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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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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569g | 144*198*30mm
ISBN13 9788961889834
ISBN10 896188983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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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눈보라가 흩날리는 어느 국도에 차를 세워두고 차창 밖을 한참 동안 응시했습니다. 자유롭게 흩어지는 저 눈보라.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 없고,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 곳으로 다시 가고 싶었습니다. 이질적인 사회 속에 나를 던져놓고 먼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객체로 만들어놓고 이질성이 나와 함께 섞이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여행자이기보다 나는 좀 더 고독한 이방인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 p.6, 프롤로그 중에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터키, 미국, 스웨덴, 한국. 일곱 명 속에 다섯 나라의 국적이 있다. 생김새, 문화, 성장 배경, 언어, 모두 달라도 너무 다르다. 누군가 우리를 본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모인 그룹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다름’은 오히려 우리를 설레게 한다. 나는 이 ‘다른’ 눈동자들 속에서 앞으로 2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긴장하는 가벼운 흥분을 본다. --- p.20, 8월, 첫 만남 중에서
“얀테의 법칙 알아?” 하고 오스카가 묻는다. “얀테는 덴마크 소설에 나오는 어느 마을 이름인데, 그 마을은 아무리 우수하고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 소설을 읽으면 안테가 말하는 법칙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나는 들려달라고 재촉한다.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 p.67, 안테의 법칙 중에서

스웨덴 여성들의 얼굴에는 고전성과 현대성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이성을 유혹하기에만 딱 효과적일 것 같은 값 싸고 요란스러운 분위기는 거의 없다. 그녀들은 귀여우면서도 건강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세련되다. 이 독특한 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스웨덴에 있는 동안 참 궁금했다. 미모야 타고 나기도 하겠지만 스웨덴 여성들의 미는 그 사회가 빚어낸 요인이 클 거라는 생각이 한편 들기도 하다. 이를 테면, 남녀평등에서 오는 자신만만함, 남성들의 존중과 지지에서 오는 여유로움, 사회민주주의의 페미니스트적 건강함과 자유로움. 이런 사회적인 환경이 스웨덴 여성들을 첨단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라나는 여성들과 다르게 키우는 것 같다. 그들은 분명히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것보다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독립적인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 p.78, 프레이야의 후예들 중에서

내 주변에 사랑이 불꽃처럼 터지고 있다. 디나도 데스피나도. 어쨌거나 데스피나에게 행복한 표정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시공간에서 고독한 두 영혼이 우연과 필연의 우여곡절 끝에 만났으니 그 희귀한 확률을 축복해줘야 할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 ‘절규’의 시간인가 보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 데스피나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그 소리를 듣는다. 외침이 끝나자 데스피나는 시선을 떨어뜨리고 티스푼으로 녹은 아이스크림을 싹싹 긁어 먹는다. 다 먹은 빈 그릇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놓고 양손을 깍지를 끼고 나서 잠시 그 상태로 나를 본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을 끄고, 문 쪽으로 가서 걸리지 않게 문을 살짝 밀어 닫고는 책장 쪽으로 가 서성인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리고 책장에서 책을 찾는 시늉을 하다가 흘끔 날 돌아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두 손을 몇 번 비비더니 다시 깍지를 낀다. 게토의 천정이 내 머리 위로 낮고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데스피나는 더 비밀스럽고 더 사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싶은 눈치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지했었다. 안드레아스와 요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데스피나의 눈빛은 한쪽이 따로 떨어져 나간 것처럼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그래, 데스피나, 이제야 너의 본론이 시작되는구나. --- pp.106~107, 콧수염을 단 데스피나 중에서

이 무개성의 시대에서 카차는 열정을 포기해버린 듯했다. 어딘가에 이 세상과 다른 왕국이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망명할 듯한 위험한 도주자의 눈빛이 베레모의 챙 아래에 항시 도사리고 있었다. 카차의 이상이 비록 허망하게 흩어질지라도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야반도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의 용감한 연인 디나는 이 고독한 몽상가에게 시종일관 뜨거운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카차를 향한 디나의 눈빛에는 초지일관한 열정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사랑하는 남성과 있을 때는 평상시보다 몇 배나 더 강하게 빛났다.
카차를 만난 이후로, 내 머리 속에 늘 존재했던 강렬한 사랑의 미학은 이 두 몽상가들만이 감행할 수 있는 도주와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들이 세울 작은 왕국을 지치지 않고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 pp.120~121, 아나키스트 카차 중에서

