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결정은 심리전이다
나는 주택 및 건물에 대한 매매나 전월세 등의 중개업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실 간판에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어서인지 일주일에 한두 분 정도는 주택 거래를 문의하러 들르신다. 물론 그때마다 정중하게 돌려보내긴 하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어느 따스한 봄날,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힘들게 사무실 유리문을 밀고 얼굴만 내밀더니 “집 좀 내놓으려고 하는데”라며 말을 건네셨다. 나는 어르신이 다칠까봐 얼른 안으로 모시면서 녹차 한잔을 대접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 쉬운 단어를 골라가며 중개업은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으나 이 할머니, 들은 체도 안하신다.
“집값은 1억 원이고, 십 원 한 장 안 깎아줄 거야. 살 사람 있으면 소개나 시켜줘.”
다른 부동산에 가보시라고 계속 내 뜻을 전달했지만 동문서답만 반복하는 할머니. 결국 항복한 내가 물건을 받겠다고 한 뒤에야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셨다.
마침 L사장님이 오시기에 어이없으면서도 재미있는 이 에피소드를 들려드렸다.
“허허, 재밌는 분이네. 그런데 그 집이 어디 있는 집이야?”
내가 주소지를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아, 그 할머니! 뉘신가 했더니. 내가 잘 알지” 하신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매년 봄이면 인근 부동산을 돌면서 자신의 집을 1억 원에 내놓는다고 한다. 실제 시세는 약 4천만 원 수준인데 1억 원에 내놓으니 팔릴 리도 없거니와, 중개사들은 ‘이 할머니 또 이러시네’하며 시큰둥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늘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시니 시장에서 그 집의 가격은 1억 원이 되어 있었다. 한 3년 전에는 정말로 1억 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는데 할머니가 1천만 원을 깎아주지 않아 거래가 불발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건 매입가보다 매도가
“마침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잼스야. 너희 집 시세는 얼마나 하냐?”
“5억 원인데요.”
“만일에 너한테 5억 원이 있다면 그집을 사겠니?”
“사죠. 투자 종목 중의 하나로 가져가도 괜찮으니까요.”
“그 시세에서 1억을 더 내라고 하면 사겠니?”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 가격이면 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말이다, 1억 원을 올린 대신 집을 최고급으로 싹 리모델링했다는 조건이라면?”
“…….”
안 산다고 생각한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이걸 두고 재산의 주관적 가치라고 하지.”
사장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부동산은 일반적인 ‘물건’과는 달리 매도자와 매수자의 가치평가 차이가 크다. 이는 매도자가 부동산에 갖는 애착이 물건 가격에 반영되는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매도자는 객관적인 감정평가액 외에 물건에 대한 애착과 마진이라고 볼 수 있는 수익금을 붙이므로 가격이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그러나 매수자는 객관적인 물건의 가치를 중시하므로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을 신뢰하지 못하고 낮추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물고기형 그래프를 통해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로스(Ross)인데, 보통 ‘로스의 가격 조정 이론’이라고 부른다. 매도인은 높은 가격에서 점차 가격을 내리기 시작하고 매수인은 낮은 가격에서 높은 가격으로 조정하기 시작해 결국 두 라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이렇게 같은 물건을 놓고 매매 당사자 간 가치평가가 다를 때 이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중개사다. 하지만 중개사가 없다고 해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도자와 매수자는 서로 간의 가격을 절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좁아진다. 이 기간을 가격조정기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격조정기간이 짧을수록 매도자에게 유리하고, 조정기간이 길어질수록 매수자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이라고 칭하는 주택 및 상가시장의 경우 공급자의 초기 분양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이 등락하면서 시장 거래가격을 생성한다. 하지만 그 근원을 따라가보면 이는 상당히 주관적인 가치이며, 그것을 반영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부동산 시장가격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표준화된 가격이란 없으며, 동일한 물건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이 등락하게 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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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동산을 싸게 사는 법
몇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에서 마치 높은 침대처럼 쌓아놓은 현금 50억 원을 보여준 적이 있다. 호사가들은 그 장면이 과장되었다며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나는 10억 원의 현금을 실제로 본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5kg짜리 사과 상자에 1만 원짜리 지폐를 넣으면 정확히 2억 원이 들어간다. 이 박스 다섯 개면 10억 원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사과상자 하나당 20kg, 10억 원이면 75kg이니 어마어마한 무게다.
