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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대산세계문학총서-8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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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746쪽 | 922g | 153*224*40mm
ISBN13 9788932020099
ISBN10 89320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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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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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문항심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도서관학과 일본문학 전공으로 마기스터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자유대학 도서관과 훔볼트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남독일에 거주하면서 독일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패배자들의 도시』『미무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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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으나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간식을 다 먹고 나서 거실로 간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장벽이 열렸어요.” 바바라가 라디오를 틀었다. 국경에서 사람들이 환호하고 쿠담에 트라비 자동차가 밀려들고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심각하게 라디오를 듣는 모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놀라움이 사람들의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넘쳐나고 있었다. 이상향의 출현에 절대적으로 압도된 인간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환호가 아닌 감동에 휩싸인 엄숙함으로 그들은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라디오 드라마나 듣자고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지 않냐”고 랄프가 좌중에 물음을 던졌다. 그는 분명 라디오 드라마라는 말을 썼다. 예전에도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의 사건처럼 꾸며서 소신 없는 청취자들을 속여 넘긴 사례가 있지 않았냐고 했다. 오손 웰스가 만든 「우주전쟁」의 라디오 극이 불러온 혼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었다. 모임의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듣던 것이 라디오 극이긴 하지만 잠시나마 베를린 장벽이 정말로 무너졌다고 믿었다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랄프가 ‘개발 학년의 실천을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 때 레나의 큰오빠는 속아 넘어간 자들의 정신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나가고 나서 5분 있다가 바바라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부엌으로 가서 몰래 라디오를 틀었다. 2분 후 다시 담배 연기로 뒤덮인 거실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뭔가 달라져 있었다. 민권운동적으로 뭉친 무리들은 교육개혁에 관한 토론을 중단하고 물었다. “뭡니까?” “아무것도 아녜요.” 바바라가 대답했다. “그런데 똑같은 라디오 드라마가 전 방송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어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 pp.115~16

그가 알게 된 사실은 그들 일곱 명이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여정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소망, 즉 그들에게는 비자연적이기 짝이 없는 자연이 준 성(性)을 바꾸는 것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놀림과 단절, 심리 상담, 정신 치료, 각종 실험, 자해, 자살기도, 그리고 쉴 새 없는 불행감으로 그들의 삶은 얼룩져왔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소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당국의 허락하에 수개월 예정의 성전환 치료가 시작되었다. 성전환을 실시할 수 있는 병원은 단 한 군데, 하나의 의료 팀뿐이었다. 그러나 그 의료 팀은 지난 늦여름 이후 서독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뤼디거 위르겐즈 박사 앞에 선, 한때 남자였으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일곱 명은 미완성이었다. 그들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남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버려졌을 뿐이라고요!” 한 명이 소리쳤다. 몸집은 작았으나 가느다란 입술과 작은 눈 때문에 남자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얼굴은 여자처럼 꾸며져 있었다. 가슴과 엉덩이, 목소리는 남자였고 부드럽고 나긋한 몸동작은 여자였다. “서독 병원에서는 서독 의료보험이 없는 우리를 받지 못하겠대요.”
[……]
“모두가 자유를 얻었는데 우리만 아닙니다.” 까칠한 수염의 여자가 남자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뤼디거 위르겐즈 박사가 지난 몇 주간 들었던 말 중 가장 슬픈 말이었다. --- pp.208~09