“눈 올 때 설악산 올라간 적 있어?”
“그럼.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고 올라간 적 있지.”
“설악산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지?”
“음, 뭐니 뭐니 해도 가을!”
니콜라스의 등 위에 눈이 쌓이고 그 눈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니콜라스는 말없이 달린다. 그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렇게 외친다.
“가을의 설악산이란 말이지! 꼭 가볼 거야!”
오 니콜라스. 내 심장이 갈구하는 마법의 산. 그래, 설악산에 오렴. 넌 반드시 다시 와서 진짜 설악산을 봐야 해. 설악산도 널 보면 반가워할 거야. 그렇게 우리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웁살라의 눈 내리는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달리는 두 심장은 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의 설악산을 갈망하고 있었다. --- p.129, 눈 위를 달리는 두 심장 중에서

그런데 한국 여성들은 점점 현대로 접어들면서 쿨하고 용감한 여성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애교 떨며 앙탈을 부리거나 성형을 해서라도 무조건 예뻐지고 보려는 여성으로 퇴락해버렸다. 그런데 젊은 시절 우쭐대던 한국 여성들도 나이가 들면 이 애교 전선에서 소외되어 '아줌마' 대열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한국의 '아줌마'는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 전통적인 현모양처와 그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권력의지가 터져 나오면서 탄생한 쌍생아의 현대적인 이름이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한국 여성은 사회적 지위는 약했지만 집안에서는 목소리가 컸다. 한국 여성의 인내와 강인함은 사회적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남편을 쥐고 흔드는 식으로 고작해야 가정 내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략) 그러니까 한국 여성에게는 두 가지 내부 모순이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길들여진 전통적 아내의 유순함과 집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기가 센 모습. 그런데 이 두 모습은 모두 개방적이 아니라 폐쇄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폐쇄적인 주도권은 사회적으로 표출되어 존경받지 못하고 고작 가정 내 권력으로 통한다. ('서울댁'이나 '광주댁'보다도 개성 없고, '거시기'보다 정체성은 있으나 '철면피'나 '막가파'같이 경멸적인 뉘앙스가 다분한) '아줌마'세력은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아줌마들의 연대 의식으로 자족하는 헤게모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자초했건 아니건 모두가 숨어 지내는 겁약한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 pp.170~171, 스웨덴에서 한국 여성을 생각하다 중에서

지겹도록 홀로코스트 수업을 들은 파비안은 나치에 대한 주제만큼 지루한 것은 없지만 나치 유산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다. 요컨대 선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감은 없으나 후대가 책임지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 현대 유럽 역사를 다루는 시간에 독일 학생들이 동요하지 않고 쿨하게 앉아 있었던 것은 무감각했던 것이 아니라, 자국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 바로 자기 정화의 태도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독일은 자국민이 우울하고 찌든 정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적 정서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과거의 최대 범죄 국가인 독일이 현재 유럽연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가장 정직한 힘, 바로 반성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 p.200, 반성의 힘 중에서