만일 현찰 10억 원을 실제로 본다면 어떨까? 아마 잠시 얼어붙었다가, 이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동원했을까 의심이 들거나 이중에 한 뭉텅이쯤 없어져도 모를 거라는 온갖 생각이 다들 것이다.
여러분이 100억 원대의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누군가가 계약금으로 현찰 10억 원을 들고 왔다. 그리고 90억 원에 팔라고 협상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가정으로만 볼 때는 판다, 혹은 안 판다가 50대 50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큰 물건을 매물로 내놓아본 사람이라면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아주겠다는 브로커가 더 많이 붙는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부동산의 가격이 높을수록, 덩어리가 클수록 이른바 브로커가 많이 생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건의 가격이 높을수록 그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수요자의 수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매수할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보니 이 물건에 관심을 가질 수요자를 찾아 협상테이블에 앉히기도 힘들뿐더러 적정한 가격에 매도하기도 쉽지 않다. 한정된 수요자는 대부분의 브로커가 매도자보다 매수자편을 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매매금액이 클수록 협상폭도 커지므로 매도자가 급하다면 정말 시세의 절반 가격에 처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보니 이런 물건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브로커가 생겨나고, 브로커는 악성 루머를 퍼뜨려 주위의 시세를 한 번에 내려놓거나 매도자의 급한 사정을 역이용해 매물가격을 ‘후려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난다. 그래서 고가 부동산을 보유한 매도자는 이런 피해를 막으려고 물건을 중개업소에 내놓지 않고 암암리에 그들만의 커넥션이 있는 브로커를 고용해 물건중개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시기에 나타나는 매수자는 실제 구매의사를 가진 경우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중개사나 브로커가 만들어낸 ‘가짜 매수자’가 대부분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설사 좋은 물건임이 확실하다해도, 그물건의 가격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작업단계라고 보면 된다.
현찰은 힘이 세다
어느 날 아는 분이 100억 원짜리 물건을 70억 원에 살 수 있게 도와준다면 커미션으로 5억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검토해보니 내가 보기에 이 물건은 시세가 70억 원인 물건이었다. 매도자는 매수자가 당연히 깎을 것을 예상하고 100억 원에 물건을 내놓은 것이었다.
만일 내가 욕심을 부렸다면 시세대로 사주고 수수료로 5억 원을 간단히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매도자의 대리인을 만나 매수 의사를 전달하며 가격을 조절해줄 것을 당부했다. 처음에는 응답이 없었으나, 3개월을 주시한 결과 70억 원까지 매도 금액이 내려왔다.
이후 나는 매매 당사자 간 만남을 주선했고, 그 자리에 현찰 10억 원을 들고 나갔다. 협상 테이블 옆에 이동수레 두 개에 가득 든 현금 10억 원을 보게 되면 매도인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그 부동산은 62억원에 매매가 성사되었다. 현금을 보여준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8억 원을 더 깎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은 공산품처럼 소비자가격이 명시돼있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공시지가 혹은 감정평가 금액이 절대적이지도 않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고 깎는 게 값인 것이다. 즉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가격에 매매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애초 100억 원에 나온 부동산을 62억 원에 매수했다면 매수자입장에선 앉은 자리에서 38억 원을 벌고 들어간 셈이라 큰 이득이고, 매도인도 최소금액은 받았기 때문에 쌍방이 만족한다. 이 거래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중개사도 매수인도 아닌 바로 현금이다. 현금
자체가 매수인의 신용이고 매수인의 확고한 의지를 증명하는 도구인 것이다.
(후략)
---pp.12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