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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

서야 | 가하 | 2009년 11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3 리뷰 31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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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06g | 128*188*30mm
ISBN13 9788993883091
ISBN10 899388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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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봐요.”

한쪽으로 난 언덕길로 내려선 도운이 그녀에게 팔을 뻗었다. 좁게 비탈진 곳이라 그의 손을 잡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는 길이었다. 단단히 땅을 디딘 도운이 고개를 들었다. 햇살이 닿은 그의 입술이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뜻하지 않은 그의 미소에 한해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적응하기 힘든 남자다. 무뚝뚝하던 첫인상은 어디로 갔을까? 잘나가는 여행 작가의 거만한 모습을 떠올리던 한해가 잠깐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어느 순간, 도운을 보면 그렇다. 낯설고, 당혹스럽고,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쉽게 손을 뻗지 못하는 한해를 도운은 느긋이 기다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가 좋았다. 성미 급하게 타오르고, 성미 급하게 꺼져버리는 그런 건 그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녀답게, 그녀다운 모습으로 그렇게 천천히 다가오길 바랐다.

“천천히 와요. 당신이 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찌르르, 찌르르…….
둘 사이로 뻗은 높은 나무 위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애타게 제 짝을 찾아댔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녀석은 목이 터져라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를르…….
따가운 봄 햇살 속에서도 서두르는 법 없이, 도운은 차분히 그녀를 기다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해의 손이 그에게로 향했다. 제게 뻗어진 손을 도운이 단단히 붙잡았다.

“우와!”

도운을 따라 흙길을 따라가던 한해가 탄성을 질렀다. 평범한 길을 지나 비탈진 곳으로 들어서자 소담스럽게 핀 매화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쪽으로.”

먼저 나무 사이로 들어선 도운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진한 꽃 향이 목덜미를 스친다. 나무 아래, 도운의 곁에 선 한해가 멀리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았다. 머리끝으로 살랑이는 봄바람 속에 은은한 향이 바람결에 묻어왔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그의 향을 한해는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도운은 부드럽게 귀 뒤로 쓸어넘겼다.

“사랑해, 조한해 씨.”

그리고 그녀가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아직도 사랑이 어려운 여자. 조심스럽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두렵지 않게, 떨리지 않게…….
넘겨진 머리카락 너머 하얀 목이 드러났다. 마치 그를 유혹하듯 길게 뻗은 목덜미에 도운은 참지 못하고 키스 한 자락을 남기고 말았다. 박 속 같던 목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새빨개진 목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한해의 수줍음에 저도 모르게 불끈, 힘이 실렸다.
이대로 함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당장 제 집에 옴팍 실어놓으면…….
도운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 손길을 따라 순순히 향하는 한해의 입술이 유난히 붉다.
찰랑, 찰랑…….
비탈길 너머 흘러가던 강물이 연인들의 설렘에 요란스런 소리를 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소리 속에 도운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섰다. 짭짤한 바다내음 같기도 하고, 무뚝뚝한 나무 향 같기도 하고, 알싸한 바람 향기 같기도 하고…….
한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아랫입술을 핥던 도운의 혀가 그 위로, 뺨 위로, 목덜미로 샅샅이 순례를 나섰다. 간질거리는 혀의 감촉에 한해가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세차게 뛰어댔다. 감겨진 눈꺼풀 위로 도운의 입술이 닿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깃털 같은 속삭임으로 도운이 물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한해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진실한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뛰지 않았던 심장이 이렇게 뛰어도?
한 여자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워도? 그 여자가 아님,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이 들어도? 그래도, 제 사촌동생을 가슴에 품었다 해도, 이 마음이 멈추어지지 않아도……,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한해가 발뒤꿈치를 올렸다. 키가 한참 커, 한껏 뒤꿈치를 올려도 쉽게 입술이 닿지 않았다. 불안한 도운의 시선에 무어라도 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뒤로 물러서 있었으니까, 언제나 작은 장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괜찮다는 말 대신, 소심한 그녀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지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작은 키스라도 전해주고 싶어 거의 펄쩍 뛰다시피 오른 한해가 도운의 입술에 제 입술을 묻었다. 뒤뚱거리는 그녀를 도운이 재빨리 붙들었다.
하아…….
가쁜 숨이 흘렀다. 서투르게 다가온 그녀의 입술을 깨문 도운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괜찮다고 대답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만큼 그녀가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까.
괜찮을 거다, 이만큼 사랑해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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