- p.84
「한쪽 귀퉁이에 <아주 훌륭하다>라고 적고 느낌표를 힘주어 찍자. 그리고 앞으로 잎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장엄하게 깨닫게 해준 저자에게 몇 마디 경의를 표할겸, 이 글이 내안에서 불러일으킨 생각의 흐름을 요점만 기록해 두자」그런데 이런! <아주 훌륭하다!>라고 긁적거리기 위해 연필을 기울이자 내가 쓰려는 말이 이미 거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기록해 두려고 생각한 요점 역시 앞서 글을 읽은 사람이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내개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내 자신의 필체였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 p.83-84
「한쪽 귀퉁이에 <아주 훌륭하다>라고 적고 느낌표를 힘주어 찍자. 그리고 앞으로 잎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장엄하게 깨닫게 해준 저자에게 몇 마디 경의를 표할겸, 이 글이 내안에서 불러일으킨 생각의 흐름을 요점만 기록해 두자」그런데 이런! <아주 훌륭하다!>라고 긁적거리기 위해 연필을 기울이자 내가 쓰려는 말이 이미 거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기록해 두려고 생각한 요점 역시 앞서 글을 읽은 사람이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내개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내 자신의 필체였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 p.8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