분명 스웨덴 남자들에게는 여성성이 있다. 그들은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예의바르다. 마초 기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디나가 ‘전형적인 스웨덴 남자’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남성상은 바로 이런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스웨덴 남성상은 그들이 특이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양성평등의 사회적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아시아 국가의 경우 여성성과 남성성의 특징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반면, 스웨덴에서는 어느 한쪽의 정체성이 절대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개념조차 무의미하다. 즉 선을 하나 긋고 왼쪽이 여성적 특질이고 오른쪽이 남성적 특질이라고 나눈다면, 스웨덴 여성과 남성들은 양쪽에 따로따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구분 없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다. --- pp.202~203, 차가운 등 중에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지독하게 우울했다. 정말 울고 싶었다. 가장 벌어지지 말았으면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를 다시 찾아온 이 운명의 간계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다시 호앙과 같이 살게 되다니. 다시는 호앙과 같이 살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믿을 수가 없다. 왜 내 운명은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걸까. (중략) 나는 왜 호앙이 싫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짓궂은 운명을 피할 길이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자 차라리 호앙에 대해 지겹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내가 품고 있는 혐오감이 정당한 것인가 짚어보고 싶었다. 정당한 게 아니라면 이성을 동원해서 그것을 고치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호앙에게 집착하는 게 너무 피곤해서 이 혐오가 부조리한 거라고 결론짓고 싶었다. 그래야 호앙과 같이 살게 된 이 운명의 계략에 기분 좋게 순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p.226~227, 운명의 간계 중에서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매혹되었다.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심장에서 지펴진 뜨거운 불이 내 얼굴을 향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놀라서 표정을 추슬렀다. 내 얼굴에 확연히 드러난 불타는 시샘을 어서 감추어야 할 것 같았다. 슬쩍 디나를 보았다.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내면의 가치에 민감한 그녀의 눈빛. 디나는 바로 그 눈빛을 멜리사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내가 멜리사에게 품은 이 시샘은 멜리사의 학력도 지식도, 백색 애플 노트북도, 고급스러운 영국식 악센트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검은 피부에 예리하고 균형 감각이 넘치는 정신, 바로 그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중략) 멜리사가 하얀 얼굴에 세련된 외모를 가진 백인이었다면 나는 그녀를 그다지 선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과 굴욕, 차별과 비하. 그러나 그 속에서 터득한 균형감각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여유 만만하게 저항하는 정신. 내가 가장 매혹되는 정신은 바로 이런 마이너리티의 영혼 속에 유영하는 자유로움이다. --- pp.246~248, 검은 멜리사 중에서

직감적으로 그녀의 덫에 걸렸음을 알아챘다. 마치 긴 꼬리로 휘휘 파리를 쫒으며 낮잠을 즐기던 표범이 맛난 먹잇감을 보는 순간 스프링처럼 튀어 덮치는 것과 같다. 내 직감이 맞아떨어졌다. 만만한 먹잇감을 발견한 그녀는 내 가방을 열고 내가 반나절 동안 레고 쌓기 하듯 차곡차곡 쌓은 내 물품들을 빨래 통에서 빨래 꺼내듯이 일일이 꺼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손놀림은 마치 옛 애인의 변심의 단서라도 찾고 싶은 여인이 몰래 애인의 집을 들어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것처럼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얼굴은 알 수 없는 히스테리와 초조함으로 들떠 있다.
“당신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나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 p.268, 리스본 공항 중에서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가 되면 나는 글을 쓰다 말고 꼭 고개를 들고 거리를 내다본다. 거리에는 천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 시각의 어둠을 좋아한다. 스웨덴의 어둠에는 특별한 게 있다. 갑자기 어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부드럽게 밀려온다. 푸른 물감에 검은 물감이 퍼지는 것 같다. 푸른 대기는 어둠을 조용히, 오랫동안 감싸고 있다. (중략) 그래서 날이 어두워져도 사위어가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면서 오랫동안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나는 턱을 괴고 한참 동안 이 비밀스러운 시간을 음미한다. 이 신비스러운 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스웨덴의 이 미스틱한 어두움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 pp.276~277, 신비로운 어둠 중에서

우리는 서로 푹 꺼진 눈을 쳐다본다. 한동안 둘 다 말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돈을 들이지 않고 북구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50리터짜리 검은 쓰레기봉투를 사는 거야!”
드디어 파멜라의 머리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
“맞아, 바로 그거야!”
“그 쓰레기봉투 어마어마하게 크잖아.”
“크지! 한 장으로도 충분할 거야.”
“좋아! 지금 몇 시지?”
“일곱 시 반.”
“이카가 몇 시에 문 닫지?”
우리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이카로 뛰어 간다. 이럴 수가.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달랑 한 묶음 남아 있다. 하나 남은 그 검은 덩어리가 우리를 더욱 흥분시킨다. 우리는 재빨리 그것을 채어 계산대로 가져간다. 계산을 하고 나서 펼쳐 보니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검은 비닐이 꽤 두껍다. 이걸로 창문을 가리면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봉투를 다섯 장씩 나누어 둘둘 말아서 옆구리에 낀다. 서로 얼굴을 보니 빨리 헤어지고 싶은 눈치다. 어서 이 블랙커튼을 치고 잠을 자고 싶은 것이다. --- pp.299~300, 태양을 피하는 방법 중에서