루츠 노이슈타인 경감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사태를 분석해보고 있었다. 이런 사건은 정말 싫었다. 이런 시국에 서독 국민을 취조한다는 것은 큰 사고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서독 국민이라는 호칭도 쓸 수 없었다. 독일인 아니면 독일 국민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취조해야 하나? 그들은 인권이라는 게 있다는데 곧 통일이 이루어지면?통일이 되긴 될 것 같아 보였다?루츠 노이슈타인은 독일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곤경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구타하거나 고함을 쳐대거나 잠을 안 재운다거나 협박을 한다거나 물 한 방울 주지 않는다거나 눈을 부시게 한다거나 등 뒤에서 왔다 갔다 맴돈다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조사는 해야 했다. 증거는 막대하게 확보되어 있었다.
어제 취조에서 그는 이 슈니델이라는 작자에게 보석Jewel 담배 한 대를 권했다. 슈니델은 담배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빨더니 진저리를 치며 바로 꺼버렸다. 또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경점 계산대에도 사탕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는 서독에서는 취조실에서도 무료 담배 한 대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권 때문일 것이다.
루츠 노이슈타인은 담배를 구하러 지하철의 나무 의자에 몸을 싣고 동물원 역으로 갔다. 그는 역에서 내려 자동판매기에서 말보로 한 갑을 꺼낸 다음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 pp.538~39

수전은 기사를 펴내겠?고 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베리 인터레스팅하고 마블러스하고 어메이징하고 그레이트하고 원더풀하며, 만일 미국인에게 일어난 이야기였다면 당장 실었을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레오 라트케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했다. 독일에서는 이국적인 곳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레오 라트케의 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이탈리아 사람이거나 미국인이었거나 이스터 섬의 주민이었다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레오 라트케는 분노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 무슨 잘난 척이며 거만함이란 말인가! 『뉴요커』지의 명성에는 확실히 과도한 거품이 있었다. 1백 장을 넘는 면수를 가지고 매주 한 번씩 발행되는 『뉴요커』지는 지식인들을 자기 발 앞에 꿇려 획일화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뉴요커』지였다. 그 신문에 실린 글귀를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읊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파티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선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이 이기는 게 아니라 『뉴요커 』지에서 따온 의견이 이겼다.
[……]
이곳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에드 코크가 공항에까지 나와서 우리 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환대의 인사를 할 리도 없다. 그는 여기서 아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도 한때 아무것도 아닌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단 하나의 방향, 즉 상승 방향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레오 라트케였던 것이다. --- pp.688~90

레나는 이제 달리는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차창 밖의 깜깜한 밤을 응시했다. 저 멀리 마을의 노란 불빛이 보였다. “인생은 참 이상해.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말이야, 안 좋은 일이긴 했어도 그것 때문에 노래를 쓰게 된 거거든. 결국 끝에 가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야. 하지만 경찰이 학교에 출동한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피해만 줬어. 그 일로 인해서 그 다음부터 남자에 관한 일이라면 아주 예민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파울헨도 서독으로 넘어가게 된 거고. 또 그래서 오빠도 이 자동차를 가지게 된 게 아니겠어. 우리가 지금 함께 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난 행복해. 인생은 생각과는 전혀 엉뚱하게 흘러가지만 결국에는 항상 행복하게 되는걸.”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는 어쩌다가 한두 대 있었을 뿐이다. 길에는 오롯이 그들 둘이었다.
“내가 1년 전에 한 말, 혹시 생각나? 삶은, 내 자신의 삶도 그렇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고 한 말. 삶은 반짝거리는 우연에 의해 지배당하는 거라고. 어쩔 수 없어. 내가 그 말을 한 곳이 어딘지 아직도 기억해?”
“그럼. 너 그때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 타고 나온 날이었잖아.”
“그런데 희미하게 깜박거리는 부분을 조그맣게 잘라서 보면 그 빛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다시 전체를 보면 그 반짝임이 잘 보이게 돼, 내 말 이해하겠어?”
“잘 모르겠는데.” 운전에 집중하던 큰오빠가 대답했다.
“우리를 예로 들면, 우리 차에서 나오는 불빛은 하나뿐이야. 하지만 뉴욕에선 수많은 자동차의 불빛이 하나로 겹쳐져 심지어 달에서도 그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하지. 그리고 인생도 그렇게 순간순간 빛난다고 생각해. 우연이 조금만 반짝인다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지난해 같은 경우를 봐. 나한테만 많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니고 다른 사람 모두가 그랬어. 그러면 빛이 나는 거야. 그리고 그 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아주 밝은 빛이 될 거야.”
--- pp.7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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