“루카스, 너의 반서양주의 정신은 언제 태동된 거지?” 하고 내가 묻는다.
그는 슬며시 웃는다. “어렸을 때부터 동양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 우리 집 책장에 중국에 관련된 책이 많았거든. 아버지가 즐겨 보시던 책을 내가 본 거지.”
“어렸을 때부터 동양에 대해 판타지를 가진 셈이네?”
“그런 셈이지. 어렸을 적 내 머리 속은 온통 동양? 대한 상상으로 꽉 차 있었어. 커서는 반드시 동양에 가고 싶었고.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 결국 그 욕구를 채워준 거야.”
그는 탁자로 가서 그 위에 쌓인 종이 더미들을 풀어헤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들, 문양들, 천들이 그 안에 가득하다. 루카스가 동양을 떠돌며 ‘무언가’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모은 것들이다. 색이 바란 오래된 책자들. 한글의 고어도 눈에 띈다.
“동양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서양문명은 동양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하고 루카스는 말한다. (중략) 요즘 같은 시대에 스칸디나비아가 아니면 루카스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루카스는 내가 만난 스웨덴 사람 중에서도 가장 ‘이지(李贄)’적이며 가장 ‘삐딱’하고 가장 반자본주의적이고 가장 반서양주의적이며 가장 반제국주의적인 사람이다. --- pp.312, 겨울 풍경 중에서

어린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으면서 미래를 꿈꾼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꿈을 꾸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래는 삭막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내가 산타클로스가 있는지 없는지 긴가민가하기 시작하자 엄마는 그 비밀이 탄로 나는 것을 늦추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더욱더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우곤 하셨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꿈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음침한 대기를 끌어안고 그저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다른 행성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 p.321, 상상의 공동체 중에서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다시 데스피나를 생각한다. 데스피나의 상처. 세상과 존재의 연속성을 의심하는 그녀의 상처보다 더 존재론적인 상처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느 순간 뚝 잘려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살아왔다(이 불안은 전쟁을 시작한 그녀의 조국이 어린 그녀에게 남긴 것이다). 데스피나는 이 불안감을 잠식시키기 위해 책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고 애정을 모은다. 언제나 불안한 영혼은 그러나 차분하게 타자와 ‘관계’를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타자는 자신의 불연속성을 메워 주는 존재일 뿐 삶의 연속성 상에는 오로지 자신을 연민하는 ‘자아’만 있었다. 디나나 파멜라는 일찌감치 이 점을 파악했다. 디나와 파멜라는 자신들이 데스피나의 조종 속에 이리저리 치이는 부품이길 바라지 않았다. 나중에 데스피나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감정이입할 기회가 왔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이십대인 이들에게 우정은 ‘이해’가 아니라 순수한 ‘직관’을 통해 시작되는 것 같았다. --- p.367, 우정의 여러 가지 형태 중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디나가 물었을 때 나는 창문을 열어 두고 낮잠을 자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낮잠을 자는 것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이다. 나는 낮잠을 자면서 모국의 감각을 가장 생생하게 느낀다. 습도와 바람, 햇빛의 강도, 외부의 소음 등이 촘촘히 섞여 있는 고국의 공기는 몇 십년간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국어처럼 매우 편안하고 유니크하다. 특히 늦여름 창문을 열어 두고 낮잠을 자면 이 느낌은 아주 절실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러니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 오는 찰라 몇 초간 여기가 어디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저 복합적인 고국의 공기를 느끼는 순간이면 이 불안감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나는 그 상태로 가만히 누워 익숙한 고국의 느낌을 즐긴다. 깊고 고요한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다. 아가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열락감이 이런 기분 아닐까.
--- p.370, 떠나면 그리운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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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순하지 않다

박수영은 눈이 빛나는 사람이다. 처음 만나든 여러 번을 만나든 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고, 그 눈이 맑고 투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매혹』(2001)과 『도취』(2003) 등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작가다.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적은 숫자일망정 열렬한 팬들이 있다. 소수 독자들의 손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그녀의 소설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다. (중략) 박수영이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쓴 것은 그 행위의 본질상 80년대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80년대와 그 이후 전개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놀람과 비명, 그리고 기나긴 성찰의 산물이었다. 그녀가 2년 6개월간의 먼 ‘여행’에서 돌아와 발표한 이 책도 그의 글쓰기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소설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다. 아니,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다. 박수영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 만난 사람들,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전달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담백하면서도 감성적인 스웨덴 체류기로 탄생했다.
스웨덴을 통해서, 스웨덴의 웁살라대학에서 포르투갈의 코임브라대학을 거쳐 다시 웁살라로,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긴 시간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상에 관한 것이다. 변치 않는, 살아 숨 쉬는 이상. 미래를 향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꿈. 후회와 원망 없이 가볍게, 투명하게 우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 꿈.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다름을 향유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우리 모두 다르지만 서로를 평등하게 대할 수 있으리라는 희구. 폭력 없는 세상. 약육강식 없는 질서. 박수영은 그런 이상에서 80년대에 유산된 꿈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다음 부분에서 나는 페이지를 두 번 접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권위를 버리고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세상에는 경찰과 국가 관리를 동원하며 으스대는 국가가 있고, 번쩍이는 경찰 배지를 과시하며 죄 없는 국민들도 ‘움찔’하게 만드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가능하면 허식과 권위를 버리고 헤게모니가 드러나지 않게 절제하는 국가도 있다. 스웨덴은 바로 가장 후자의 국가다. 국민을 겸허하게 대하는 나라.

이 책에서 스웨덴은 어떤 이상적인 국가 형태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다. 그곳에서 국가는 국민들과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필요 없이 간섭하지 않는다. 국민은 국가라는 거대 기구에 주눅 들어 있지 않다. 지금 한국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박수영은 은연중에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과 스웨덴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문제 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보편적 기준을 고민해보기 위해서이다.
또 저자는 고착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동양인이라는 정체성, 여성이라는 정체성, 터키인이라는 정체성, 이슬람교도라는 정체성……. 그러나 이렇게 국적과 성별로 자기 삶의 기둥을 삼지 않는 길도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긍정하고, 삶의 진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국적과 민족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를지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같은 정체성을 뜯어먹으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내게는 물론 고향이 있지만 타인에게도 저마다의 고향이 있으며, 그들의 고향이 곧 나의 고향이 될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향수에 대한 의욕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저자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빅토르 휴고의 이 말은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이방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떠난 세상은 고독하지만은 않다. 이 책의 저자 박수영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말하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영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그녀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많은 것들을 희생시켰다. 이 책에서 그녀는 한껏 절제하여 말한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리움을 지그시 누르고, 소설가로서 자신의 분방한 관심들을 세심하게 조율한 뒤 우리들의 삶과 세계에 대해, 한국인과 스웨덴 사람들과 터키 사람과 폴란드 사람과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린네의 식물 채집에 관해 이야기하고, 동양과 서양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략) 이 책에서 그녀는 맑고 섬세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우리 모두 이방인이 되자고, 딱딱한 거북이의 등껍질을 벗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피부로 숨 쉬는 사람이 되자고. 그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맑은 눈빛 같기도 하다. 어떤 안쓰러운 마음에 시달리며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라흐마니노프를 듣는 사람은, 불순하지 않다.
방민호(문학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책의 미덕은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매혹시킨 힘이다. 또 다른 미덕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오랜 지적 훈련으로 단련된 작가의 격조 높은 시선과 성찰에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광분했으며, 웁살라에서 보낸 작가의 캠퍼스생활을 선망했으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매혹』이라는 이름은 이 책에 붙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갑수(문화 평론가, 시인)
“직업상 수십 차례 유럽을 여행했어도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았던 북유럽 사회를 이 책으로 인해 비로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서가 아닌 한 사회에 대한 섬세하고 지적인 소묘다. 이 책의 진가는 지성적인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 이 책은 특히 ‘미국화’되어 있는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읽어야 하며, 학생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오동훈(서울시립대학 도시행정학 교수)
“모처럼 ‘지적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작가의 스웨덴에서의 유학기이지만 단순한 경험의 서술이라기보다 같이 공부했던 다른 나라 친구들을 통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근원을 되짚어가는 여행이며, 같은 사안을 다른 나라 친구들은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고 행동하는지를 작가의 철학적, 역사적 시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말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도 새삼 듣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이정애(SBS 기자)
박수영은 눈이 빛나는 사람이다. 처음 만나든 여러 번을 만나든 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고, 그 눈이 맑고 투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매혹』(2001)과 『도취』(2003) 등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작가다.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적은 숫자일망정 열렬한 팬들이 있다. 소수 독자들의 손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그녀의 소설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다. (중략) 박수영이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쓴 것은 그 행위의 본질상 80년대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80년대와 그 이후 전개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놀람과 비명, 그리고 기나긴 성찰의 산물이었다. 그녀가 2년 6개월간의 먼 ‘여행’에서 돌아와 발표한 이 책도 그의 글쓰기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소설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다. 아니,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다. 박수영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 만난 사람들,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전달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담백하면서도 감성적인 스웨덴 체류기로 탄생했다.
스웨덴을 통해서, 스웨덴의 웁살라대학에서 포르투갈의 코임브라대학을 거쳐 다시 웁살라로,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긴 시간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상에 관한 것이다. 변치 않는, 살아 숨 쉬는 이상. 미래를 향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꿈. 후회와 원망 없이 가볍게, 투명하게 우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 꿈.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다름을 향유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우리 모두 다르지만 서로를 평등하게 대할 수 있으리라는 희구. 폭력 없는 세상. 약육강식 없는 질서. 박수영은 그런 이상에서 80년대에 유산된 꿈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다음 부분에서 나는 페이지를 두 번 접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권위를 버리고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세상에는 경찰과 국가 관리를 동원하며 으스대는 국가가 있고, 번쩍이는 경찰 배지를 과시하며 죄 없는 국민들도 ‘움찔’하게 만드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가능하면 허식과 권위를 버리고 헤게모니가 드러나지 않게 절제하는 국가도 있다. 스웨덴은 바로 가장 후자의 국가다. 국민을 겸허하게 대하는 나라.

이 책에서 스웨덴은 어떤 이상적인 국가 형태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다. 그곳에서 국가는 국민들과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필요 없이 간섭하지 않는다. 국민은 국가라는 거대 기구에 주눅 들어 있지 않다. 지금 한국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박수영은 은연중에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과 스웨덴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문제 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보편적 기준을 고민해보기 위해서이다.
또 저자는 고착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동양인이라는 정체성, 여성이라는 정체성, 터키인이라는 정체성, 이슬람교도라는 정체성……. 그러나 이렇게 국적과 성별로 자기 삶의 기둥을 삼지 않는 길도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긍정하고, 삶의 진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국적과 민족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를지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같은 정체성을 뜯어먹으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내게는 물론 고향이 있지만 타인에게도 저마다의 고향이 있으며, 그들의 고향이 곧 나의 고향이 될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향수에 대한 의욕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저자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빅토르 휴고의 이 말은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이방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떠난 세상은 고독하지만은 않다. 이 책의 저자 박수영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말하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영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그녀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많은 것들을 희생시켰다. 이 책에서 그녀는 한껏 절제하여 말한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리움을 지그시 누르고, 소설가로서 자신의 분방한 관심들을 세심하게 조율한 뒤 우리들의 삶과 세계에 대해, 한국인과 스웨덴 사람들과 터키 사람과 폴란드 사람과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린네의 식물 채집에 관해 이야기하고, 동양과 서양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략) 이 책에서 그녀는 맑고 섬세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우리 모두 이방인이 되자고, 딱딱한 거북이의 등껍질을 벗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피부로 숨 쉬는 사람이 되자고. 그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맑은 눈빛 같기도 하다. 어떤 안쓰러운 마음에 시달리며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라흐마니노프를 듣는 사람은, 불순하지 않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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